[책과 사람] 사기열전에 이어 ‘사기본기’ 번역한 김원중 교수

조재량 기자
2010년 04월 19일 오전 11:35 업데이트: 2019년 12월 13일 오후 2:45

인간의 내면과 본질 탐구한 인간학 교과서<史記>

김원중 교수는 요즘  심심찮게 서울 나들이를 한다. 그가 번역한 삼국유사에 이어 사기열전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여기저기서 강연 요청이 쇄도하고 있는 것. 충남 논산에서 버스타고 올라와 빠듯한 하루 일정을 소화하는 그를 만나 잠시 번역과 책에 얽힌 얘기를 들었다.

– 많은 고전 중에서 사기를 중시하는 이유가 뭡니까
사마천은 사기에서 인간을, 휴머니즘을 말하고 있어요. 거기에는 제왕도 있고 장군도 있지만 지위나 명예를 중시하지 않고 그 사람이 갖고 있는 내면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인간의 본질을 탐구한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사기가 갖고 있는 감동과 울림은 2천여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 감동을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이번에 <사기 본기>가 출간됐는데 전체를 완역하려면 얼마나 더 걸리나요.
올 여름까지는 끝낼 생각입니다. 사기 전체를 놓고 볼 때 지금까지 90%정도 했다고 봐야겠죠. 93년에 번역 시작해서 2007년에 사기열전을 출간했습니다. 사기를 전부 번역하는데 17년 정도가 걸리는 셈인데, 물론 거기에는 다른 책들을 번역한 시간도 겹쳐 있습니다. 올해 말쯤이면 출간되겠죠.

–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업이군요.
번역을 할 때 중국어 번역본을 갖고 대충 번역하면 금방 합니다. 일본어 번역본을 갖고 해도 마찬가지고요, 이번에 번역한 ‘사기본기’도 이렇게 하면 두 세 달 만에 끝낼 수 있어요. 하지만 제대로 하려면 원전을 가지고 번역해야합니다. 그래서 제가 좀 번역 속도가 더딘데, 그렇다고 대충 할 수는 없잖아요. 그리고 이런 차이는 독자들이 제일 먼저 알아봅니다.

– 처음 사기를 번역할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언제입니까.
대학원에서 수업 받다가 느낀 것인데 사기에는 사학뿐만 아니라 문학, 철학 등 중국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고 느꼈습니다.

– 사기의 구성에 대해 설명해주시죠.
이번에 나온 사기본기는 항우와 유방, 진시황 등 제왕들의 이야기입니다. 세가는 왕과 제후들의 이야기죠. 소하 장량, 진서, 공자 같은. 열전은 그 밑에서 봉사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전체 분량이 어느 정도인가요.
본기는 열두 편, 세가는 30편, 열전은 70편이죠. 열전은 책 세 권, 네 권 분량입니다. 900페이지가 넘어요.

당태종의 리더십이 돋보이는 책 <貞觀政要>

– 이번에 정관정요도 개정판이 나왔던데요. 중국 역사상 많은 제왕이 있었는데 유독 당태종의 치세와 행적이 돋보이는 이유는 뭘까요.
당 태종은 진정한 제왕으로서 자세가 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관정요의 핵심은 ‘리더의 마인드가 조직의 운명을 바꾼다’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본인이 항상 아랫사람과 소통하려 애썼거든요. 실제로 위징(魏徵)이 300번이나 간언을 했는데도 항상 위징을 보듬었어요. 포용력이 대단했죠. 사실 당 태종이 전쟁도 많이 했잖아요. 그런 면에서 한 무제와 당 태종은 비슷한 인물입니다. 그런데 한 무제는 전쟁만할 줄 알았지 포용을 못했어요. 사마천이 그걸 정면으로 비판했죠. 하지만 당 태종은 그 당시 신라도 포용했고, 장안을 전 세계 문화의 중심지로 만들었어요. 바그다드에서 온 사람들이 장안에서 음악을 연주하고, 이런 것들을 다 받아들였단 말이에요. 중국 역사상 가장 포용력이 컸던 인물이 당 태종과 청대의 건륭제입니다.

– 책을 읽고서도 소통에 필요한 것들을 깨달을 수 있을까요.
당연하죠. 포용력이 없는 사람은 오만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것이 독서의 질과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 우리 독서계가 좀 가벼운 쪽으로 흐르고 있는데, 목차만 봐도 내용을 유추할 수 있는 정도의 자기계발서 이런 것들이 많이 팔리고 있습니다. 역사서는 읽을수록 자기 내면을 살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읽으려하질 않거든요. 기다리질 못하는 겁니다. 자기계발서 같은 책들은 두 시간이면 읽거든요. 빠르고 편한 것만 추구하다보니 오래된 역사서나 고전을 읽으면서 행간에 숨어 있는 뜻을 살피는 것은 더 어려운 얘기가 돼 버렸습니다. 그러니 깊이가 떨어질 수밖에요. 현재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독서의 경박함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 그런 의미에서 지금 출간을 준비하고 있는 어린이들을 위한 사기(史記)는 의미 있는 시작이 될 수도 있겠네요.
모르겠습니다. 얼마나 잘 될지. 저는 고전을 사랑하니까 하는 일인데…

– 어린이들에게는 ‘史記’가 어렵지 않을까요.
그럴 수도 있겠죠. 그런데 저는 그것이 결국 어른과 아이의 소통의 문제라고 봅니다. 어른들이 자기계발서나 읽고 있는데 어린이들이 고전을 읽겠어요? 대학에 다니는 형이 고전을 읽고 책이 서가에 꽂혀 있으면 동생도 이게 뭔가 하고 보다가 “어? 재미있네!” 이렇게 읽게 되거든요.

– 독자의 연령층을 배려해야 하지 않을까요.
어린이, 청소년, 성인까지 함께 볼 수 있도록 할 겁니다. 여기에 말도 안되는 경영이론 같은 것을 갖다 붙일 생각은 없고 그냥 있는 그대로를 소개해보자는 겁니다.

– 그림도 많이 들어가나요.
제목이 ‘사기 명장면’인데 출판사에서 그림을 일러스트로 하겠다고 했는데 제가 반대했습니다. 중국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자료들, 명장면들을 묘사한 그림, 청대의 그림이나 오래된 그림들을 그대로 쓰자고 했죠. 괜히 어설프게 일러스트로 가거나 상상력 발휘하지 말고. 애들이 보고 있잖아요? 좀 덜 팔려도 좋으니 제대로 만들어보자고 했죠. 그림 설명도 이미 다 써줬습니다.

– 독자들에게 바라는 것이 있습니까
다른 건 몰라도 고전만큼은 정본을 읽으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제대로 된, 기본 룰이 지켜진 책, 해제·본문·주석·참고문헌·찾아보기가 있는, 이렇게 만들어진 책을 읽어야 고전의 깊은 맛을 알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하룻밤에 읽는 논어라든지, 30% 가려 뽑은… 이런 책들은 읽지 말자는 거죠. 독서의 질적인 측면과 기본기를 다지는 측면에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고민도 해보고, 인터넷에서 책 사지 말고 서점에 가서 이것저것 비교하고 고민도 좀 해보고, 그렇게 사라고 권하고 싶어요. 서평만 보고 사지 말고요.

김원중 교수는 충북 보은에서 태어났다. 충남대를 졸업, 성균관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대만사범대학 방문교수를 거쳐 현재 건양대 중문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에 통찰력 사전, 중국 문화의 이해 등이 있으며 삼국유사, 정사 삼국지, 사기열전, 정관정요, 당시, 송시 등 중요한 중국 고전을 꾸준히 번역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