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 유니콤 실세 ‘장몐헝’

허칭롄(何淸漣)
2015년 02월 27일 오전 9:32 업데이트: 2024년 02월 19일 오후 3:27

 지난 5일, 중앙기율검사위원회(중기위)는 여러 지역 여러 직위에 대한 순시 목록을 공개했다. 그 중 특히 국영기업 내 이권 및 인사 문제가 비교적 많았다. 국제방송국(國際廣播電台), 중국선박, 차이나 유니콤, 화전그룹, 둥펑자동차, 신화그룹 등 6개 기업 중에서 국내외 언론의 관심은 특히 차이나 유니콤의 부패 스캔들에 집중되었다. 그 원인은 차이나 유니콤의 배후에 귀공자 장몐헝(江綿恒)이 있기 때문이다.

이권의 중심, 상하이 연합투자 주식회사

2014년 12월 두 명의 차이나 유니콤 고위직 장즈장과 쭝신화가 조사받았지만 정작 외신의 관심은 장몐헝에 집중되어 있다. 그 이유는 차이나 유니콤이 2008년 장몐헝이 운영하던 중국망통을 합병하면서 탄생되었으며, 장몐헝이 차이나 유니콤의 실세이기 때문이다.

차이나 유니콤 합병 과정은 복잡하다. 그 중 주력인 중국망통은 2001년 남북전신의 스핀 오프 과정에서 여러 사업체를 재편성해 탄생했다. 장몐헝과 관련된 것은 상하이 연합투자 주식회사가 투자 창설한 라오왕통(老網通)이었다. 2001년 남북전신 스핀 오프 이후, 퇴출된 것은 장몐헝과 합작했던 IT 거물 티앤수닝(田溯寧)이었다.

장몐헝은 계열사를 순순히 양보하지 않았다. 장몐헝이 기업가가 되고 싶었던 열망을 미루어보자면 남 좋은 일을 할 수는 없다. 따라서 장즈장과 중신화 두 사람이 장몐헝에게 인정받는 심복이었다는 것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재신망에 따르면 최근 차이나 유니콤 사건은 이제 막 무르익었고, 중앙 순시조 순찰은 이미 종결되었지만 각종 고발은 여전히 차이나 유니콤 고위층과 언론을 향하고 있다.

장몐헝에 대해 소극적인 언론으로 인해 바이두 백과사전에 등재된 장몐헝의 이력은 매우 간략하다. 경제계의 거물에 대한 설명이 50 글자에 불과하다. 차이나넷센터, 상하이자동차공업, 상하이공항그룹회사 이사라는 이력이 전부이며 언제부터 이사직을 맡았는지도 나와 있지 않다. 문제는 위풍당당한 전 중공 총 서기의 아들이 과연 한낱 평범한 이사회 성원에 그쳤을까 하는 것이다.

장몐헝과 상하이 연합의 관계

2015년 1월 19일 북청망(北青網)은 ‘장몐헝의 인생 역할’이라는 글을 발표했다. 해당 문장에는 1994년 9월 상하이 연합투자 주식회사가 창립되고 장몐헝은 법인대표(법인대표 겸 이사장, 초임 사장은 양송 현 상하이 시장)가 되었다. 자료에 의하면 상하이 연합투자는 상하이 시 정부가 비준 성립한 국유 독자 주식회사로서 상하이시 국자위 소속이다. 투자 영역은 과학기술, 전신, 항공 등 여러 방면을 포함하고 있다.

예를 들면 마이크로소프트 MSN, 상하이자동차, 상하이항공, 상하이공항, 상하이 은행, 봉황TV 및 중미 합자사인 동방몽 등이 있다. 이러한 산업의 배후에는 모두 상하이 연합투자의 그림자가 있다. 이 글에는 상하이 항공 주식 회사 2002년도 보고서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며 장몐헝의 신분은 해당 회사의 법인대표(통례적으로 법인대표는 이사장)였다.

新태자당, 자본시장으로

훙얼다이(紅二代)라는 말이 유행하기 이전에 중국 고위층의 자녀들은 외신에 의해 태자당이라 불렸다. 그 중 중공 정권 설립에 참여한 고위 간부의 자제들은 ‘노태자당’으로 분류되었다. 제 3, 4대 영도자의 자녀들은 신태자당이라 불렸다. 이 두 태자당의 재산 증식 방식은 달랐다. 후자의 경우 더욱 금융 영역에 집중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2010년 3월 29일 ‘금수저 물고 태어난 중국 태자당’이라는 기사에서 “장몐헝이 20세기 90년대에 상하이로 돌아가 외국 투자자들의 지지를 받았고 그들은 장몐헝을 가장 가치 있는 합자 파트너로 여겼다. 현재 그가 장악하고 있는 상하이 연합투자 주식회사는 운영상에 있어서 사모펀드인 정부 투자회사와 매우 유사하다”라고 표현했다.

이는 원자바오(溫家寶) 전 총리의 아들 원윈쑹(溫雲松)의 뉴호라이즌캐피털, 류윈산(劉雲山) 정치국 상무위원의 아들 류러페이(劉樂飛)의 시틱캐피탈 등 사모펀드와 비슷하다. 하지만 장몐헝의 상하이 연합은 이들보다 10여년 가량 빠르다. 즉, 자본시장에서 장몐헝은 신태자당의 개척자의 칭호를 받기에 충분한 자격이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장몐헝의 개척자 역할도 잊지 않고 서술했다. 장몐헝과 주룽지(朱鎔基) 전 총리도 아들 주윈라이(朱雲來)는 현재 태자당의 전성기를 위한 전초 작업을 했다.

이들은 공산당 고위층 일가의 국가 통치는 어디까지나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인상을 준다. 그들의 행동은 젊은 1세대 태자당을 제지하지 않았고 그들의 돈주머니를 채워주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그들은 이런 현상이 공산당과 지도층에게 어떠한 부작용을 가져올지는 고려치 않았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사모펀드는 어디에 투자할까? 일반적으로는 영업 비밀이다. 그러나 최근 한 정보는 투자가 비슷한 지위를 가진 친인척에게 쓰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재신망의 2월 2일 기사 ‘안방대모험’에서는 상하이자동차그룹과 시노펙 그룹은 우샤오휘의 안방회사 최초 주주로서 초기에는 지분 20%로 1위 대주주로 자리 잡았다.

그 후 시노펙은 천퉁하이 사건이 일어나자 점차 약세를 보였고, 안방의 계속되는 주식 증자에 못 이겨 상하이자동차, 시노펙 그룹 주식은 희석되었다. 2011년까지 증자한 이후 상하이자동차의 점유 비율은 6.317%까지 떨어졌고, 시노펙은 2.817%까지 떨어졌다.

‘진둔’공정 핵심, IT 장악

최근 중국인들은 중공이 차이나 유니콤을 통해 중국 통신망을 구성하고 장악한 것에 대해 분노하고 있지만 이러한 독창적인 견해를 제시한 것이 누구인지는 모르고 있다.

2001년 인터넷 방화벽인 진둔(金盾) 공정이 어떤 것인지 모르고 참여한 업체들이 영광으로 생각할 시기에 미국 연구자 그렉 월튼(Greg Walton)은 연구 보고서 ‘중국의 진둔 공정’을 통해 비록 중국이 WTO 가입을 위해 대외적으로 개방적인 태세를 취하고 있지만 일부분 관료들은 여전히 인터넷을 봉쇄하고 있다고 서술했다. 또 장쩌민의 아들인 과학기술계 실력자이자 중국 과학원 부총재 장몐헝 박사가 상하이의 한 회의에서 ‘중국은 반드시 국제 인터넷과 분리된 국가 인터넷망을 만들어야 한다’고 언급한 적 있다고 덧붙였다.

거대한 진둔 공정에서 장몐헝과 관계가 밀접한 티앤수닝이 창립한 중국망통은 중국에서 막 시작된 인터넷 제어 공정이 되었다. 진둔 공정 핵심인물 장몐헝은 전체 공정을 이끌었다. 앞서 말했듯이 중국망통은 장몐헝이 배후에 있었기 때문에 2001년 중국 남북 전신의 스핀오프 중에 망통은 중국전신을 북방의 국토 절반에 배치했고 ‘뱀이 코끼리를 삼키는’ 중국 자본시장의 신화를 다시 썼다.

장몐헝의 신비주의로 인해 그가 많은 일을 했다는 것은 외부에서도 잘 모른다.

‘장몐헝의 인생역할’에서는 1999년 7월 중국과학원이 상하이 첨단기술 발전 기지 공정 시행을 비준했으며 해당 기지는 당시 장몐헝이 소장으로 있던 상하이 야금 연구소 등으로 조성되어 중국 첨단기술 연구의 플랫폼으로 불렸다고 서술하고 있다.

당시 중공 총서기 장쩌민이 이 공정에 ‘기초성, 전략성, 전망성’을 요구하며 상하이 야금소는 이에 맞춰 공정 방향을 잡았다. 통신, 정보, 마이크로시스템, 마이크로를 목표로 장씨 부자는 손을 잡고 차이나 유니콤을 구내 통신망으로 만들 구상을 했던 것이다.

장몐헝의 과학연구 성과를 열거할 때 잊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 사람들이 극도로 혐오하는 인터넷 통제의 ‘무공 훈장’의 절반은 장씨 부자에게 있다는 점이다.

장몐헝은 월스트리트에 의해 ‘통신 시장의 혁명가’로 불렸지만 이 글을 쓴 작가는 이 통신 시장의 주요 내용 중 한 가지가 통제 기술이며 영화 ‘1984’의 한 장면처럼 사회를 통제하는 상황이 나타날 것이라는 점을 예상하지 못했다.

삼서 성공 스토리 결말은?

외신이 장몐헝에 대해 다룬 소식은 많지만 진위는 판별하기 어렵다. 해당 문장은 대부분 국가 지도자의 잘못을 경솔하게 내뱉지 않는 중국 매체와 신뢰할 수 있는 영문매체에서 가져왔으며 묘사한 부분은 정계, 경제계, 과학기술계의 귀공자 인생의 실루엣일 뿐이다. 독자들은 ‘동시삼서(同時三栖)’라는 단어에 주의해야 한다. 최근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동시에 관료, 기업가, 과학가 세 가지 타이틀(三栖)의 명예와 이익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장몐헝 외에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최근 정치판에 뛰어든 리샤오펑은 한 가지만 얻었을 뿐이다.

중국의 반부패 정책에서 구분한 여섯 단계에 따르면 심복 및 일가 사건은 2단계에 해당한다. 새해에 장쩌민 일가 3대가 하이난(海南) 둥산링(東山嶺)을 오른 소식이 공개된 이후 전부 삭제된 사례는 3단계 ‘공개적 노출 혹은 공문 반박’에 해당한다. 장몐헝이 1년 4개월이나 앞당겨 중과원 상하이 분원 원장자리에서 퇴임하자 1월 19일 북청망이 ‘장몐헝의 인생역할’을 보도한 것은 제4단계 ‘중국매체 암시’에 해당한다. ‘정부측 공표’와 ‘매체 착취’가 더 있을지는 외부의 판단을 살펴봐야 할 것 같다.

장몐헝 등 태자당의 행운은 중공 정치체제에서 비롯된 국가 이익 구조에서 생겨났다. 만약 그들의 부귀가 영원한 것이 아니라면 중공의 지도자 임기 종신제가 폐지된 탓을 할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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