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두현 아산硏 센터장 “北 영변 핵시설 재가동, 남북합의 위반”

이윤정
2021년 09월 10일 오후 4:37 업데이트: 2021년 09월 10일 오후 10:40

“영변 핵 시설 재가동, 한반도 비핵화 정신에 역행”
“북한, 언제든 약속 어길 준비돼 있다는 걸 보여준 것”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이 북한의 영변 핵 시설 가동이 사실이라고 해도 남북 간 합의에 위배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 것에 대해 “매우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평가했다.

지난 7일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태규 국민의당 의원이 영변 핵시설의 원자로가 가동된 징후가 있다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보고서와 관련해 “북한 영변 핵시설 재가동이 사실이라면 4·27 판문점 선언이나 9·19 평양공동선언 취지에 위배된다고 보나”라고 질문했다. 이에 최 차관은 “아니라고 본다”라고 답변했다.

차 센터장은 10일 에포크타임스와의 통화에서 “이태규 의원은 영변 핵 시설 가동이 남북대화의 분위기나 여건 등에 부합하는지를 따져 합의 취지에 위배되는 게 아니냐고 질문한 것”이라며 “그걸 선언문 ‘조항’으로 받아서 (영변 핵시설을 가동하면 안 된다는 조항이 없어) 합의 위반은 아니라고 말한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합의 조항을 위반한 건 아니지만 한반도 비핵화라는 기본 정신에 역행하는 것이므로 이는 남북합의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는 영변의 상징적 의미를 크게 보고 있는데 이게 합의 위반이 아니라면 앞뒤가 안 맞는다”라고 지적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6월 언론 인터뷰에서 북한이 영변을 완전히 폐기할 경우 북한은 ‘비핵화의 되돌릴 수 없는 단계’로 접어든다고 평가한 바 있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이 영변 외의 장소에서 우라늄 농축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해왔다.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당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영변 폐기의 대가로 사실상의 전면적인 제재 해제를 원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서는 영변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본 것으로 알려졌다.

차 센터장은 “최 차관의 발언은 일각에서 나오는 ‘미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 북한이 부득이하게 영변 핵 시설을 재가동했다’는 논리를 강화하는 것”으로 풀이했다.

그는 “단순히 그 대답이 적절했는지 여부를 떠나 남북관계가 잘 풀리지 않는 원인을 미국 탓으로 보는 의식이 반영된 것”이라며 “청와대가 최 차관의 발언에 대해 ‘맥을 같이 한다’고 한 것은 청와대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북한 요구를 빨리 들어줘서 대화를 재개하자는 우회적인 압력이나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차 센터장은 향후 북미 관계가 안 풀릴 것 같다는 전망을 내놨다.

그 이유에 대해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 기조가 뚜렷하지 않다”며 “미 국무부나 국방부에 한반도 문제 전담 인력조차 확보돼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차 센터장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월 성 김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 대행을 대북특별대표로 임명했지만 인도네시아 대사를 하면서 겸임으로 직책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미국이 북미대화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그는 “이번 국제원자력기구(IAEA) 보고서에서 나왔듯이 가시화되지는 않더라도 북한에서 몇 가지 징후가 나오고 있지만,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철수에 대한 비판 여론이 계속되는 등 북한을 단순히 지켜볼 여력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고 봤다.

아울러 “북한과 미국 중 누가 먼저 지칠 것인지는 단언할 수 없다”면서도 “북한이 먼저 지치기를 바라지만 그러려면 최 차관이 한 그런 발언들을 더는 해서는 안 된다”라고 잘라 말했다.

이어 “한미 간에 북한문제에 대한 인식의 공감대가 없는 상황에서 외교부 고위 관료가 그런 발언을 할수록 북한에 ‘조금만 더 버티면 미국이나 한국에서 먼저 지쳐서 양보하고 나올 것’이란 희망을 계속 심어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한 “북한은 언제든지 필요하면 약속을 어길 준비가 돼 있다는 걸 이번에 영변에서 보여준 것”이라며 “일부 시설에서 특별한 움직임이 없다고 해서 그걸 약속이행으로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강조했다.

/ 취재본부 이윤정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