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자다가 체포된 서울역 ‘묻지마 폭행’ 30대 남성의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이서현
2020년 06월 5일 오후 1:59 업데이트: 2022년 12월 14일 오후 3:23

서울역에서 모르는 여성을 폭행하고 달아난 혐의로 긴급체포된 30대 남성의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지난 4일 서울중앙지법 김동현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상해 혐의를 받는 이모(32) 씨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를 진행한 뒤 구속영장 청구를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씨는 지난 26일 낮 서울역 1층에서 처음 보는 30대 여성을 얼굴을 때려 상처를 입히고 달아난 혐의를 받고 있다.

피해 여성은 얼굴 뼈가 함몰되는 중상을 입고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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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사건 발생 일주일만인 지난 2일 이씨를 서울 동작구의 집에서 긴급체포하고 다음 날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법원은 이날 국민적 관심을 고려해 구속영장을 기각한 이유를 이례적으로 상세히 공개했다.

우선 법원은 이씨 체포과정에 대해 언급했다.

경찰은 인근 CCTV 영상과 주민 탐문을 통해 이씨 성명과 주거지, 휴대전화 번호를 파악하고 있었다.

이씨 집을 찾아가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두드리며 전화도 걸었다.

하지만, 잠든 이씨가 반응을 보이지 않자 강제로 출입문을 열고 주거지로 들어가 자고 있던 이씨를 긴급체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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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은 이 과정이 위법한 체포였다고 판단했다.

수사기관이 피의자를 체포하려면 원칙적으로 법원으로부터 체포영장을 발부받아야 한다.

다만, 현행범이거나 법에서 정한 긴급체포 요건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영장없이 체포한 다음에 구속영장을 신청할 수 있다.

피의자가 장기 3년 이상의 형에 해당하는 범죄를 저질렀다는 상당한 혐의가 있고,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주 또는 도주우려가 있는 경우, 그리고 체포영장을 받을 수 없을 정도로 긴급한 상황이어야 한다.

경찰은 상해죄가 장기 7년 이하 징역에 해당하는 만큼 이씨가 긴급체포 요건에 해당한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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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경찰과 법원의 판단은 엇갈렸다.

경찰은 당장 이씨를 체포하지 않으면 추가 범죄가 벌어질 상황을 우려했다.

‘묻지마’ 폭행의 증거가 상당하고, 경찰의 전화나 초인종 소리에도 반응하지 않았으며, 정신 건강이 좋지 않아 재범 위험이 있다는 점도 들었다

하지만 법원은 경찰이 이씨를 적법하게 체포할 시간적 여유가 있다고 판단했다.

통상 영창 청구 발부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으며 그 시간을 못 기다릴 정도로 시급한 상황으로 인정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이씨가 경찰의 전화 등에 응답하지 않은 건 자고 있었기 때문이며, 경찰을 뿌리치고 달아나려 시도한 것도 아니었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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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은 “긴급체포 제도는 영장주의 원칙에 대한 예외인 만큼 형사소송법이 규정하는 요건을 모두 갖춘 경우에 한해 허용돼야 한다”라며 “비록 범죄 혐의자라 할지라도 헌법과 법률에 의하지 않고는 주거의 평온을 보호받음에 있어 예외를 둘 수 없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씨는 체포 후 범행동기에 대해 “욕을 들었기 때문”이라며 “순간적으로 실수를 했다”며 우발적 범행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역 내외부 여러 CCTV 영상을 보면 이씨는 범행 당일 서울역 광장 앞 도로에서 행인들을 밀치는 등 위협적인 행동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부분은 향후 수사 과정에서 쟁점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