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뮬란은 홍콩에 있다” 우산혁명 주역 아그네스에 쏟아지는 찬사

류지윤
2020년 08월 14일 오후 8:42 업데이트: 2020년 08월 14일 오후 8:55

지난 10일 홍콩 국가안전법 위반 혐의로 체포됐다가 11일 오후 늦게 풀려난 ‘우산 혁명’ 주역 아그네스 차우(24)에 대해 홍콩인들이 ‘뮬란’이라는 찬사를 보내고 있다.

차우는 경찰서를 나서면서 기자들에게 “네 차례의 체포 가운데 이번이 가장 끔찍했지만, 민주적 자유를 쟁취하려 한 것은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녀는 앞서 사회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홍콩 경찰에 세 번 체포됐었다.

홍콩인들은 스물넷의 나이에 여러 차례 체포를 당하면서도 좌절하지 않고 대의를 위해 용감하게 나서는 그녀의 모습이 영화 ‘뮬란’의 여주인공 뮬란을 떠올리게 하는 것으로 보인다.

뮬란은 가냘픈 여성이었지만 노쇠한 아버지 대신 전쟁터로 나가 역경을 딛고 대장군으로 성장하는 이야기를 그린 디즈니 애니메이션이다. 중국 남북조 시대의 ‘화목란’ 이야기에 바탕을 둔 이 작품은 올해 중국계 배우 유역비를 주인공으로 한 실사 영화가 개봉했다.

논란은 유역비가 지난해 홍콩 송환법 시위가 한창인 가운데, 시민들을 진압한 홍콩 경찰을 지지하면서 시작됐다. 그녀는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의 홍콩 시민 비난 글을 자신의 웨이보에 공유하고 “나도 홍콩 경찰을 지지한다”고 썼다.

중국 고전에 등장하는 영웅을 그린 영화의 여주인공에 캐스팅됐으면서도 중국 전통문화를 짓밟고 외래 이념인 공산주의를 이식한 공산당 기관지의 논조를 그대로 따른 그녀의 발언에 많은 홍콩인이 실망감을 드러냈다. 중국을 제외한 홍콩, 대만과 해외 중국인들 사이에서 영화 불매운동까지 일었다.

그런 유역비에게 실망했던 홍콩인들이 중국 공산당이라는 폭압적인 독재 권력에 맞서는 아그네스의 차우에게서 진정한 뮬란의 모습을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홍콩 국가안전법을 피해 해외로 망명한 홍콩 민주화 인사 네이선 로(26)는 트위터를 통해 “학생 운동이라는 시대적 상황이 없었다면 아그네스는 그저 한 명의 귀엽고 밝은 소녀”라고 말했다.

시대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나선 그녀에 대한 칭찬과 감사의 뜻을 담은 글이었다.

아그네스 차우의 체포 소식은 일본에서도 파문을 일으켰다.

유창한 일본어를 활용해 일본 언론에 홍콩 상황을 자주 알렸던 아그네스 차우는 일본인들 사이에서 ‘민주주의 여신’으로도 불린다.

그녀가 체포되자 일본 트위터에서는 #Freeagnes(아그네스를 석방하라)라는 해시태그가 한때 실시간 화제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보석으로 풀려난 아그네스 차우는 “홍콩 정부가 없는 사실을 날조한다”고 비판하면서, 홍콩 경찰이 홍콩 국가안전법 위반을 이유로 자신의 여행 증명서를 압수해 보석 조건이 매우 까다로웠다”고 설명했다.

아그네스는 지난 11일 밤 자신의 페이스북에 “다녀왔어, 걱정 끼쳐 미안해”라고 글을 올리고 경찰서에 있었지만, 변호사로부터 홍콩과 해외 사람들이 보인 그녀에 관한 관심과 사랑을 전해 들었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는 “길이 험하니 모두 조심해!”라는 부탁했다.

중화권 네티즌들은 마스크를 착용한 채 바람에 머리가 흩날리는 아그네스 차우의 사진과 공산당 기관지의 논조를 그대로 따른 유역비의 영화 스틸컷을 비교한 사진을 공유했다.

이와 함께 “진짜 뮬란은 홍콩에 있다. 디즈니의 옛날이야기에 있는 게 아니다” “홍콩의 뮬란, 아그네스” “유역비 OUT, 아그네스 IN” 같은 메시지들이 SNS에 확산되고 있다.

지난 10일 지미 라이 등 홍콩 언론인들이 국가안전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자 “안타깝고 걱정됐다”고 했던 데니스 호는 아그네스 차우 석방 소식에 “경찰서 앞에서 10여 분 인터뷰한 걸 봤는데 평소처럼 담담하고 강인한 그녀를 보고 몇 번이고 한숨을 내쉬었다. 혼자서 조작된 기소에 맞서고, 불확실성에서 오는 두려움에 맞서야 했던 이 스물 몇 시간이 절대 쉽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글을 썼다.

또한 아그네스에게 “고생 많았고 잘 쉬도록 해, 홍콩은 너를 자랑스러워하고 있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