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이야기] 대만 북동 계절풍 ‘낙산풍’과 ‘딸꾹질’

원빈룽(溫嬪容·중의사)
2019년 03월 9일 오후 4:45 업데이트: 2022년 12월 13일 오전 10:07

대만의 북동 계절풍(낙산풍, 落山風)이 중앙 산맥을 휘몰아칠 때면 헝춘(恒春, 대만 최남단의 지명) 반도를 가로지르는데 순간 풍속이 소형 태풍에 필적할 정도로 강력하다. 이런 폭풍은 단지 헝춘뿐만 아니라 인생 노정 중에서도 늘 나타난다. 숲속의 피톤치드와 음이온은 양생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다. 하지만 왜 이렇게 빼어난 산수에 사는 사람에게도 때로는 낙산풍처럼 암이 찾아오는 것일까?

환자는 45세의 남성으로 시끄럽고 번화한 것을 싫어해 산속으로 들어가 꽃과 산새들과 함께 유유자적하게 살아왔다. 경제적인 문제와 개인적인 흥미로 과수원을 운영해 수입을 얻어왔다. 이렇게 눈 깜짝할 사이에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몸은 줄곧 아주 건강했지만 최근 들어 우측 눈속에서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뭔가가 팽창된 느낌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시력이 떨어진 것은 아니라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나중에는 점점 통증이 심해져서 어쩔 수 없이 산에서 내려와 안과를 찾아갔다.

안과에서는 검사 결과 눈에 아무 문제가 없으니 이비인후과로 가보라고 했다. 그는 이비인후과 쪽에 아무런 증상도 없었고 이비인후과 의사 역시 코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다. 결국 CT 촬영을 해보니 안구뒷면에 코와 가까운 곳에 5cm크기의 악성 종양이 발견됐다. 병원 시스템의 일반적인 치료법에 따라 그는 수술을 받고 항암 치료를 받았다. 이 모든 과정이 끝난 후 검사 결과는 모두 정상으로 나오자 그는 이제야 악몽에서 벗어났다고 기뻐했다.

하지만 항암 치료가 끝난 후 딸꾹질을 하기 시작했다. 평범한 딸꾹질이 아니라 24시간 끊임없이 딸꾹질이 나서 음식을 먹거나 잠을 잘 수조차 없었다. 먹지도 못하고 잠도 못자다 보니 건장했던 몸이 급속히 야위어졌고 뼈만 앙상하게 남았다. 그는 도처로 다니며 양방과 한방 의사들을 찾아다니며 치료를 받아왔지만 어언 2년이 흘러버렸다. 딸꾹질 하나가 모든 의사들을 패배시켰다. 근육 이완제, 진정제도 듣지 않았다. 암 수술과 항암 치료도 잘 버텨냈던 남자는 딸꾹질에 시달려 무너졌다.

그가 우리 진료실에 들어왔을 때의 일이다. 딸꾹질 소리가 들리자 주변에 있던 여러 사람들이 전부 그를 곁눈질로 보았다. 신기한 것은 현장에 있던 모든 이들의 마음이 전부 그의 딸꾹질 소리에 따라 헝클어졌다. 그는 딸꾹질 때문에 한마디 말조차 제대로 끝낼 수 없었고 아들이 대신 상태를 설명해야 했다. 그는 안면마스크를 쓴 것처럼 표정이 없었고 눈이 푹 꺼져 있었고 원망과 분노 어디에도 하소연할 수 없다는 체념의 눈빛이 있었다.

일부 질병에 대해서는 우선 자세한 설명과 함께 침치료를 받을 것인지 환자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 비록 침구 치료가 치료 과정을 단축시키긴 하지만 침을 아주 무서워하는 사람에게는 약만 사용할 수밖에 없다. 그는 상태가 아주 심했기 때문에 나는 직접 “침구 치료를 하셔야 합니다. 침이 아무리 아프다한들 딸꾹질하는 고통만 하겠습니까?”라고 말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침구치료: 우선 강자극을 하기 전에 사전 준비로 정신을 안정시키는 신정혈과 양기를 보하는 백회혈에 침을 놓았다. 임읍혈에 침을 놓고 피부를 따라 동공 방향으로 자입한 후 내관혈을 강자극하고 유문, 거궐, 구미, 중완혈에 침을 놓자 딸꾹질 소리가 줄어들었다. 잠시 후 나는 그에게 침을 계속 맞을 수 있을지 물어보았다. 그는 즉시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계속해서 위경의 중요한 혈인 찬죽혈에 침을 놓았고 마지막으로 족삼리와 공손혈에 침을 놓았다. 침을 다 놓는 그 순간 환자와 나는 동시에 깜짝 놀랐다. 딸꾹질이 갑자기 멈춘 것이다. 5분 정도 후 다시 시작되긴 했지만 빈도와 소리의 크기가 줄어들었고 집에 돌아간 후에도 상태가 유지됐다.

상태가 아주 심각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매일 침구 치료를 했다. 둘째날 재진해보니 전처럼 딸꾹질 소리가 크고 급했다. 이는 얼핏 실증(實證)으로 보이지만 항암 치료 후에 생겼고 오래된 병이기 때문에 허증(虛證)의 딸꾹질로 보아야 한다. 회양구침의 하나인 태계혈에 침을 놓았다. 엎드린 자세를 취하게 한 후 방광경을 따라가며 치료했다. 방광경은 신경총이 통과하는 곳이다. 격수, 간수, 비수, 위수혈에 15도 정도로 침을 눕혀서 피부를 따라 놓고 병사가 나가는지 시험해 보았다. 30분 자침 중에 그는 눈물이 날만큼 조용했다. 침을 뺀 후 두려운 눈빛으로 내게 말하길 매주 목, 금, 토요일이면 발작이 커지는데 저녁 되면 더 심했다고 한다. 그런데 다음날이 바로 목요일이었다. 나는 그에게 발작하면 급히 내관과 찬죽혈을 눌러주라고 알려주었다. 또 생강을 찧어 배꼽에 붙이게 했다. 특히 차가운 과일과 콩, 표고버섯, 부추, 소고기, 오리고기, 돼지껍질, 땅콩, 토란 등 성적인 흥분을 유발하는 음식들을 금하라고 당부했다.

처방은 대용량의 작약감초탕으로 경련을 풀어주었고 항암치료 이후 심장 기능이 떨어진 것을 감안해 사역탕으로 양기를 도와주었다. 또 항암 치료로 생긴 어혈과 기체를 풀어주기 위해 격하축어탕을 써서 횡격막 아래의 경결을 풀었다. 여기에 죽여를 더해 위를 돕고 잠이 잘오도록 했다. 증상이 심할 때는 한번에 두 봉씩 먹게 했다.

그가 집으로 돌아간 후 나는 줄곧 그에 대해 생각했다. 목요일에 낙산풍의 급습을 받지는 않았을까? 이틀 후 다시 방문했을 때 딸꾹질 소리가 크게 줄어들어 있었다. 그는 모처럼 편안한 밤을 보냈지만 새벽에 다시 딸꾹질이 도졌다고 했다. 하지만 병의 상태는 많이 누그러져서 대화를 할 수 있었다. “과수원 일을 하면서 농약을 뿌린 적이 있나요?”라고 묻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일년 내내 과수원을 가꾸면서 농약이 산바람을 따라 우회해 적지 않게 흡입하셨을 거에요. 산과 계곡물도 아마 오염이 되었을 텐데 이런것이 오래 쌓여 병이 생긴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내 말을 듣고는 고개를 떨궜다.

딸꾹질이 일어날까 두려운 마음은 한 달간의 침치료로 비로소 가라앉았다. 20차례 침치료 후 딸꾹질이 미미하게 남았고 30차례 치료를 거치며 완전히 사라졌다. 효과를 확실히 다지고 재발을 막기 위해 6차례를 더 치료했다. 결과적으로 두 달간 36차례 치료를 거쳤다. 그는 더이상 과수원 일을 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산에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