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IT 거물 1년에 한번 모이던 ‘우전 회식’…확 줄어든 규모 눈길

현지 언론 “업계 분위기 드러내...겨울 다가오는데 준비가 안 됐다”

LING YUN
2019년 10월 26일 오후 2:59 업데이트: 2019년 10월 26일 오후 3:15

지난 10월 22일 중국 저장성 우전(烏鎮)에서 열렸던 제6회 세계인터넷대회(WIC)가 열렸다.

이 대회는 중국 경제의 성장과 함께 중국 IT기업은 물론 세계적인 IT기업이 모이는 대회로 발전했지만, 올해에는 지난해와 달리 구글, 애플, 페이스북 등이 불참해 빛이 바랬다.

중국 IT업계에서 우전 인터넷대회는 대회기간 열리는 회식 자리로도 유명하다. 평소 만나기 힘든 CEO들이 한 자리에 모여 사적인 대화에서부터 비즈니스를 논하는 이른바 ‘우전 회식’이다.

올해 ‘우전 회식’에는 성황을 이뤘던 예년과 달리 또 다른 의미에서 화제가 됐다. 회식 주최자격인 딩레이(丁磊) 넷이즈 회장과 리옌훙(李彥宏) 바이두 회장 단 둘만 참석해 썰렁했기 때문이다.

지난 2014년 제1회 대회 당시, 폐막일 저녁 마련된 회식자리에는 중국 인터넷 업계 거물 8명이 한 자리에 모였다. 중국 IT업계의 활력을 상징하는 ‘우전 회식’의 시작이었다.

2014년 우전 회식. 왼쪽부터 마이크로소프트 해리 셤 부총재, 주윈라이(朱雲來) 중국금융공사(CICC) 전 회장, 왕웨이(王巍) 금융박물관 이사장, 장야친(張亞勤) 바이두 총재. 다시 오른쪽부터 리옌훙(李彥宏) 바이두 회장, 딩레이(丁磊) 넷이즈 회장, 장차오양(張朝陽) 써우후(搜狐) 회장, 톈쑤닝(田溯寧) 차이나넷컴 총재 | 왕웨이 웨이보

우전 회식은 이후 업계에서 좋은 반응을 얻으며 일종의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이듬해에는 딩레이 넷이즈 회장의 주최로 전년 멤버 외에 마화텅(馬化騰) 텐센트 회장, 양웬칭 레노보 CEO 등이 가세하며 참가자가 11명으로 늘었다. 이 모임은 ‘딩레이 회식’으로 불렸다.

2015년 ‘딩레이 회식’ | 양웬칭(楊元慶) 레노보 CEO 웨이보

딩레이 회식은 2016년에도 성황을 이뤘다. 중국판 트위터 ‘웨이보’를 서비스하는 신랑망의 차오궈웨이(曹國偉) CEO 등이 추가로 참가해 멤버는 최소 16명 이상으로 늘었다.

2016년 우전 회식 | 차오궈웨이 신랑망 CEO 웨이보

2017년 딩레이 회식은 참가자가 20여 명으로 늘면서 연회 방식도 자리를 정하지 않고 오는 대로 앉아서 먹고 가는 ‘리쉐이시(流水席·유수석)’식으로 운영됐다.

딩레이 회식이 인기를 끌면서 소모임 격인 ‘둥싱 회식’도 생겼다. 류창둥(劉強東) 징둥그룹 회장과 왕싱(王興) 메이퇀덴핑(美團點評·중국 음식배달앱) CEO가 따로 차린 모임이었다. 둥싱은 두 사람의 이름 끝 글자를 합친 명칭이다.

2017년 딩레이 넷이즈 회장이 주최한 우전 회식 | 웨이보

중국 금융전문 매체에서는 우전 회식에 모인 IT 거물들의 몸값이 4조 위안(약 660조원)이 넘는다(2017년 후룬 기준)는 보도도 나왔다. 기업들의 시가총액을 합친 금액이다.

번성하던 우전 회식은 2018년 크게 위축됐다. 세계인터넷대회 개막 전날 딩레이 회장이 우전의 한 카페에 나타나 마침 이곳에서 대화하고 있던 장차오양 써우후 회장, 장핑안(張平安) 화웨이 소비자 클라우드서비스 총재에 합석한 게 전부였다.

이후 마윈(馬雲) 알리바바 전 회장과 저우홍이(周鴻禕) 치후360 회장이 가세하긴 했지만, 전년의 화려한 회식은 없었고 5명이 술잔을 기울이는 조촐한 자리로 진행됐다. 2017년 ‘둥싱 회식’의 주역이었던 류창둥 회장과 왕싱 CEO는 나타나지 않았다.

2018년 노천카페에서 진행된 우전 회식 | 웨이보

올해 2019년 우전 세계인터넷대회에서도 딩레이 회장의 회식은 계속됐다. 다만, 이 자리를 빛낸 것은 리옌훙 회장뿐이었다. 회식이 반쯤 지난 뒤에야 중국 1위 서버업체 인스퍼(Inspur) 그룹 쑨피수(孫丕恕) 회장이 합류한 게 전부였다.

딩레이 회장과 리옌훙 회장 단 둘이 회식하는 모습이 중국 네티즌에 포착됐다. | 웨이보

이 자리에서 리옌훙 회장은 딩레이 회장에게 ‘오늘은 좀 추우니 뜨거운 것을 마시자’고 전해졌다. 딩레이 회장은 반소매 차림, 리옌훙 회장은 팔을 걷은 차림이었다.

현장을 전한 중국 투자조사기관 거룽후이(格隆匯)는 둘의 옷차림에 대해 “중국 인터넷 시대의 상징처럼 느껴진다. 겨울이 다가오는데 사람들은 준비가 안 돼 있다”고 논평했다.

거룽후이는 2017년 중국 온라인에서 유행했던 기업 회장들에 대한 풍자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당시에는 단순한 풍자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거의 예언 수준으로 들어맞았다는 것이다.

작자 미상의 이 시는 “아무것도 없는 왕젠린(王健林), 부인 아름다운 줄 모르는 류창둥, 알리 창업 후회하는 잭마, 보통가정 마화텅.(一无所有王健林,不知妻美刘强东;悔创阿里杰克马,普通家庭马化腾)”이라는 내용이다.

이 풍자시의 등장인물 4명은 모두 지난 2년간 극적인 부침을 겪었다.

중국 최고재벌 왕젠린 완다그룹 회장은 2017년 부패 연루 등의 혐의로 출국 금지됐으며 향후 거취가 불투명하다.

류창둥 회장은 작년 8월 불륜과 성폭행 사건으로 추락했다. 우전 회식을 생략한 행보도 곱지 않은 여론을 의식해 자중한 것으로 보인다.

잭마는 마윈 알리바바 전 회장의 영어이름이다. 그는 지난 9월 한창나이에 은퇴하고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고 있지만, 당국에 의해 내쳐지기 전 먼저 나갔다는 분석도 있다.

마화텅 회장은 이번 우전 대회에 “일신상의 이유”로 불참했다. 풍자시에서 마화텅을 수식한 ‘보통 가정’은 평범한 집안이라는 의미다. 마 회장은 고위 공직자 아버지 아래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늘 자신이 평범한 집안 출신임을 강조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