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중앙정부, 캐리 람에 대한 신뢰·존중 사라져”

2020년 10월 16일 오후 12:35 업데이트: 2020년 10월 16일 오후 12:36

SCMP “시정연설 갑작스러운 연기, 최고위 관리들도 몰라”

캐리 람(林鄭月娥) 홍콩 행정장관의 갑작스러운 시정연설 연기는 람 장관에 대한 중국 중앙정부의 신뢰가 사라졌음을 보여주는 신호라는 해석이 나왔다.

16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람 장관이 14일로 예정됐던 시정연설을 불과 이틀 전인 12일에 연기한다고 전격 발표한 배경을 두고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행정부 최고위급 관리들조차 시정연설 연기를 사전에 알지 못한 것이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시정연설은 홍콩 행정장관의 가장 중요한 연례 행사로, 향후 1년 동안 홍콩을 이끌 주요 정책과 방향을 제시한다.

람 장관은 12일 갑작스럽게 잡은 기자회견에서 “중앙정부로부터 이달 말 예정된 베이징 회의에 참석하라는 초대를 이제 막 받았다”면서 베이징에서 당국자들과 홍콩의 경제 부양 지원책에 관한 논의를 한 후 11월 말 시정연설을 하겠다고 설명했다.

SCMP는 “람 장관의 이같은 짧은 설명은 중국과 홍콩의 정치·경제 관계 변화에 대해 많은 것을 시사한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과거에는 일정이 겹칠 경우 홍콩 행정장관에 (일정 선택의) 우선권이 있다는 게 홍콩정부와 중앙정부의 공통된 생각이었고 그것은 ‘홍콩이 우선’이라는 의미였지만 이제 그런 시절은 지나갔다”고 한 친중 인사의 말을 인용해 전했다.

람 장관은 시정연설 연기를 발표하면서 중국 광둥(廣東)성 선전(深천<土+川>)시 경제특구 40주년 기념 행사 참석 사실도 알렸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참석한 이 행사는 지난 14일 열렸다. 람 장관이 시정연설을 미룬 것이 이 행사에 참석하기 위한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으나, 람 장관은 이를 부인했다.

또다른 친중 정치인은 중앙정부가 람 장관에게 시정연설을 미루라고 지시했는지는 불분명하다면서도 “베이징의 관리들이 람 장관에게 곧 웨강아오 대만구(大灣區·Great Bay Area) 발전 계획이 발표될 것이니 시정연설에 이를 포함하는 게 좋겠다고 넌지시 일러줬을 수는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웨강아오 대만구 프로젝트는 홍콩, 마카오와 선전을 비롯한 광둥성 9개 시를 한 데 묶어 2035년까지 경제·기술 특구로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계획이다.

홍콩정책연구소의 앤드류 펑 소장은 “과거 중앙정부는 홍콩 행정장관을 신뢰하고 존중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람 장관에게 같은 수준의 대우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치 분석가 레이 입은 “베이징은 홍콩의 시정연설 내용이 중국의 5개년 계획에 부합되길 원한다”면서 “이는 중앙정부가 홍콩의 정치적 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람 장관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신호”라고 지적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4일 광둥성 선전에서 열린 선전경제특구 40주년 경축 행사에서 참석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 AP=연합뉴스

앞서 홍콩 매체들은 선전시 경제특구 기념식에서 람 장관과 시 주석의 개별회동에 대한 가능성을 점쳤지만 불발됐다.

심지어 람 장관은 기념식에서 가장자리에 배치되고 다른 사람들보다 더 간격을 둔 채 떨어져 앉았다. 람 장관이 지난 9일 참석한 홍콩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공연의 연주자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은 여파가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시 주석은 기념식에서 홍콩의 젊은이들이 더 많이 중국 본토로 넘어와 일을 해야한다고 강조했지만 그 외 홍콩에 대한 발언은 하지 않았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