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자본 잠식’ 캄보디아 해안 마을, 혹독한 대가

인도-태평양 디펜스포럼
2022년 10월 3일 오후 11:19 업데이트: 2022년 10월 3일 오후 11:19

캄보디아 남부 타이만의 항구도시 시아누크빌은 유럽 관광객과 전 세계 배낭여행자들이 즐겨 찾는 해변 휴양지였다. 하지만 이제 그건 다 옛날이야기다.

중국 자본이 유입되고 10년도 지나지 않아 시아누크빌은 극적으로 변모했다. 이제 이곳은 도박꾼, 화이트칼라 범죄자, 글로벌 사기꾼들의 천국이 됐다.

해변은 목가적인 분위기가 사라지고 고층의 카지노 빌딩이 들어섰다. 밤거리는 네온사인으로 요란하고, 도시는 쇠락하는 국제도시의 특징인 돈세탁, 불법 마약 판매, 무기 거래, 인신매매, 야생동물 밀매가 성행하고 있다.

관측통은 이러한 대대적 변화가 2010년대 중반 정점을 찍었다가 지금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가라앉은 중국인 투자와 관광객 유입에 따른 것으로 보고 있다. 팬데믹이 잦아들면 상황은 언제든 재현될 수 있다.

시아누크빌의 악명은 캄보디아 유일에서 유일하게 대형선박이 입항할 수 있는 심해항로 인해 더욱 악화되고 있다.  인근에는 국제공항도 있다. 범죄단체들은 심해항과 국제공항을 이용해 불법 화물을 주고받는다.

캄보디아의 다른 지역들도 그렇지만, 시아누크빌은 중화인민공화국(중공)의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밀접하게 얽혀 있다.

수도 프놈펜과 시아누크빌 사이에는 새 고속도로가 놓였고, 새롭게 지어지는 다리와 수력발전소, 경기장, 도로 건설에는 중국 자금이 투입되고 있다고 미국 뉴욕에 기반을 둔 비영리단체 ‘중국노동감시(China Labor Watch)’가 지난 8월 보고했다.

당초 주민들은 중국의 투자를 환영했다. 카지노가 들어서면서 일자리가 생겨났다. 하지만, 조직범죄도 함께 들어왔고 부동산 수요로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캄보디아의 훈센 총리는 2019년 온라인 도박을 금지했고, 이어 코로나19가 펜데믹이 발생하면서 남은 관광객들마저 떠나갔다. 중국인들이 떠나자 도시는 짓다 만 건물과 휘황찬란한 카지노가 남아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시아누크빌 주민 샘포아는 미국 잡지 ‘디 애틀랜틱’과의 인터뷰에서 “지금은 쓰레기가 넘쳐나고 도로 상황도 나쁘다”며 “시아누크빌은 살기 좋은 곳이었지만 지금은 아주 살기 나쁜 곳이 됐다”고 말했다.

미국의 외교안보전문지 ‘더 디플로매트’는 지난 8월 보도에서 시아누크빌이 카지노 붐으로 무너졌다는 캄보디아인들의 발언을 전했다. “범죄가 급증했다. 물가는 현지인의 생활 수준 이상으로 뛰었다. 한때 인기 주말 휴양지였던 시아누크빌은 방문객 발길이 끊겼다. 카지노로 캄보디아의 명성은 나빠지고 합법적인 사업들도 이미지가 망가졌다.”

조직범죄를 분석하고 대응책을 제안하는 국제기구(Global Initiative)는 9월 보고서에서 시아누크빌을 “다각적 범죄활동의 허브”라고 진단했다.

이 보고서는 시아누크빌이 불법 벌목 목재의 수출지로서 국제 범죄 네트워크에 포함됐으며, 범죄자들이 관광 및 부동산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했다고 밝혔다. 또한 범죄자들이 장소를 바꾸고 활동을 조정해 사법당국의 미약한 추적을 피하고 있다고 했다.

LA타임스와 국제기구에 따르면 범죄조직 구성원 대다수는 중국인이다. 이들은 디지털 사기, 온라인 도박, 마약 밀매, 야생동물 밀매에까지 손을 뻗치고 있으며 추적을 피하기 위해 암호화폐를 사용하고 있다.

시아누크빌을 통한 범죄 유입은 캄보디아의 국가적 평판에도 악영향을 끼쳤다. 국제투명성기구의 2021년 공공 부문 부패 평가에서 캄보디아는 180개국 중 157위를 기록했으며, 부패가 인권탄압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

국제기구는 캄보디아의 한 정치인을 인용해 “(시아누크빌은) 중국 조직범죄에 장악돼 지역 경제까지 극심하게 왜곡하는 광범위한 불법적 양상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디 애틀랜틱’은 지난해 1월 중국의 영향력이 급속도록 확대되면서 시아누크빌이 경제적 측면은 물론 물리적으로도 변모했다고 보도했다.

“크레인과 건축을 위한 구조물이 도시 곳곳에 들어서고, 언덕과 숲은 불도저로 파헤쳐졌다. 우기 때 중요한 배수구 역할을 했던 호수가 매립되면서 홍수가 일어나고 있다.”

“폐수처리와 기타 중요 인프라의 한계를 넘어서는 개발로 곳곳에는 쓰레기 더미가 쌓이고, 하수는 이미 쓰레기로 뒤덮인 시아누크빌의 해변(길이 4.8km)으로 흘러들고 있다.”

<사> 캄보디아 주민들이 중국 자본으로 건설된 빌딩 숲 사이에서 빈곤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2020.2.16. | Paula Bronstein/Getty Images

중국인 투자자와 관광객이 시아누크빌을 떠나자 저임금으로 생활하던 주민들은 큰 타격을 받았다. 중국노동감시에 따르면 카지노와 건설 일자리가 사라지고 범죄가 주 수입원이 되고 있다. 아시아 국가를 대상으로 한 사기와 인신매매가 주요 산업이 됐다.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 출신으로 여러 차례 방문했던 유크 장은 “한때 캄보디아인의 소유였던” 한가로운 타이만과 끝없이 펼쳐진 해변을 떠올렸다.

그는 시아누크빌을 찾은 지 한 달 만인 2021년 11월 ‘더 디플로매트’에 “시아누크빌은 더 이상 내가 알고 있었던 곳이 아니다”라며 “거리에는 고층건물이 늘어섰고 많은 곳이 호텔이나 카지노였다. 다른 곳은 공터였거나 공사 중이었다”고 말했다.

“(도시에) 도착했을 때 무척 공허함을 느꼈고, 숨을 쉴 수 없었다. 내가 알던 시아누크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