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영화산업 불황 한파…업체 3천곳 문 닫고 배우 65% 개점휴업

판빙빙 사태 후 투자자 줄어...검열, 규제도 원인

리신루
2019년 12월 20일 오후 6:20 업데이트: 2019년 12월 20일 오후 7:43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규모를 자랑하던 중국 영화시장이 혹독한 불황기를 맞고 있다.

중국 배우 디리러바(Dilraba Dilmurat)는 최근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8개월 넘게 촬영이 없다고 밝혔다. 중화TV 인기 드라마 ‘왕의 여인(王的女人)’에서 항우 역할로 주목을 받았던 밍다오(明道) 역시 한 예능에 출연해 “반년 넘게 연기를 못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중국 경제지 제일재경(第一財經)일보는 15일 자체 집계를 통해 중국 본토와 홍콩, 마카오, 대만 연예인 9481명 중 올해 A급 이상 작품에 출현한 연예인은 전체의 1% 미만이라고 보도했다.

올해 1년간 작품 1편에 출연한 연예인은 20%에 못 미쳤고, 65%는 조연급으로도 영화나 드라마에 전혀 출연하지 못했다.

관객수도 줄고 있다. 영화 예매사이트 마오옌(貓眼)에 따르면 연중 최고 대목인 설 연휴(춘절) 기간 중국 극장을 찾은 관객수는 지난해보다 100만가량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드라마와 영화 생산량도 크게 줄었다. 중국 내 텔레비전·라디오·신문·출판·영화산업을 총괄 감독하는 광전총국(廣電總局) 통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중국 본토에서 제작을 기획 중인 드라마 숫자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7% 적게 나타났다. 제작 예정인 영화 편수도 작년보다 391편이나 줄었다.

중국의 기업정보 사이트 톈옌차(天眼查)에 따르면 2019년 문 닫은 영화·드라마 관련 회사 3,228곳으로 나타나 영화계 불황을 실감케 했다.

촬영 현장에도 불황의 그림자가 역력하다. 중국판 할리우드인 영화촬영소 ‘헝뎬(橫店)’ 은 가동률이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다. 중국 영화감독 위정(於正)은 “업계 가동률이 떨어져 1~2년 동안 촬영을 못 하는 중견 배우들이 많다”고 말했다.

보조 연기자들의 상황은 더 나쁘다. 단체로 한두 컷에 등장하고 끝나는 일이 다반사다. 헝뎬지역 음식점 주인들은 “10년 만에 가장 썰렁한 비수기를 맞았다”고 푸념했다.

중국 영화시장의 한파는 정부 당국의 높은 세금과 함께 지나친 ‘검열’도 한 요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자유로운 창작이 제한되고 체제 선전성 콘텐츠가 끼어들다 보니 다원화된 시청자들의 흥미를 끌지 못한다는 것이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헝뎬에서 일하는 영화계 관계자 장(蔣)모씨의 말을 인용해 “여배우 판빙빙(范氷氷)의 탈세 사건 이후 연예계 회계감사가 강해지면서 투자자가 확 줄었다. 회계감사에 대한 위험부담에 투자자들이 투자를 포기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장씨는 “드라마 검열이 심한 것도 이유다. 방송사 황금시간대 항일(抗日)드라마, 첩보물, 해방전쟁물은 모두 홍극(紅劇, 정권과 혁명을 찬양하는 드라마) 일색”이라고 꼬집었다.

대중문화 평론가 판빙(范濱)은 RFA 인터뷰에서 “일류 스타들도 일거리가 없다”며 “(당국의) 검열과 규제 때문에 무산되는 영화나 드라마가 많다”고 했다.

한 영화업계 관계자는 “많은 제작사들이 이번 한파를 넘지 못하고 있다. 더 많은 기업이 도산할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