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미국 내 反아시안 증오범죄 자국 체제 선전에 이용

이은주
2021년 03월 29일 오후 4:25 업데이트: 2021년 03월 29일 오후 5:18

미국이 최근 반(反)아시안 증오범죄 증가와 관련한 보도로 골치를 겪고 있는 가운데 중국 공산당(중공)이 이를 자국 선전에 적극 이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중공 정부은 아시아계 미국인들에 대한 범죄 증가를 지적하면서 미국이 중국의 인권 문제를 비판하기 전에 국내 인종차별 문제부터 해결하라며 반격에 나섰다. 

미국의 국내 문제를 부각해 자국 선전에 이용하는 행위는 중공 정부와 여타 권위주의 정권들이 자국의 악의적인 행동에 대한 국제 비난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해온 오래된 전술이다. 

지난 몇 주간 중국 관영매체들은 중공 정권에 대한 서방 국가들의 비난이 미국 내 반아시안 정서를 부추겨 인종차별적 범죄로 귀결됐다는 식의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중국 당국자들은 중공의 인권 침해에 대한 비난으로부터 주의를 분산시키기 위해 범죄 사건을 이용하는 동시에 공산당의 자체적인 통치 모델이 미국의 민주주의보다 우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는 중국이 지난 24일(현지시간) 발표한 ‘2020년 미국 인권침해보고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중국 국무원은 18페이지 분량의 보고서에서 “대유행이 시작된 이래 미 전역에서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공공장소에서 굴욕을 당하고 폭행까지 당하는 일이 발생했고, 일부 정치인들은 의도적으로 대중을 오도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미국 정부는 자국의 끔찍한 인권 기록을 자성하기보다 다른 나라의 인권 상황에 대한 무책임한 발언을 이어갔다”면서 ‘위선자’, ‘괴롭힘’, ‘이중잣대’라는 등의 단어를 사용해 미국을 비판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이번 사건이 ‘미국의 내재된 인권의 죄악을 보여준다’는 내용의 논평을 실으며 “아시아인에 대한 폭력에 맞선 대중의 항의는 구체적인 조치로 귀결될 것 같다”면서도 “하지만 전면적인 개혁과 진지한 자세가 없다면, 엉클 샘(Uncle Sam·미국을 의인화한 상징)은 등불 역할은 고사하고 인권 보호의 난장판을 치울 수도 없다”고 맹비난했다. 

고조되는 설전

인권 유린에서부터 경제적 압박에 이르기까지 서방 국가들의 공세가 계속되자 중국은 이러한 인종차별·증오범죄 내러티브를 활용해 대미 공격 수위를 더욱 높이고 있다.   

아시아계 미국인을 향한 공격과 폭행에 대해서 공론화를 통해 우려를 제기하는 것은 정당하다.

그러나 미중 정책 전문가들은 중공 정부의 비난 공세는 정당한 우려가 아닌, 자국의 인권 문제에 대한 ‘책임 회피용’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또 이번 사태를 통해 중공이 인권 문제 관련 책임을 피하기 위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계 한국인이자 ‘현존위험위원회: 중국’의 포로국가연합의 김세훈 이사는  “자신들이 중국 공산당으로서 하는 것은 모두 ‘자신들 눈에는 옳은 것’이고, 앞으로 같은 양의 비난을 받을 수 없다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그들을 위험하게 만든다”고 에포크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또한 중국과 미국 모두 인종차별이 존재하지만, 문제는 중국에 얼마나 많은 투명성이 있느냐는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 18일 미중 양국은 미국 알래스카에서 고위급 회담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중국 양제츠 국무위원은 “미국은 인권에 대해 더 잘할 수 있다”면서 “미국은 미국식 민주주의가 있고 중국은 중국식 민주주의가 있다”고 말했다. 

회담 직후 중공 관영매체 차이나 데일리는 중국의 인권 상황을 지적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에 대해 ‘도둑을 잡으라고 외치는 도둑’으로 묘사하며 반격했다. 

여기에 더해 중국 정부는 지난 22일 미국·유럽연합(EU)·캐나다·영국이 신장 위구르 소수민족에 대한 인권 침해를 이유로 제재를 가하자 이에 대한 보복에 나섰다.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회견에서 “미국 정부가 중국이 신장 위구르족과 여타 소수민족에게 하는 것처럼 합법적인 권리를 보호하고 진정으로 돌볼 수 있다면 미국 내 인종차별 문제는 오래전에 해결됐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 이사는 알레스카 회담에서 중공의 발언과 관련, “자유세계와 자유세계의 가치에 대한 중공의 태도가 어떤 것인지 보여줬다”고 평했다. 

중국이 언급한 ‘중국의 민주주의’는 오직 중공 정부의 범죄 행위를 정당화하는 데 사용된다는 지적이다. 

그러면서 그는 중공이 원할 때면 언제든 ‘중국’이라는 단어를 덧붙일 수 있지만, 이것이 중국이나 중국 문화를 대변한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짚었다.  

위선의 극치

중국 인민일보 자매지 환구시보의 한 기자는 서방이 외교적으로 힘을 앞세운 중국의 공격적인 접근 방식을 ’전랑(戰狼·늑대전사)’이라는 용어로 지칭하는 데 대해 명백한 ‘인종차별주의’이자 ‘백인 우월주의’를 증명하는 표현이라고 주장했다.

전랑은 지난 2015년과 2017년 중국 인민해방군 홍보를 위해 만든 애국주의 영화다.

환구시보는 또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중공의 대응 방식을 지적한 서구 정치인과 학자들을 “중국 혐오자”라고 낙인찍으며 “아시아계 커뮤니티가 증오 범죄 사건으로 공격받고 부상당하고 사망할 때마다 희생자들이 흘린 피에 대한 책임은 이 사람들에게도 있다”며 화살을 돌렸다.

그뿐만 아니라 물에 서서히 잠기고 있는 자유의 여신상 그림을 실었는데, 여신상의 다리에는 ‘인종차별주의’라는 글귀가 적힌 거대한 금속 공이 묶여 있다.  

이에 대해 중국 관영매체 기자였던 스테파니 류는 “미국이 혼란에 빠지면 누가 행복한가?”라고 반문하며 중공 정권이 의도적으로 문제를 부채질하려 한다고 진단했다. 

정책 분석가 블라드 데이뷰크는 중국 매체가 중국 공산당과 소위 ‘깨어난’ 좌파들의 선전을 옹호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했다. 또 이런 전략은 중공의 범죄 행위에 대한 주의를 분산하는 것에 불과하다고도 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잔혹한 정권 중 하나인 중공 정부가 미국을 향해 인권 비난을 서슴지 않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 시절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중국 정책 자문이었던 마일스 유는 마오쩌둥의 대약진 운동과 1959~1961년에 발생한 대기근을 거론하며 “이 나라는 위구르족을 상대로 대량학살(genocide)을 감행했고, 정치적인 이유로 수천만 명의 평범한 중국인을 살해하고 4천만 명가량을 굶겨 죽였다”고 말했다. 

이어서 “이런 정권이 미국을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비판하는 건 위선의 극치”라며 “중공의 비판은 단지 미국의 민주주의의 미덕을 폄훼하려는 책략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의’ 허용하지 않는 중공

이번 사태에 대한 중국 정부의 대응을 두고 중공과 미국의 근본적인 차이를 나타낸다는 관측이 나온다. 

김세훈 이사는 “적어도 미국과 자유세계는 발전하기 위해 우리 스스로를 비판할 수 있지만, 공산당 아래 중국은 국민들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강제 수용소, 노예 노동, 파룬궁에 대한 박해 등의 문제들이 발생해도 중공 정부가 이를 모두 부인하기 때문이란 게 그의 설명이다.  

이는 중국인들이 고통받고 있다는 징후이며, 중공은 서방의 독립적인 조사를 허용하고 국내에서의 비판을 허용해야 한다고 김 이사는 촉구했다. 

그는 “중국은 폐쇄적인 사회다. 철권(鐵拳)통치를 하는 정권이며 어떤 이의도 허용하지 않는 극단적인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념 아래 지배된다”면서 “이것은 우리 시대의 비극”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