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공산당 전위조직 공청단원 감소…공산당 내 ‘단파’도 몰락

최창근
2023년 05월 4일 오후 4:38 업데이트: 2023년 05월 4일 오후 4:38

중국 공산당의 청년 조직 중국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의 단원 수가 대폭 감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청단은 14세부터 28세 사이의 청년으로 구성되며, 28세가 된 단원은 간부직을 맡지 않는 한 조직을 떠나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공청단 조직 구성은 중국 공산당 체계를 그대로 따랐다. 리더인 중앙서기처 제1서기는 중국공산당 내 핵심 기구인 중앙위원(장관급)이 겸한다.

청년이 있는 조직이면 어디든 공청단이 존재한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등 각급 학교마다 조직이 있다. 중국을 대표하는 명문 베이징대만 해도 공청단 조직인 학교 행정조직과 학생회가 학생들을 이끈다. 공청단은  누구나 가입 가능한 조직이 아니다. 성적이 뛰어나고 학생들 사이에서 신망이 높은 학생들에 한해 교수나 기존 공청단원이 추천을 해야 한다.

지난날 출세의 보증수표로 꼽히던 공청단의 인기가 시들해졌음을 보여주는 통계가 발표됐다.

5월 3일, 공청단 중앙위원회가 발표한 통계에 의하면 지난해 12월 31일 통계 기준, 공청단원은 7358만 3000명으로 집계됐다. 2021년 기준 7371만 5000명보다 13만 2000명 감소한 수치이다.

기업 단원(657만 9000명)과 지역사회·마을 단원(2012만 2000명)은 각각 92만 8000명, 228만 명 증가했지만, 주력 단원인 학생 단원(4016만 3000명)이 364만 7000명으로 8.3% 포이트 감소한 것이 주원인으로 꼽힌다. 공청단 중앙위원회는 학생 단원만 대폭 감소한 구체적인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이 가운데 공청단원 감소 원인을 지난 3년간 반복된 코로나19 확산‧봉쇄로 인한 경기 침체에서 찾는 시각도 있다. 2023년 들어 중국 청년 실업률이 20%에 육박하고 대학 졸업 후에도 취업을 못 하여 노점상을 차리거나 택배 기사, 식당 종업원 등 비정규직에 종사하는 청년층이 급증하고 이들이 공청단에 등을 돌렸다는 분석이다.

다른 분석은 중국 공산당 내에서 ‘단파(團派)’로 불리는 공청단 출신의 몰락을 원인으로 꼽는다. 단파는 지난날 상하이방(上海幇), 태자당(太子黨)과 더불어 중국 공산당 내 3대 파벌로 꼽혔다.

공청단의 전성기는 후야오방(胡耀邦), 후진타오(胡錦濤) 등 ‘양후(兩胡)’가 이끌었다. ‘단파’의 원조로 꼽히는 후야오방 전 중국 공산당 총서기는 1953년부터 1966년까지 공청단 중앙서기처 제1서기로 일했다. 이때 후계자로 발탁한 인물이 후진타오이다. 후진타오는 1982년 공청단 간쑤(甘肅)성 위원회 서기, 1983년 공청단 중앙서기처 서기를 거쳐 1984년 제1서기로 승진하여 1985년까지 재임했다. 후진타오는 훗날 국무원 총리가 되는 리커창(李克強)을 후계자로 낙점했다. 베이징대 법대 출신의 리커창은 1976년 중국 공산당에 입당했고 베이징대 공청단위원회 서기, 공청단 중앙서기처 서기를 거쳐 1993년부터 1998년까지 공청단 제1서기를 역임했다.

공산당 내 엘리트의 산실로 꼽히던 단파가 몰락한 것은 시진핑 현 주석 집권 후이다. 태자당 출신의 시진핑은 집권 후 상하이방, 공청단파 등 다른 파벌 출신 간부를 하나둘 실각시켰다. 특히 당 총서기 3연임을 확정한 지난해 10월 제20차 중국 공산당 대회에서는 리커창 국무원 총리, 왕양(汪洋)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 등 공청단파는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에서 물러났다. 그 자리는 ‘시자쥔(習家軍)’이라 불리는 시진핑 친위부대로 채워졌다.

공청단 중앙서기처 제1서기 출신으로 ‘리틀 후(胡)’라 불리며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의 후계자로 꼽혔던 후춘화(胡春華) 전 국무원 부총리는 정치국 상무위원 진입은커녕 24인의 정치국 위원 명단에도 들지 못하고 중앙위원으로 사실상 ‘강등’되는 수모를 겪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