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으로 소련 붕괴…반면교사”

최창근
2022년 09월 1일 오후 1:32 업데이트: 2022년 09월 1일 오후 2:34

8월 30일 세상을 떠난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소련 공산당 서기장)에 대한 중국 공산당의 평가가 눈길을 끈다.

미국을 위시한 전 세계 정치 지도자들은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이 세계 자유와 평화 진전에 업적을 남겼다.”고 평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 성명을 통해 “고르바초프는 놀랄 만한 비전을 가졌던 사람이자, 자신이 본 미래를 위해 위험을 감수할 줄 알았던 드문 지도자”라며 “그의 결정은 세계를 더 안전하게 만들고, 수많은 사람에게 자유를 선사했다”고 말했다. 반면 중국 공산당은 다른 평가를 내렸다. 냉전 해체의 한 주역으로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역사적 인물이지만 고르바초프에 대한 찬사나 긍정적 평가는 중국 매체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미국 24시간 뉴스채널 CNN은 8월 31일, “중국 공산당은 고르바초프가 세계 평화와 자유화에 공헌한 업적보다 공산주의 제국(帝國) 소련 몰락에 끼친 영향과 교훈에 유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CNN은 “중국의 모든 정치 지도자들은 고르바초프를 민주주의 개혁의 위험성을 상징하는 인물로 받아들인다. 이는 중국 국내 정치를 충분히 통제하지 않으면 중국도 소련과 같은 운명에 처할 수 있다고 경계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중국 정부는 고르바초프 서거에 무미건조하게 논평했다. 8월 31일 정례 브리핑에서 자오리젠(趙立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고르바초프는 중국·소련 관계 정상화를 추동하기 위해 긍정적인 공헌을 했다. 우리는 그의 병사(病死)에 대해 애도를 표하고 가족에게 위로의 뜻을 전한다.”고 말했다.

반면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고르바초프 치하의 소련은 부분적 민주화를 대가로 결과적으로 소련 체제가 붕괴했다.”며 “이는 중국에 주는 교훈으로, 중국 공산당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길을 고수해 정치적 성숙함과 냉철함을 보였다.”고 했다. 즉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 조치로 인한 체제 붕괴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한다는 취지이다.

다른 중국 매체들은 애도의 메시지보다 고르바초프의 이력과 장례 일정 등을 건조하게 소개했다. ‘소련 최후 영도자’ ‘소련 공산당 마지막 총서기’ 등으로 지칭하며 그의 집권기에 소련이 붕괴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신화통신은 ‘소련 최후의 영도자 고르바초프, 병으로 별세’라는 제목으로 부고 기사를 보도했다.

후시진(胡錫進) 전 ‘환구시보’ 편집인은 31일,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그는 전 세계에서 가장 논쟁적인 리더 중 한 명이었다.” “본인 조국의 이익을 팔아 서양의 찬사를 받았다.”고 혹평했다. 중국 내 소셜미디어네트워크(SNS)에서도 강경 여론이 표출되고 있다. 한 웨이보 이용자는 “그와 이후 세대가 소련을 파괴했다. 공산주의 사상가 칼 마르크스와 블라디미르 레닌 앞에 부끄러울 것이다.”라고 평가절하했다.

이른바 중국 특색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서구식 민주화·자유화를 거부하며 독자노선을 걷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 노선과 소련 해체,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 붕괴는 중요 연구 과제로 꼽힌다.

2013년 국가주석이 된 시진핑은 취임 후 연설에서 소련과 공산당이 무너진 이유를 “이데올로기 혼선이 빚은 것이며 러시아가 소련 역사와 공산당, 레닌과 요시프 스탈린과 같은 지도자를 부정했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공산당의 모든 조직이 무력화되고 군대마저도 당의 지도에서 벗어났다. 결과적으로 그토록 거대한 소련 공산당이 무너졌다.”고 지적했다.

1985년 소련 공산당 서기장 취임 후, 각종 개혁을 추진한 고르바초프는 중국에 있어 경계 대상이었다. 1989년 5월, 고르바초프가 중국 국빈 방문 시에도 중국 공산당은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당시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학생·시민들이 민주화 개혁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고르바초프를 ‘민주주의 상징’으로 환영했기 때문이다.

소련 최고 지도자로서 중국을 첫 국빈 방문했던 고르바초프는 연설에서 “빠른 정치 개혁 없이는 경제 개혁이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지금 세계 사회주의 발전의 중요한 전환점에 서 있다. 사회주의 국가들이 표현의 자유, 인권, 민주주의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사회주의 발전 방향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결과적으로 연설은 방송되지 않았고, 학생들의 시위는 6·4 톈안먼 사건이라는 대규모 유혈 진압으로 마무리되었다. 이후 중국은 ‘민주화’를 생략한 채 경제 부문에서 개혁·개방 조치만을 취했다.

1991년 12월 고르바초프가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기 직전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신사고와 글라스노스트, 정치적 다원주의는 정치적 혼란과 종족 분쟁, 경제 위기만 불러왔다.”고 평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