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판 ‘트로이 목마’ 공자학원, 미국서 30여 지점으로 급감

2021년 05월 25일 오후 2:30 업데이트: 2024년 01월 27일 오후 9:04

미 바이든 행정부 들어서도 견제, 퇴출 가속
전 세계 1호점 개설된 한국은 23개 지점 성업

‘저렴한 중국어 교육’을 내세워 지점을 늘려가던 중국 공자학원이 미국에서 사실상 몰락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미 보수매체 워싱턴 이그재미너는 “미국 내 대학 100여 곳에 설치됐던 공자학원이 현재 수십 곳이 폐쇄되며 사라져가고 있다”고 전했다.

신문은 공자학원이 몰락의 길에 접어든 계기를 전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 중국의 교육기관 침투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 고조를 들었다.

공자학원은 중국어와 중국문화 교육기관을 표방하며 미국 대학·기업·지역사회와의 접점을 확대해왔다. 다른 외국어 교육기관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교육을 제공하고, 장소 대여 외에 별다른 지원을 요청하지 않아 학교 측으로부터 환영을 받기도 했다.

미국 정부와 의회는 중국 공산당 통일전선공작부 산하 기관인 공자학원이 중국 정부가 ‘외국으로 뻗은 손’이자 공산주의 체제와 이념을 선전하는 수단이자 악의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통로로 이용되고 있음을 발견했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인 작년 8월 미 국무부는 워싱턴에 있는 공자학원 미국센터(CIUS)를 중국 정부 산하의 ‘외국정부 대행기관’으로 지정했다. 순수한 교육기관이 아니라 외국 정부가 미국의 정책과 여론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운영하는 외교기관이라는 의미다.

신문은 미 국무부 자료를 인용해 현재 공자학원과 연계된 교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미국 대학은 27곳으로 축소됐지만, 공자학원은 대학뿐만 아니라 미국의 여러 기관과도 관계를 맺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르면, 미국 동부 명문대를 상징하는 아이비리그 중 유일하게 공자학원을 받아들인 컬럼비아대학은 10년간 운영하던 공자학원을 최근 폐쇄했다.

캐롤라인 아델만 컬럼비아대 언론홍보담당자는 “우리는 더 이상 공자학원을 운영하지 않는다”라고 확인했다.

공자상 앞에서 중국 공산당 당 깃발인 오성홍기를 펼쳐 든 서양인 초등학생을 학부모가 기념 촬영하고 있다. | AFP=연합뉴스

지난 1월 폐쇄된 컬럼비아대 홈페이지 공자학원 페이지에는 중국 출신 웨이더둥 교수가 지난 2018년 1월 공자학원 중국 측 원장에 임명됐다고 소개돼 있었다. 웨이 교수의 링크트인 프로필에는 여전히 컬럼비아대 공자학원 중국 측 원장으로 나타나 있다.

미국 정치전문 매체 프리비컨에 따르면, 웨이 교수는 중국 공산당 통일전선공작부와 관련된 인물이다. 매체는 중국 인민대학이 지난 2019년 12월 발표한 내용을 근거로 웨이 교수가 통일전선공작부의 종교사무 특별 전문가로 임명됐다고 전했다.

통일전선공작부는 통일전선을 수행하는 공산당 부서다. 통일전선은 공동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다른 세력, 적과 연합하는 전술을 가리킨다. 적 내부에 내통하는 세력을 심어 적을 무너뜨리는 전술도 포함한다.

공자학원 운영기관이었던 국가한반 역시 통일전선공작부 산하 기관이다. 현재 공자학원 운영은 민간기구인 ‘중외언어교류협력센터’로 이관됐지만, 이 단체 주요인물들이 국가한반 출신들로 구성돼 있어 간판만 바꿔 단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 의회가 설립한 초당적 자문기구인 미중 경제안보검토위원회(USESRC)의 2018년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통일전선공작을 통해 중국에 불리한 정책을 세우는 정치인·공직자·싱크탱크를 매수하거나 제거하고 있다.

보고서는 또한 시진핑 집권 후 통일전선공작이 더 강화됐으며 “공자학원을 비롯한 중국 정부 기관 또는 준정부기관은 통전부의 지도와 자금을 받아 해외 활동을 실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 국무부 역시 통일전선공작부의 활동에 주목하고 있다. 작년 12월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국무장관은 통일전선공작부와 관계된 인물의 미국 비자를 취소했다. 이 인물은 중국의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협박하고 괴롭힌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에도 국무부는 계속 중국의 침투를 감시하고 있다.

국무부 대변인은 워싱턴 이그재미너와의 인터뷰에서 “공자학원을 비롯한 중국 정부의 해외 영향력과 글로벌 선전 활동을 주시하고 있으며, 이는 미국의 학술 자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이러한 악의적인 활동 중 수많은 활동은 투명성이 떨어져 중국 정부와의 관계를 은폐하고 있다”며 “현재 27개의 대학이 공자학원과 협력해 교류 방문계획을 진행 중인 것으로 파악했다. 이는 2021년 초 44개보다 줄어든 것”이라고 전했다.

또한 학술 교류 프로그램이 당초의 방향성에서 빗나가고 있는 것을 우려해 공자학원과의 협력을 중단하는 대학들이 늘고 있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미국 학자협회(NAS)의 최근 집계에 따르면, 미국 대학 내 공자학원은 2017년 103곳이었으나 현재 77곳이 문을 닫았거나 문 닫을 예정이다.

웨스트버지니아 대학은 오는 6월 공자학원 운영을 중단하기로 했으며, 빙햄턴 대학은 7월, 클리블랜드 주립대학은 9월, 미시간 주립대학은 올해 말까지 공자학원을 폐쇄할 방침이다. 뉴욕 주립대학 검안대학원도 공자학원의 운영 중단을 검토하고 있다.

에릭 에징 공자학원 미국센터 대외교류 국장은 공자학원을 외국정부 대행기관으로 지정한 작년 8월 미 국무부 조치와 관련해 “이의를 제기한 상태”라며 공자학원이 순수한 문화교류와 교육기관이라고 주장했다.

공자학원은 2004년 한국 서울에 1호점을 시작으로 2020년 초까지 전 세계 162개국에 걸쳐 대학 내 540여 곳에 설립됐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23곳이 운영 중이다. 이는 초중고에 설치된 수업 프로그램을 제외한 수치다.

/강우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