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 관광비자 발급 중단한다” 했다가 2시간만에 말 바꾼 그날…어떤 일 있었나

남창희
2020년 03월 13일 오전 5:11 업데이트: 2022년 05월 28일 오후 7:01

지난 2월 2일 정부는 중국인 입국제한 조치를 발표했다.

이날 오후 5시 30분 기자회견에서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중국에서의 입국을 일부 제한하기로 했다”며 “후베이성에서 입국은 금지하고 내국인 허용하되 14일 자가격리한다”고 했다.

이어 “중국에서의 한국 입국을 위한 비자발급 제한, 관광목적 단기비자는 발급 중단을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박능후 장관은 기자회견장에서 분명히 “발급 중단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회견 후 사달이 났다. 언론에 배포한 보도자료에는 “관광목적 단기비자는 발급을 중단한다”고 못 박았기 때문이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박능후 장관은 작성된 발표문을 쭉 읽었다. 그의 손에 쥐어진 원고와 미리 준비한 보도자료 사이에 뭔가 엇박자가 난 게 분명했다. 정부는 부랴부랴 2시간 뒤인 이날 오후 7시37분 ‘발급 중단→중단 검토’로 수정한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이에 몇몇 언론에서는 “중국 측 항의로 뒤늦게 방침을 바꾼 것 아니냐”고 풀이했다.

중국에서는 우한 봉쇄 전, 500~600만명이 빠져나간 것으로 알려졌다. 관광비자를 금지했을 경우, 만약 이들이 한국 입국을 시도하더라도 상당수 차단할 수 있었던 부분이다. 하지만, 정부는 “실효성이 없다”며 관광목적 중국인 입국을 끝내 금지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중국의 항의가 실제로 있었을까? 이와 관련해 눈길을 끄는 사건이 있있다.

2일 박능후 장관이 ‘후베이성 입국 금지’ 발표하기 수 시간 전 네이버에 싱하이밍(邢海明) 신임 중화인민공화국(중공) 대사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제목은 <[단독]中대사 “韓, 중국인 입국금지 말라···WHO 권고 따라달라”>였다.

이 기사는 이후 <中대사 “신종코로나 통제 가능···247명 완치 후 퇴원”>으로 제목이 변경됐다.

싱하이밍 중화인민공화국(중공) 대사 단독 인터뷰 기사 제목. 왼쪽은 변경 후, 오른쪽은 변경 전. 중국 항의 논란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 네이버 화면 캡처

기사에서는 전날(1일) 싱 대사와 전화·이메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싱 대사가 한국 정부가 검토하고 있는 ‘중국인 입국 금지’와 관련해 반대 입장을 밝혔다고 했다. 세계보건기구(WHO) 규정을 근거로 제시했다고도 했다.

또한 싱 대사가 “지난 1일까지 247명의 중국 확진 환자가 완치 후 퇴원했다. 예방도 통제도 치료도 모두 가능한 병”이라며 중국의 투명성을 강조했다고 했다.

기사는 2일날 게재됐지만, 인터뷰는 1일 진행됐다. 싱 대사가 진짜로 “지난 1일”이라고 말했다면 어색하기 짝이 없다. 중공의 우한 폐렴 통계가 전날 자정 기준으로 집계된다는 점에서도 1일 통계를 1일 인용했다는 건 앞뒤가 안맞는다.

2월 1일 진행된 인터뷰에서 “지난 2월 1일까지”라고 언급한 것으로 게재된 기사 | 주한 중화인민공화국(중공) 대사관 홈페이지 화면 캡처

싱 대사는 지난 1월 30일 인천공항으로 입국해 공식 부임했다. 이날 공항에서 간단히 언론 기자회견을 마친 그는 31일 한국 외교부 차관, 국내 친중단체와 기업인들을 연이어 만나며 의료용품 지원 등을 요청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1일 “한국은 중국인 입국 금지 말라”며 부임 후 첫 인터뷰를 네이버에 콘텐츠를 제공하는 ‘차이나랩’과 진행한 것이다. 충분히 ‘입장 표명’으로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다.

네이버 기사에 달린 댓글도 흥미롭다. 이 기사에는 2만1800개의 ‘좋아요·화나요’ 등이 달렸다. 이 가운데 2만개는 ‘화나요’였다. 하지만 여론에 별 영향을 주지 않는 ‘화나요’보다 더 시선을 끈 것은 9천개 댓글이 달렸는데, 이 가운데 2700개가 삭제됐다는 사실이다.

삭제된 댓글 가운데 규정 미준수 삭제는 겨우 40건, 나머지는 작성자 직접 삭제였다. 네이버 댓글은 작성자가 일일이 삭제하지 않으면 탈퇴해도 삭제되지 않는다. 한 사람이 3~4개씩 달았더라도 1천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어떤 이유인지 최근 댓글을 삭제했다는 이야기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최근 부각된 ‘차이나게이트’로 설명하면 잘 들어맞는다. 차이나게이트는 한글을 어느 정도 구사할 수 있는 중국인 유학생, 조선족 등으로 구성된 중국 공산당 댓글부대가 한국 여론을 조작해왔다는 의혹이다.

마침, 지난 12일 검찰이 트위터 이용자 ‘김겨쿨’ 등 다수의 네티즌에 대해 ‘컴퓨터 등 장애업무방해’ 혐의로 조사하기로 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고, 네이버나 커뮤니티에서는 댓글 삭제 대거 현상이 관측되고 있다. 남겨진 댓글들을 살펴보면 삭제된 댓글들 상당수가 중국(중공)을 옹호하거나 극단적인 내용이 많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역시 차이나 게이트에서 댓글부대의 활동으로 지적되는 부분들이다.

한국 부임 후 빠듯한 일정 속에 첫 인터뷰를 포털 콘텐츠 업체와 가진 중공 대사,

“중국인 관광목적 비자발급 중단한다”고 했다가 2시간만에 말을 바꾼 한국 정부,

중공 대사 ‘단독 인터뷰’에 달렸다가 썰물처럼 삭제된 2700여개의 네이버 댓글.

“주권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대한민국이 국경을 열고 닫을 권리마저 옹근 제것으로 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