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누를수록 존재감 커지는 ‘고양이 전사’ 외교관 샤오메이친 주미대만대표

최창근
2023년 04월 11일 오후 2:23 업데이트: 2023년 05월 25일 오후 3:47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이 미국을 방문해 케빈 매카시 연방 하원의장과 회동한 후 중국의 대만 압박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중국은 압박의 일환으로 한 여성을 콕 집어 제재 명단에 올렸다. ‘대만독립분자(臺獨分子)’라는 명분으로 본인은 물론 가족까지 중국 입국 금지 대상으로 지정했다. 샤오메이친(蕭美琴) 주미국 타이베이경제문화대표부(Taipei Economic and Cultural Representative Office)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샤오메이친 대표는 중국의 ‘영구 제재’ 발표가 있은 후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와! 중화인민공화국(PRC)이 저를 두 번째로 제재했네요.”라고 썼다. 제재가 불쾌하거나 두렵다기보다는 즐겁다는 반응에 가깝다.

자신을 제재 명단에 올린 중국 공산당 대만공작판공실 게시물을 캡처하여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올린 샤오메이친 주미국 대만 대표. | 트위터 갈무리.

지난해에도 샤오메이친은 중국의 제재 대상 명단에 올랐다. 8월, 낸시 펠로시 당시 미국 연방 하원의장이 대만을 방문 후이다. 주미국 대만대표로서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을 성사시킨 주역이기 때문이다.

당사자 샤오메이친의 반응대로 중국의 대만 인사 제재는 실효성이 없다. 미국의소리(VOA) 방송도 이번 제재를 두고서 “일반적으로 대만 고위급 인사들은 중국을 찾지 않는다. 중국 법원은 대만에 관할권이 없기 때문에 중국의 이번 제재는 실효성이 거의 없을 것이다.”라고 해석했다.

중국의 제재는 역효과를 낸다는 분석도 있다. 내년 1월 대선에서 유력한 민진당 부총통 후보로 거론되는 샤오메이친 대표의 존재감을 부각한다는 의미이다. 더하여 미국에서 높아진 대만 외교의 위상을 방증한다는 분석도 존재한다.

일본 지지(時事)통신은 “샤오메이친 대표는 중국의 전랑(戰狼·늑대전사) 외교에 맞서는 전묘(戰猫·고양이전사) 외교로 미국 정가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전묘외교는 인권 존중, 자유 민주주의 가치를 내세워 극심한 외교적 고립 속에서 국제사회의 우군(友軍)을 늘려 나가려는 대만의 외교정책을 의미한다. 2020년 7월, 차이잉원 총통이 샤오메이친 대표를 임명하면서 “유연한 ‘고양이 전사’의 자질이 있다.”고 소개한 데서 유래했다. 이에 샤오메이친 대표는 “대만 외교는 팽팽한 밧줄 위를 경쾌하고 유연하게 걷는 고양이와 같다”면서 “중국의 오만하고 무례한 외교와 다르다.”고 강조했다.

샤오메이친 대표는 지난해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중국 공산당이 대만을 제재함으로써 대만의 국제적인 공간을 제한하고 대만 국민의 목소리를 억누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억압이 있는 곳에는 저항이 있을 것이다.”라는 글을 적었다. 게시글에는 ‘화내고 있는 고양이’ 사진을 첨부했다.

1971년 일본 고베에서 대만인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후 유년 시절은 대만 남부 타이난(臺南)에서 보냈다. 이후 미국 뉴저지주 몽클레어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오하이오주 오벌린대에서 동아시아학을 전공하고 컬럼비아대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성장 배경으로 인하여 중국어(베이징 표준어), 대만어(민남어), 일본어, 영어 등 4가지 언어를 구사한다.

유학 후 천수이볜(陳水扁) 전 총통의 영어 통역비서, 국제비서를 거쳐 민진당 국제부 주임으로 활동했다. 이후 4선 입법위원, 국가안전회의(NSC) 자문위원을 거쳐 2020년, 여성 최초로 주미국 대만대표로 임명됐다.

1979년 대만-미국 단교 후 처음으로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샤오메이친 대표. 2021년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이 열린 워싱턴 D.C 국회의사당을 배경으로 기념 사진을 남겼다. | 자유시보.

샤오메이친이 워싱턴에 부임한 후 트위터 계정 소개란의 직책명은 ‘주(駐)미국 대만 대사’라는 뜻의 ‘Taiwan Ambassador to the US’로 바뀌었다. 1979년 대만-미국 단교 후 워싱턴에 부임하는 대만 정부 대표의 공식 직함은 ‘대사(Ambassador)’가 아닌 ‘대표(Representative)’이지만 금기를 깬 것이다.

대만인의 피와 미국인의 피가 함께 흐르는 샤오메이친은 워싱턴에서 ‘대만 대사’로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며 대만 외교의 활로를 개척하는 데 앞장섰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샤오메이친 대표를 워싱턴 정가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대사 중 한사람으로 꼽기도 했다. 신문은 “샤오메이친 대표가 민주당‧공화당을 가리지 않고 정기적으로 주요 상‧하원 의원, 전‧현직 미국 관리들과 교제하며 친분을 다지고 있다. 대만은 어느 나라보다 워싱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외교 대표를 두고 있다.”고 보도했다.

광폭 행보를 하고 있는 샤오메이친 대표는 지기(知己)도 적잖다. 커트 캠벨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인도·태평양 조정관, 마이크 폼페이오 전 국무부 장관, 존 볼턴 전 국가안전보장회 보좌관 등 여야를 넘나든다.

2021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샤오메이친는 1979년 미국-대만 단교 후 미국의 정식 초청을 받은 첫 주미국 대표이기도 하다.

이 속에서 중국의 두 번째 제재는 샤오메이친의 존재감만 높여 준 격이다. 정리쥔(鄭麗君) 전 행정원 문화부장과 더불어 유력 민진당 부총통 후보로 꼽히는 그는 “대만의 대외 환경을 더 평화롭고 안정적으로 만드는 게 현재 유일한 목표이다.”라면서 신중한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