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서 커지는 ‘시진핑 책임론’, 홍콩 친중인사 이례적 비판

강우찬
2023년 08월 27일 오후 8:43 업데이트: 2023년 08월 27일 오후 8:45

이름 직접 언급은 안 했지만 모두 시진핑 정책 겨냥
재계인사의 공산당 지도자 공개 비판에 중화권 눈길

중국 경제가 위기에 빠진 가운데, “경제 문제의 근본 원인은 정치에 있다”는 주장을 담은 한 홍콩 기업가의 기고문이 화제다.

홍콩에서 한때 ‘선물의 대부’로 불린 사업가 류멍슝(劉夢熊·75) 화지(華資)증권 수석고문은 지난 21일 한 매체 기고문에서 중국 경제위기의 원인으로 이념 강화에 따른 사회 경직, 전랑외교로 인한 국제적 고립, 친러반미 행보로 인한 미국 및 서방과의 관계 악화 등을 들었다.

이는 모두 시진핑 정권 출범 후 도입된 정책들이다. 시진핑의 이름 석 자만 직접 언급하지 않았을 뿐, 현재 중국 경제 위기의 책임을 사실상 시진핑에게 돌렸다.

그동안 중국 경제위기에 관해 많은 중국 매체와 전문가들이 여러 가지 분석과 해법을 내놨지만 섣불리 공산당 지도부를 건드리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 홍콩 기업가이자 친중공 행보를 보여온 유력인사가 ‘어느 날 갑자기’ 시진핑을 직격하고 나선 것이다. 중화권의 이목이 쏠릴 수밖에 없다. 중국 온라인에는 류멍슝의 기고문을 분석한 영상과 게시물이 쏟아지고 있다.

류멍슝은 중국 정치권과도 거리가 멀지 않다. 중국 광둥성 출신으로 70년대 홍콩에 밀입국해 금융계에 발을 들인 후 주로 선물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증권맨으로 성장한 그는 2008년 중국의 국민의회 격인 ‘중국정치협상회의(정협)’ 전국위원에 선출돼 중앙 정계로도 진출했다.

정협위원은 선출로 결정되지만 실제로는 공산당과 중국 주요 단체 관계자들이 각 업종에서 사회적 영향력을 갖춘 인물을 추천한 후 지명하는 식이다. 정협위원에 선출됐다는 것은 친중공 인사로 공식 인정을 받는 셈이다. 영화배우 성룡(成龍·청룽), 견자단(甄子丹·전쯔단)도 정협위원이다.

홍콩 친중공 인사의 갑작스러운 시진핑 비판

그러한 류멍슝이 공산당 최고지도자를 비난하는 글을 주요 매체에 정식으로 기고한 일은 매우 이례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여진다. 기고문을 게재한 신문도 싱가포르 최대 중국어 일간지인 ‘연합조보(聯合早報)’로 싱가프로 내 대표적 친중 매체다.

이를 두고 공산당에 비판적인 평론가들은 “친중공 인사와 친중공 매체의 반란”으로까지 평가한다.

기고문의 전반적인 방향은 ‘정치를 추슬러서 다시 경제를 잘해보자’에 가까웠지만 시진핑의 실정을 조목조목 비판했다는 점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류멍슝은 글에서 “현재 중국 경제는 사기업 도산, 외국 기업 철수, 투자 위축, 수출입 감소, 소비 위축, 연쇄 디폴트, 실업 사태, 정부 재정 악화 등으로 위기에 직면했다”며 “중국 경제를 이끄는 투자·수출·소비 3대 엔진의 동력이 떨어졌거나 엔진이 꺼졌다”고 진단했다.

이어 “중국은 개혁개방 이후 고속성장을 이어왔는데, 왜 몇 년 사이에 상황이 급반전돼 급격히 하락하는가”라고 자문한 뒤, 경제 문제의 뿌리가 정치에 있다고 자답했다.

그는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시작했고, 그 후 중국은 경제 세계화의 급행열차에 편승해 ‘세계의 공장’이 됐고, 나중에는 이른바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됐다. 미·중 우호관계가 경제 발전의 중요한 원동력이 된 것”이라고 중국 경제의 성장 과정을 분석했다.

아울러 “경제 악화는 (당국이) 정치적으로 이데올로기를 강화하고, ‘마르크스가 옳다’고 견지하며 사유제를 없애고 투쟁철학을 강조하고 국가안전과 방첩 개념을 남용하고 정치체제 개혁을 거부한 데 따른 것”이라고 지적했다.

류멍슝은 또한 정부가 민영기업을 억누르고 국유기업을 밀어준 것, 모든 분야에서 공산당의 지도력을 강조한 것, 전랑외교로 미중 관계를 최저 수준으로 끌어내린 것, 일대일로 프로젝트로 돈을 살포했지만 진정한 동맹을 맺지 못한 것 등도 비판했다.

그는 현재의 중국이 “외교적으로 친러반미 행보를 보이면서 미국과 서방의 자금·기술·시장을 점차 잃고 있고, 개혁개방을 사실상 끝냈으며, 쇄국의 옛길로 되돌아가고 있다”며 잘못된 방향으로 향하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특히 비현실적인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세계 공급망을 타격을 준 일을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에 이은 세 번째 대재앙”이라고 강력 비판했다. 제로 코로나가 시진핑의 대표적인 방역 정책이었다는 점은 중국인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중화권 평론가들 “참다못해 터져 나온 불만”

중국 평론가인 호주 뉴사우스웨일즈대 정치학 박사 린쑹(林松)은 “류멍슝은 친베이징 인사였는데 최근 1~2년 사이 중국 공산당을 비판하는 언사가 갈수록 대담해졌다”며 “홍콩에서 사업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졌고 중국서 사업하기는 더욱 어려워져 입을 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린쑹은 “류멍슝은 공산당 내부에도 시진핑에 불만을 가진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라며 “공산당 내부의 많은 사람이 그를 지지하고 있기 때문에 감히 이렇게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이너서클’ 구성원 일부의 마음을 대변했다는 해석이다.

중국 문제 전문가 헝허(橫河)는 “현재 중국은 문화대혁명 이래 최악의 상황”이라며 “개혁·개방으로 이득을 본 사람들이 참다못해 해외에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그들은 이런 식으로 당국에 압력을 가해 현 상황을 바꾸려 한다”고 22일 자신의 개인 방송에서 말했다.

헝허는 류멍슝의 비판이 날카롭긴 하지만 깊은 곳까지 건드리지는 않아 일종의 보신을 했다고 풀이했다. “최근 몇 년 동안의 당국의 실책을 매우 포괄적으로 언급하며 그 뿌리가 정치에 있다고 지적했다”면서 더 깊이 파고들면 문제의 원인이 공산당 체제로 이어지기에 그곳까지 가진 않았다고 했다.

시사평론가는 리린이(李林一)는 23일 에포크타임스에 “이 글은 류멍슝이 시진핑을 노골적으로 비판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면서도 “그는 중국 공산당이 보존되기를 바라기에 시진핑에게 즉각적인 변화를 촉구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진정한 개혁보다는 기득권 유지를 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류멍슝은 지난 2013년, 홍콩의 한 자금세탁 사건과 연루되면서 렁춘잉 홍콩 당시 행정장관과 사이가 틀어졌고, 사건 수사를 무마하려다가 2016년 사법방해 혐의로 1년 이상 징역을 살고 나온 이후 중국과 홍콩 정부를 상대로 비판적 언사를 늘려왔으나 여전히 친중공 인사로 분류된다.

그는 지난해부터는 싱가포르 ‘연합조보’에 중국 공산당 당국의 정책을 비판하는 글을 잇달아 기고하고 있다. 평론가 헝허는 이 매체가 중국 공산당의 대외선전 매체라면서 다만 시진핑 파벌이 아닌 다른 파벌에 속해 있다고 관측했다.

* 이 기사는 닝하이중 기자가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