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서 영국인 4명 체포, 미국인 억류…‘인질외교’ 우려

캐시 허
2019년 07월 16일 오전 8:24 업데이트: 2020년 01월 2일 오후 12:06

무역전쟁, 홍콩 사태 등으로 미중관계가 불안정한 가운데 최근 중국에서 4명의 영국인이 체포되고 중국 내 미국인 기업 임원이 억류된 사실이 보도됐다. 이에 중국이 미국과 영국에 압력을 가하기 위해 인질 외교를 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중국 동부 장쑤성에서 마약 단속으로 영국인 4명이 체포됐다고 베이징 주재 영국대사관이 12일 밝혔다.

앞서 지난 9일 장쑤성 시저우시 경찰은 “마약 복용 양성반응이 나온 19명을 구속했다”고 발표했다. 경찰은 성명을 통해 이들 중 외국인 16명이 포함됐으며 모두 교사나 학생이었다고 전했다.

경찰은 외국인들의 신원을 밝히지 않았지만 이들 중 일부는 글로벌 교육 기업 에듀케이션 퍼스트(EF) 소속으로 알려졌다. 1998년 중국에 진출한 에듀케이션 퍼스트는 현재 중국 전역에 약 2000명의 영어 교사를 두고 있다.

베이징과 런던 사이의 관계는 최근 몇 주 동안 악화됐는데, 일부는 1997년 중국 주권에 반환된 전 영국 식민지인 홍콩의 자치권을 존중하겠다는 약속을 지키라는 영국 고위 관리들의 거듭된 요청 때문이다.

홍콩은 지금 진행되고 있는 범죄인 인도법안(일명 송환법)에 반대하는 항의 시위로 충격에 빠져 있다. 비판론자들은 이 법안이 시행되면 중국이 반체제 인사들을 날조 혐의로 기소하는데 이용할 수 있고 중국의 자치권을 더욱 잠식해 세계 금융 허브로서의 지위를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제러미 헌트 영국 외무장관이 홍콩이 최소한 50년 동안 자유와 자치를 유지할 것을 보장한 ‘중영 공동성명(홍콩반환협정)’을 준수하지 않으면 심각한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엄중히 경고한 바 있다. 또한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와 몇몇 영국 고위 관리들은 중국 정부에 홍콩 시민들의 권리와 자유를 존중해 줄 것을 요청해 중국의 심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비상장 기업인 코크(Koch) 인더스트리스의 임원이 중국에서 억류된 채 심문을 받았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지난 1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 6월 초 중국 남쪽의 한 호텔에 묵던 중국계 미국인 코크 임원은 중국 당국으로부터 호텔을 떠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여권을 뺏기지는 않았지만 이 임원은 며칠 동안 무역전쟁과 미중 관계 등에 대해 당국으로부터 심문을 받았고 미 국무부가 개입한 뒤에야 중국을 떠날 수 있었다.

미국과 중국은 지난 5월 협상이 결렬된 후 날로 고조되는 무역 갈등에 휘말려 있던 상황이었다.

NYT는 2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이 사건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내는 메시지로 해석됐다고 전했다. 코크 인더스트리스를 소유한 찰스 코크·데이비드 코크 형제는 공화당에 거액을 지원해 공화당의 가장 큰 자금줄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NYT는 비슷한 일을 겪은 미국인이 더 많다고 소개하며 미국 기업인을 향한 중국 당국의 신변 위협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중국 당국이 인공지능 회의 참석차 베이징에 온 전직 외교관을 심문하려 했던 일과 특별한 사건 없이 10년 넘게 중국을 드나들어온 한 기술 업체 임원도 유사한 경험을 했던 사례를 들었다.

베이징에 있는 중국 내 대표적인 미 법무법인 퍼킨스 코이 제임스 짐머먼은 타임스에 “미국인을 억류하면서, 중국 정부는 미국이 강하게 밀어 부치면 인질 외교를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매우 교묘한 방식으로 트럼프 행정부에 분명히 전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 국무부는 중국을 방문·여행하려는 미국인에게 중국의 자의적 법 집행에 대한 주의를 권고하고 조심할 것을 당부하는 여행 주의보를 지난 1월에 발령했다. 이는 지난해 12월 미국 정부의 요청으로 캐나다에서 화웨이 CFO 멍완저우가 체포된 후 캐나다 전직 외교관 마이클 코브릭과 대북 사업가 마이클 스페이버가 구속된 데 따른 조치였다.

이들 외에도, 중국에서 마약 밀매 혐의로 구속된 캐나다인 로버트 셸렌베르크와 팬 웨이에게 중국 법원이 지난 1월과 4월에 각각 사형을 선고했다. 당시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 같은 판결이 멍완저우 체포 사건과 무관하지 않다고 분석했다.

본지에서는 지난 1월, 수십 년 동안 중국 공산당이 서구 국가들로부터 정치적, 경제적 이익을 얻어내기 위한 협상 카드로 ‘인질 외교’를 이용해왔다고 보도한 바 있다.

로버트 팔라디노 미 국무부 부대변인은 지난해 정례브리핑에서 “중국을 방문하거나 중국에 거주하는 미국 국민은 임의로 심문을 받거나 억류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