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공 대신 중화민국? 짧지만 강렬했던 美 국무부 차관의 대만 2박3일

류지윤
2020년 09월 20일 오전 11:34 업데이트: 2020년 09월 21일 오전 9:56

19일(현지 시각) 키스 크라크 미 국무부 경제담당 차관이 2박 3일의 대만 방문 일정을 마치고 귀국길에 올랐다.

크라스 차관의 대만 방문은 치밀하게 기획된, 중국과 전 세계를 향해 매우 강력한 메시지를 발신한 전략적 제스처로 풀이된다.

단교 이후 최고위직 관료의 대만 방문

크라크 차관은 지난 17일 미 국무부 방문단을 이끌고 대만 북부 타오위안 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1979년 미국-대만 단교 이후 40년 만에 대만을 방문한 미국 최고위급 관료이자 미 국무부 내 경제문제 전문가다.

대만 방문 둘째 날인 18일 크라크 차관은 이언 스테프 미 상무부 부차관보와 함께 대만 행정원 부원장(부총리격), 경제부장 등과 경제 회동을 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산업 공급망 안보, 기술·에너지 문제 등을 두루 논의한 이번 회동은 미-대만 간 무역협정을 위한 준비과정 성격으로 분석됐다.

크라크 차관은 저녁에는 대만 총통부로 돌아가 차이잉원 총통이 주최하는 환영 만찬에 참석했다. 미 국무부 대표단과 대만 정부 관계자들이 모인 이 만찬에 기업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장중머우(張忠謀) 전 TSMC 회장이 초청됐다.

대만 TSMC는 세계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 업체(파운드리)다. 미국의 제재 전까지 중국 화웨이에 핵심 반도체 부품을 납품하던 주요 공급업체다.

TSMC 창업자이기도 한 장 전회장은 차이 총통, 크라크 차관과 셋이서만 따로 기념사진을 촬영하며 인상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크라크 차관(왼쪽), 장중머우 전 TSMC 회장(오른쪽)과 기념사진 찍는 차이잉원 총통 | 차이잉원 총통 페이스북

미국은 화웨이에 대한 반도체 수출을 금지했다. 이 조치로 화웨이는 스마트폰과 5G네트워크 분야에서 사실상 사형선고를 받았다는 평가다. 기껏해야 1년 반 정도 버틸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크라크 차관과 대만 TSMC 창업자와의 만남이 이뤄졌다. 중국 반도체 산업을 철저하게 제압하겠다는 미국의 분명한 신호다.

크라크 차관이 미국 주도의 ‘경제번영네트워크’(EPN) 핵심 추진 인물이라는 점도 이목을 끈다. EPN은 공산주의 체제인 중국을 배제한 경제블록이다. 대만은 중국을 대신할 새로운 공급망의 핵심 국가로 떠오르고 있다.

대만은 아태지역 ‘민주주의 보루’

크라크 장관의 대만 방문 둘째 날 일정의 테마가 ‘경제협력’이었다면 마지막 셋째 날인 19일 테마는 ‘민주주의’였다.

이날 귀국행 비행기에 오르기 전 크라크 장관은 타이베이 북부 단수이의 진리대학 예배당에서 열린 고 리덩후이 전 대만 총통의 고별 예배에 참석했다.

리덩후이는 중국이 가장 비난하는 대만 정치인의 하나다. 생전에 ‘미스터 민주주의’로 불린 그는 대만이 민주주의 체제로 전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다.

지난 7월 30일 그가 별세하자, 중국 공산당 기관지 환구시보는 “조국 분열의 씨앗을 심은 인물” “용서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크라크 장관의 리덩후이 고별 예배 참석은 대만의 민주주의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나타내는 동시에 더 나아가 대만 독립에 대한 은근한 긍정 메시지로도 읽힌다.

“대만의 국제기구 진출 적극 지지”

대만과 관계를 강화하겠다는 미국의 메시지는 비슷한 시기 태평양 건너 뉴욕에서도 발신됐다.

크라크 차관 대만 방문 하루 전인 16일 미국 뉴욕에서는 켈리 크래프트 유엔 주재 미국대사가 대만 총영사격 인물과 점심 식사를 함께했다.

맨해튼의 한 야외 식당에서 공개적으로 진행된 식사는 언론의 카메라를 통해 매우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국제사회에 전해졌다.

켈리 크래프트(오른쪽) 유엔 주재 미국 대사가 16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의 한 야외 식당에서 리광짱 뉴욕주재 대만 경제문화판사처 처장과 오찬 회동을 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AP통신에 따르면, 크래프트 대사는 이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대만과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이날 만남을 “역사적 회동”이라고 평가했다.

그녀는 “베이징이 대만을 소외시켰지만, 대만 2400만 국민의 목소리가 (국제사회에) 들려야 한다”며 “미국은 대만이 유엔에서 각종 활동에 더욱 활발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최대한 도울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국이 나서 중국에 맞서 싸우지 않는다면 누가 대만을 위해 그렇게 하겠나”라고 덧붙였다.

유엔 주재 미국 대표부는 지난 5월에도 “대만의 유엔 가입을 지지한다”는 트윗을 올리고 “유엔은 모든 목소리를 위해 봉사하는 데 목적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편, 대만의 대중 강경파인 왕딩위 입법회 의원은 19일 크라크 차관의 대만 방문에 대해 “크라크 차관이 산업 공급망, 경제무역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민주인권 의제를 포함시켰다”며 “대만 외교의 돌파구이자 산업발전의 새로운 전기가 마련됐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