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공군 해커의 기술절도에 파산한 세계 최대 통신업체 ‘노텔의 교훈’

윤건우
2020년 08월 28일 오후 12:04 업데이트: 2020년 08월 28일 오후 12:44

지금은 캐나다가 글로벌 통신업계에서 큰 인지도를 지닌 국가는 아니지만 지난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캐나다는 세계 최대 통신장비업체를 보유한 국가였다. 바로 노텔 네트웍스다.

114년 전통의 기업이었던 노텔은 한때 직원 수 10만여명, 시가총액 2830억 달러에 달했지만 지난 2009년 파산했다. 중국 공산당(중공) 산하 인민해방군 해커들의 기술절도가 큰 이유였다.

세계 최대 통신장비 업체의 파산

2004년 노텔의 광섬유 설비는 전 세계의 부러움을 샀다. 당시 세계 인터넷 트래픽의 70%가 캐나다 기술을 사용했다.

당시 노텔의 사이버 보안전문가 브라이언 쉴드는 영국의 회사 서버에서 누군가 문서를 다운로드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역추적한 결과 접속 위치가 상하이였고, 이러한 해킹이 2004년 초부터 이뤄지고 있었다.

쉴드는 추가적인 조사를 통해 해커가 노텔 직원 7명의 계정을 원격 통제하고 있음을 발견했는데, 여기에는 당시 회사 사장의 계정까지 포함돼 있었다.

쉴드는 정교한 해킹 수법과 밀집도로 볼 때 개인이나 일반적인 해커의 소행이 아니라고 확신했다. 노텔의 기술을 빼돌린 상하이의 컴퓨터 인터넷 주소를 추적한 결과 방 하나에 인터넷 서버 수십 개가 빼곡하게 들어선 정도로 트래픽이 밀집됐기 때문이다.

그는 “누가 해커들을 고용했는지 모르겠지만 중국의 인터넷을 장악한 수준의 인물로 보였다”고 말했다.

쉴드의 사건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중공군 해커들은 노텔의 컴퓨터에 백도어를 설치하고 데이터를 암호화해서 상하이와 베이징으로 발송했다. 이러한 해킹은 2009년 회사가 파산할 때까지 계속됐다.

쉴드는 이를 “외국 군대가 비밀리에 캐나다의 금고로 통하는 터널을 만들어서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금괴를 가져가는 것”에 비유했다.

노텔의 침몰과 화웨이의 ‘굴기’

쉴드는 노텔에서 빠져나간 기술과 영업 기밀이 화웨이로 흘러 들어갔을 것이라고 봤다.

화웨이는 노텔 파산 전 한 계약 입찰에서 훨씬 낮은 가격을 써내 노텔을 밀쳐냈고, 노텔이 파산을 신청한 다음 해인 2010년에는 포천 500개 기업에 이름을 올렸다.

쉴드는 이런 사건은 기업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정부 차원의 보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유능한 경영인을 초빙해 경영하게 할 수는 있다. 하지만, 기업이 국가와 싸워야 한다면 캐나다 정부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고 했다.

캐나다 당국이 해킹 위협을 경고했지만 노텔 측이 진지하게 대응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다.

캐나다 보안정보국(CSIS) 전 아시아태평양 책임자였던 미셀 주노 가쓰야는 익명을 요구한 전직 보안국 동료를 인용해 “정보국에서는 1990년대 노텔이 처한 리스크를 평가하는 과정에서 중국 정부가 이 회사를 노리고 있음을 파악했다”고 했다.

가쓰야는 노텔에 이 사실을 경고했지만 회사 측은 이를 무시했다며 “노텔 경영진은 수십 년 동안 중국과 관계를 수립해왔다. 노텔 해킹 사건과 관련해 통일전선공작부의 그림자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어 “중국이 통일전선(적과 내통하는 전술)을 이용해 노텔을 망가뜨렸다”며 “훔쳐낸 기술을 넘겨주고 지원금을 제공해 화웨이의 성장을 도왔다”고 지적했다.

중국 공산당 ‘통일전선전술’ 경계해야

앨릭스 조스키 호주 전략정책연구원(ASPI)은 올해 발표한 보고서에서 “중국 공산당은 통일전선을 통해 거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스파이 네트워크를 구축했다”며 “이 네트워크는 비즈니스·정치·범죄조직을 동원해 서방의 정치인과 기업인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기술을 절도한다”고 밝혔다.

해킹으로 산산조각이 난 초우량 기업 노텔의 교훈은 오늘날 캐나다 사회에 새로운 의미를 던져주고 있다. 바로 화웨이의 5G 시장 침투에 대해서다.

캐나다의 홍콩 민주화 단체인 ‘캐나다 홍콩 연맹’의 체리 웡(王卓姸) 대표는 “과거 캐나다 정부는 노텔을 보호하지 못했다”면서 “화웨이의 캐나다 5G 시장 진입을 막지 못하면 국가가 위험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웡 대표는 “중국 공산당은 이미 캐나다에 있는 중국계 이민자들 가운데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을 위챗이나 틱톡 등의 앱을 통해 추적하고 공격한다. 화웨이가 캐나다의 5G 시장에 진입하면 이러한 개입은 더욱 거세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