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중 英대사관, 톈안먼 당시 인민일보 기사 中SNS 게재…20분만에 삭제

강우찬
2023년 06월 5일 오전 11:17 업데이트: 2023년 06월 7일 오후 11:17

주중 영국대사관이 지난 4일 톈안먼 사태 당시 상황을 전한 공산당 기관지 기사를 중국 SNS에 올렸다.

소식통에 따르면, 이 게시물은 공산당 당국의 인터넷 검열로 채 20분도 안 돼 삭제됐다.

이날 다른 유럽 국가의 주중 대사관에서도 톈안먼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글을 게시했지만 상당수가 지워졌다.

삭제된 영국 대사관의 웨이보 게시물은 1989년 6월4일 톈안먼 사태 당일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지면이었다. 중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매체 기사조차 검열됐다는 사실은 공산당 치하 중국의 현실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된다.

해당 지면에는 다수의 부상자를 수용한 병원 상황을 다뤄 피해 규모를 짐작게 하는 기사가 실렸다. 당시 기사가 나가자 중국 당국은 인민일보 편집 방향을 비판했고 편집자를 징역형에 처했다.

톈안먼 사태는 중국 공산당이 군을 동원해 학생과 시민을 학살한 사건이다. 사망자 수는 집계 단체마다 큰 차이를 보인다.

중국 정부가 공식 집계한 사망자는 300명 미만이다. 사건 직후인 1989년 6월 6일 중국 국무원 위안무 대변인은 기자회견을 열고 사망자를 군인 포함 약 300명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같은 달 19일 베이징 당서기는 정부 확인 사망자 수는 민간인 218명(대학생 36명 포함), 군인 10명, 무장경찰 13명 등 총 241명이며, 7천 명이 부상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2017년 기밀 해제된 영국 문서에 따르면 사망자가 최소 1만 명이다. 이 수치는 1989년 당시 영국대사였던 고 앨런 도널드 경이 중국 국무원 내의 ‘라오펑요(老朋友·오랜 친구)’가 준 정보를 바탕으로 밝힌 것이다.

도널드 경은 추후 이 수치를 3천 명 정도로 수정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중국 당국이 공식 발표한 사망자 수보다 월등히 큰 규모라는 점은 변함없다.

중국에서는 톈안먼에 관한 사안들은 사소한 것이라도 엄격하게 규제되고 사건 정보도 엄격히 규제된다. 학교에서 언급되는 것은 금지됐으며, 대학에서의 학술적 차원의 접근조차 원천 차단됐다. 온라인에 검색해도 아무런 정보를 찾을 수 없다.

사건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쉬쉬’하는 차원의 일이 됐지만, 그 이후 태어나 자란 세대들은 중국 공산당이 과거 톈안먼 광장에서 참혹한 학살극을 벌이며 중국 미래 세대의 싹을 자른 잔인한 정권이란 사실을 모른 채 온라인에 확산된 극단적 애국주의에 빠지기 쉽다.

영국대사관은 이날 “결사·집회·언론의 자유는 중국 헌법에 규정돼 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보장돼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다른 유럽 대사관들은 톈안먼 사태를 직접 거론하는 대신 우회 언급하는 전략을 채택했다.

스웨덴 대사관은 자국에서 1931년 발생한 대규모 총파업과 이를 진압하기 위해 투입된 군의 발포로 노동자 5명이 사망한 사건에 대한 글을 올렸다. 이 비극적 사건 이후 치안 유지에 군을 투입하는 것이 스웨덴에서 법률로 금지됐다고 전했다.

네덜란드 대사관은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파괴된 러시아군 전차 사진을 올리고 “이 전차는 민주주의의 취약성과 복원력을 일깨우고 있다”고 썼다.

주중 네덜란드 대사관(荷蘭駐華大使館)이 4일 올린 중국어 게시물. | 웨이보 화면 캡처

폴란드 대사관은 이날 1989년 6월4일 치러진 총선 당시 모습을 촬영한 사진을 올렸다. 이 선거는 중국 톈안먼 민주화 운동의 영향을 받아 발생한 것으로 동유럽 ‘1989년 혁명’의 기폭제가 됐다.

이 혁명으로 폴란드는 평화적인 정권 이양과 민주화에 성공했고 그해 12월 말 국명을 ‘폴란드 인민공화국’에서 ‘폴란드 공화국’으로 변경했다. 폴란드의 공산정권 붕괴는 주변 동유럽 국가에 연쇄 효과를 일으켰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가 그 대표 사례다.

동유럽 공산정권 붕괴의 시발점이 된 중국 톈안먼 민주화 운동이 정작 중국에서는 꽃을 피우지 못한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중국 누리꾼에 따르면 폴란드 대사관의 게시물은 한 차례 삭제됐으나 대사관 측에 의해 다시 게재됐다.

캐나다 대사관도 “역사적인 이날을 결코 잊지 않겠다. 언론·집회·결사의 자유 그리고 신앙의 자유는 이 세계의 보편적 가치”라는 글을 올렸다. 나중에 삭제되자 게시물을 캡처한 이미지를 다시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