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美대사 “한국, 대중 반도체 수출통제 동참해야”

김태영
2023년 01월 11일 오후 5:14 업데이트: 2023년 01월 11일 오후 6:21

블룸버그 인터뷰서 “韓·日·네덜란드와 논의 중”
산업부 외신 대변인실 “아직 美 공식 요청 없어”

주일 미국대사가 미국이 주도하는 대중국 반도체 수출 규제 효과를 강화하기 위해 일본·네덜란드·한국이 모두 동참해 협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9일(현지시간)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람 이매뉴얼 주일 미국대사는 “미국은 현재 대중국 반도체 수출 규제와 관련해 한국·일본·네덜란드와 논의 중”이라며 “더 강력한 대중 규제를 위해 해당 국가들이 모두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일본, 네덜란드는 반도체 분야에서 서로 다른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며 “양자 간 협력을 넘어 다자간 협력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반도체는 미국이 중국과의 경제적 경쟁에서 사활이 걸렸다고 평가하는 최우선 분야다.

지난해 10월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는 첨단 반도체와 반도체 제조 장비 및 기술을 중국에 수출하는 것을 전면 금지하는 무역 규제 조치를 발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군의 첨단 기술 접근과 개발을 제한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의 반도체 산업이 단순히 민간 차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중국 공산당 산하 인민해방군의 군사력 강화를 위한 핵심역량이라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실제로 중국은 민군 융합 방식으로 미국에 도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6월 조지타운대학교 안보·기술 연구소인 CSET가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인민해방군은 미국의 규제를 우회, 미국산 기술이 들어간 반도체 칩을 사들여 전투용 AI를 학습시켰고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주일 미국대사 이매뉴얼 역시 “반도체는 첨단 기술의 핵심 요소”라며 한국, 일본, 네덜란드 등 글로벌 반도체 강국들이 미국의 대중 정책 행보에 동참해줄 것을 촉구했다.

일본과 네덜란드를 함께 거론하긴 했지만, 이매뉴얼 대사의 발언은 사실상 한국에 큰 비중이 실린 것으로 보인다.

블룸버그 통신 보도에 따르면 앞서 지난달 12일 일본과 네덜란드가 미국의 대중 반도체 수출 규제에 동참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이매뉴얼 대사가 언급한 3국 중 한국만이 태도 표명을 미루고 있는 셈이다.

한국은 반도체 전쟁 중인 미국과 중국 양국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중국 역시 한국을 자기편으로 포섭하려 극적인 구애 활동을 펴고 있다.

한국이 돕는다고 중국이 처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이 완전히 미국에 협력하면 중국의 반도체 산업이 지금보다 훨씬 큰 위기에 직면할 것은 분명하다.

이는 왕이 전 중국 외교부장의 발언에서도 뒷받침된다.

왕이 전 부장은 이임 전이었던 지난해 12월, 한국의 박진 외교장관과 화상회의에서 “미국의 대중 반도체 규제는 한국과 중국 모두에 피해를 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중국은 한국과 협력해 선린우호의 큰 방향을 견지하고 전략적 소통을 강화할 용의가 있다”며 “안전하고 원활한 생산 및 공급망을 보장하기 위해 양국 간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의 반도체 산업을 지원해달라고 한국에 촉구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블룸버그는 한국 산업통상자원부 외신 대변인의 발언을 인용해 “한국은 아직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 규제와 관련해 미국과 협의하고 있지 않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해달라는 에포크타임스의 요청에 산업부 외신 대변인실은 “현재까지는 논의된 바 없는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다만, 그 이유에 대해서는 “미국 측의 요청이 없었기 때문”이라며 “향후 미국의 공식적인 요청이 있다면 논의해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그동안 언론을 통해 전해진 상황과는 미묘한 차이를 나타낸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매뉴얼 주일대사는 9일 전화 인터뷰에서 “미국이 한국과 일본, 네덜란드와 중국에 대한 반도체 수출통제를 논의 중”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한국 언론도 비슷한 보도를 낸 바 있다. 지난해 12월 11일 경향신문은 케빈 울프 전 미 상무부 수출통제 담당 차관보가 워싱턴 한국 특파원과 인터뷰에서 “미국은 한국, 일본, 네덜란드를 비롯한 가까운 동맹국들도 공통의 이해관계에 기반해 유사한 통제 조치를 도입해 보조를 맞출 것을 요청하고 있다”고 보도했었다.

에포크타임스는 울프 전 차관보의 발언이 사실인지, 이매뉴얼 대사와 울프 전 차관보가 밝힌 미국 정부와 한국과의 논의가 비공식적이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