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에 생명력을 부여한 또 다른 ‘미켈란젤로’, 베르니니

류시화
2023년 05월 31일 오후 6:44 업데이트: 2024년 01월 19일 오후 5:25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기의 천재 예술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대표적인 작품<다비드상>은 높이 4.34m의 대리석 석상입니다. 이는 성경 속의 ‘다윗과 골리앗’으로 유명한 다윗을 조각한 것인데요, 이 조각이 공개된 지 120주년이 되던 해에 예술사에서 거의 전례 없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1624년 이탈리아의 예술가 잔 로렌초 베르니니가 또 다른 <다비드(다윗)상>을 공개했습니다. 역사상 최고의 조각가로 일컬어지는 미켈란젤로와 어깨를 견줄 인물로 베르니니가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이탈리아의 또 다른 천재, 베르니니

1598년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태어난 베르니니는 무명 조각가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예술 교육을 받으며 천재성을 나타냈습니다.

그의 천재성을 알아본 교황에 의해 베르니니는 20세가 되기 전에 로마로 거주지를 옮겨 평생 그곳에서 지내며 예술혼을 불태웠습니다.

베르니니가 예술계에 등장하기 전, 고전주의 르네상스 예술은 지적이고 억제된 감정을 선호했습니다. 대리석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인체와 옷감의 부드러움과 유연성을 표현했지만, 조각된 인물들의 감정은 가능한 한 억제되어 미묘하게 표현되었습니다. 또한 인물이 특정한 행동을 취하는 그 순간을 포착한 것이 아니라, 정적인 자세를 묘사했습니다.

이는 당대의 예술가들이 종교적, 역사적 인물을 ‘미덕의 상징’으로 여겼기 때문에 그들의 도덕적 완전성을 물리적으로 완벽하게 표현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흘러 바로크 예술은 감정의 극적인 변화와 표현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베르니니의 다윗이 미켈란젤로의 다윗에 비해 훨씬 동작이 역동적이고, 표정에서 그의 감정이 가감 없이 드러나는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리고 르네상스 시기의 예술작품들과는 상반되게 특정한 행동을 취하는 그 상황을 묘사했습니다. 이는 바로크의 예술가들은 묘사 대상을 ‘개인적인 존재’로 여기며 그의 감정과 행동에 초점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바로크의 예술가들

바로크 시대 예술의 특징은 베르니니뿐만 아니라 다른 예술가들의 작품에서도 뚜렷하게 보입니다.

이탈리아 초기 바로크 시기를 대표하는 화가 중 한 명인 카라바조의 작품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은 미켈란젤로와 같은 ‘다윗’을 소재로 했지만, 베르니니의 작품처럼 감정의 격동이 한눈에 보입니다.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골리앗의 머리를 들어 보이는 모습에서 다윗의 기분이 어떠한지를 우리는 단번에 알아챌 수 있습니다.

당대의 공통적인 주제와 더불어 예술가별로 어떤 특징이 있었는지는 또 다른 작품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베르니니의 조각작품<성 테레사의 법열>과 카라바조의 회화작품<황홀경에 빠진 성 프란치스코>는 매우 밀접한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두 작품 모두 천사 곁에서 진리를 깨달았을 때 느끼는 기쁨인 법열의 황홀함에 빠진 성인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카라바조는 성 프란치스코가 황홀경에 빠진 모습을 우아하면서도 부드러운 감정으로 묘사했고, 베르니니는 극적이면서 강렬한 감정적인 변화를 묘사했습니다.

미켈란젤로의 유일한 후계자, 베르니니

로마 제233대 교황인 바오로 5세는 10살 무렵의 베르니니를 교황청으로 불러 그의 실력을 확인한 후, “베르니니는 우리 시대(바로크)의 미켈란젤로가 될 것이다”라고 극찬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조각가로 불리는 미켈란젤로와 베르니니는 조각뿐만 아니라 건축, 회화에서도 혁혁한 업적을 세웠습니다.

각기 다른 시대에 다른 시선으로 예술 작품을 창조해 냈지만, 두 예술가 모두 신의 모습을 아름답게 조각해 냈다는 사실은 언제까지나 변함없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