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차 대만해협 위기 발생? 지난 3차례 위기는 어떠했나?

미국의 압도적 무력으로 해소... 현재는 달라

최창근
2022년 08월 3일 오전 10:59 업데이트: 2022년 08월 3일 오후 12:06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이후, 중국은 ‘보복’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대만 포위식 훈련을 실시하여 대만을 전방위로 압박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펠로시의 대만 방문이 제4차 대만해협 위기로 이어지는 모양새이다. 지난 3차례에 걸친 대만해협 위기는 어떠했을까.

제1차 대만해협 위기는 국·공내전에서 국민당 정부의 패배와 대만 천도 후 시작됐다. ‘대만섬’이 가지는 전략적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 미국 정부는 1950년 발표한 이른바 ‘애치슨 라인’에서 한반도와 더불어 대만섬을 제외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북한의 남침 야욕을 부추겼고 중국의 대만 침공을 자극했다.

1950년 발발한 6·25전쟁은 대만섬의 전략적 중요성을 환기했다. 미국 트루먼 행정부는 대만에 군사고문단을 파견하는 등 군사적 지원을 했다. 다만 중국은 미국 정부의 정책 기조 변화를 감지하지 못했고 6·25전쟁 정전 이듬해인 1954년 푸젠성 인근의 진먼(金門)섬을 포격했다. 제1차 대만해협 위기이다. 미국은 해군 제7함대를 파견했고, 미국의 ‘무력 시위’에 대만해협 위기는 해소됐다.

1954년 제1차 대만해협 위기 후 미국은 1955년 대만과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했다. 그 결과 대만에 미군이 주둔하여 방위를 책임졌다.

1958년 여름, 중공군은 진먼섬을 다시 포격했다. 8·23포격전이다. 10월까지 이어진 포격에서 중공군은 약 48만 여발의 포탄을 발사했다. 미국은 다시 한번 제7함대를 파견했고 공군력도 지원했다. 당시 미국 국방부는 중국을 향한 핵 선제공격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1971년 대만의 ‘중화민국 정부’는 유엔 결의안 제2758호에 의거하여 유엔에서 퇴출됐다. 이듬해 일본이 단교했다. 1978년 12월, 미국은 1979년 1월 1일부로 중국과 수교하고 대만과 단교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1979년 12월 31일, 대만-미국 상호방위협정도 폐기됐다. 다만 1979년 4월 제정된 ‘대만관계법’에 의거하여 대만 방위를 보장했다.

이 속에서 진먼섬 포격은 그 후 1979년까지 간헐적으로 계속되며 일종의 의례가 됐다. 중국은 미국과 정식 수교한 뒤인 1979년 10월 25일에 포격을 멈춘다고 발표했다.

제3차 대만해협 위기는 리덩후이(李登輝) 총통 집권기에 발생했다. 최초의 대만 본성인(本省人·국민당 정부 대만 천도 이전 거주 대만인) 출신 총통이었던 리덩후이는 1988년 장징궈(蔣經國) 사후 총통직을 계승했고, 1990년 총통에 재선됐다. 총통 재선 후 리덩후이는 본토화(대만화)를 본격 시행하면서 중국과 대립각을 세웠다. 리덩후이는 1993년 이후 지속적으로 실용외교 정책을 펼쳤다. 휴가, 골프 여행 등을 명목으로 세계 여러 나라를 순방하며 외교관계 정상화를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리덩후이는 1994년 미국 방문을 시도했다. 다만 중국의 외교적 압력으로 비자 발급을 거부당했다. 1995년 리덩후이는 모교 코넬대 초청 강연을 명분으로 미국 방문을 다시 시도했다. 미국 상·하원 ‘리덩후이 초청 결의안’을 통과시켰고, 미국 행정부도 방문을 묵인했다. 리덩후이는 ‘개인’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하여 모교에서 연설했다.

이듬해인 1996년 대만 사상 첫 총통 직접 선거가 예정됐고, 리덩후이의 연임이 유력했다. 중국은 리덩후이의 총통 연임을 막기 위해 무력 시위를 시작했다. 중공군은 1995년 7월 21일부터 1996년 3월 23일까지 246일 간 대만해협을 포함한 대만 근해에서 미사일 시험을 실시했다. 이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외교적으로 반대하는 대만의 리덩후이 총통 정부에 대한 위협 메시지 격이었다. 미사일 위기 속에서 1996년 3월, 미국은 해군 제7함대 항모강습단을 파견했고 미국의 압력에 의하여 다시 한번 대만해협 위기는 진정됐다.

결과적으로 3차례에 걸친 대만해협 위기는 미국의 무력에 기반하여 해소할 수 있었다. 문제는 오늘날 중국은 체급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때문에 이번 상황은 미·중 간 압도적 국력 차이가 존재했던 지난 제1~3차 대만해협 위기 때와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미국 국방부는 2020년·2021년 ‘중국 군사력 보고서’에서 “대만해협에서 국지적 충돌이 발생할 경우 미국에 승산이 없다.”는 결론을 내린 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