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과기대 정진우 교수 “중대재해법, 처벌보다 법의 실효성 높이는 것이 관건”

이연재
2022년 05월 24일 오후 2:42 업데이트: 2022년 05월 24일 오후 2:42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대재해법)이 시행 넉 달도 안 돼 개정 요구가 빗발치고 있습니다.

경제계가 개정 요구안을 제출했고 노동계는 거세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중대재해법은 상시 노동자 50인 이상이거나 공사 금액이 50억 원 이상인 사업장에서 사망 등의 재해가 발생하면 안전 확보 의무를 위반한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중대재해법이 만들어지게 된 배경은 경영책임자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로 인해 산재 사망사고가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입니다.

하지만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에도 반복되는 산재사망 사고를 막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진우 |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

“중대재해처벌법 자체가 내용적으로도 그렇고 구성 체계적인 면에서도 많은 문제가 있어서 지침대로 ‘그냥 놔두면 큰일 나겠다’, ‘어떤 법리보다는 처벌 위주의 자의적인 법 집행이 만발하겠다’는 생각에서 (책을 쓰게 됐습니다.)”

최근 ‘중대재해처벌법’ 책을 출간한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를 만나 중대재해처벌법의 문제점과 해결방안에 관해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중대재해법이 시행된 지 100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실효성을 놓고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는 중대재해법에 대해 안전에 대해 반짝 관심을 갖게 하겠지만, 진정성 있는 안전 역량 강화로 이어지기는 어렵다고 봤습니다.

“중대재해법은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처벌’만 강화한 것”이라며, “중대재해 문제 해결을 위한  ‘고육지책’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정진우 |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 :

“대기업을 중심으로 안전에 대해서 여러 가지 투자 관심은 많아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실질적인 어떤 관심이냐?’ 또는 ‘실질적인 투자이냐?’라는 점에서 보면 ‘그렇지 않다’라는 부분이 발견이 되고 있습니다.”

” 예를 들면 안전 부서 또는 안전 관계자의 인원을 늘리기는 하는데 그게 현업 부서의 사람을 빼서 안전 부서의 인원을 늘리다 보니까  정작 안전을 이행하고 실천할 사람들을 줄이고 안전에 대해서 보좌 역할을 하는 사람들의 인원을 늘리는 즉 ‘밑돌 빼서 윗돌을 괴는’ 그런 아이러니컬한 일들도 벌어지고 있고요.”

“또 주로 형사처벌을 회피하기 위한 목적의 투자가 중심이 되다 보니까 실질적인 안전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현장에 맞지 않는 대책들이 양산되고 있다는 점에서 중장기적으로 부작용이 커질 것 같습니다.”

중대재해법에 명시된 실질적 기준 모호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경영책임자(원청)의 안전보건 확보 의무와 관련한 중대재해법 4조 1항의 ‘사업주가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사업장’이라는 문구입니다.

원청-하청업체간의 책임을 규정하기 위해선 실질적인 사업주가 누구인지 명확해야 하지만 이를 알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정 교수는 “중대재해법이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복되는 부분이 많고, 일부는 의무 부과 대상이 달라 수범자 입장에서 어떤 법을 따라야 할지 종잡을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정진우 |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 :

“산업안전보건법에 있는 상당수의 내용이 중대재해처벌법에서 거의 그대로 가져왔는데 그러다 보면 결국은 수범자 입장에서는 산업안전보건법을 지켜야 할지 중대재해처벌법을 지켜야 할지 굉장히 헷갈리게 되는 거고요.”

“대표적인 예가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소위 말하는 하청한테 의무를 부과하고 있는데 중대재해처벌법은 원청한테 의무를 부과하고 있습니다. 또 거꾸로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원청에게 의무를 부과하고 있는데 중대재해처벌법에서는 하청에게 의무가 있는 것처럼 해석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청이든 하청이든 산업안전보건법을 따라야 할지 중대재해처벌법을 따라야 할지 알 수 없는 거죠. 이 법은 아무리 (기업이) 준법의지가 있다 하더라도 누가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절차적 정의 또는 적법 절차를 강조하는 이유는 민주주의의 원리 요구이기도 하지만 실체적인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도 필요한 절차입니다. 그런데 이 법은 어떤 공청회 한 번 없이 급하게 만들다 보니까 그들이 의도했던 엄벌의 효과도 거두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거죠.”

“특히 대기업의 경우에는 변호사 도움을 받는다든지 아니면 컨설팅 회사 도움을 받는다든지 해서 쉽게 빠져나갈 수 있게끔 돼 있고요.”

“결국에는 서류 작성만 잘하면 처벌될 일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결국은 ‘누가 처벌되느냐’ 대기업들은 다 빠져나가고 소기업들이 대부분 처벌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처벌되는 것은 사회적 약자들이 주로 처벌되고 대기업들은 처벌받을 일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 같습니다. 요란한 빈수레죠.”

결국 중소기업은 법을 구체적으로 모르고 있는 경우가 태반이라 자칫 중소기업의 목을 죌 수 있다는 우려입니다.

아울러 정 교수는 “중대재해법은 아무리 준법 의지가 큰 기업이라도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도저히 알 수 없는 규정이 수두룩하다”며 “이대로 시행될 경우 중대재해 예방의 실효성을 거두기 어려워 보인다”고 지적했습니다.

경영자 처벌로 야기될 후폭풍에 기업들이 실질적인 안전 강화보다 처벌을 피하기 위한 방어에만 분주하다는 겁니다.

[정진우 |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 :

“어떤 법이 실효성을 거두려면 두 가지가 필요한데 하나가 예측 가능성, 하나가 이행 가능성입니다. 두 가지가 갖춰져야 법을 실질적으로 준수하게끔 하는 효과를 유도할 수가 있는데 이 법은 둘 다 갖추고 있지 않습니다.”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기가 어렵고 또 이행할 수 없는 그런 내용들이 많다 보니까 결국은 수범자 입장에서는 형식적 대응을 할 수밖에 없는 상태입니다.”

” 그러다 보니까 기업들이 안전 역량 향상을 목적으로 투자하거나 지금 관심을 보이고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거죠. 그러니까 그런 형식적 대응을 지금 법이 조장하고 있는 측면이 강합니다.”

“예를 들면 자녀가 공부를 잘 안 합니다. 부모 입장에서 여러 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 한 가지 방법으로 윽박지르면 애들이 커닝이라도 해서 성적을 올리려고 하겠죠.”

“그러니까 부정행위를 해서 시험 성적을 올리긴 하겠지만 그게 애한테 실질적으로 자기 주도적인 학습 의지가 없으면 결국은 속임을 당하는 것이지 자녀의 실질적인 학습 역량이 올라가진 않거든요. 그런 거랑 비슷하다고 보시면 돼요.”

“지금 이 법은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만 개입할 수 있지 중대 재해가 발생하지 않으면 행정기관이 집행기관이 개입을 할 수 있는 법적 근거도 없고 강제력을 행사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냥 권고 정도는 할 수 있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그걸 따라야 할 의무가 전혀 없습니다.” 

“실제로 그러면 문제는 해결이 안 될 수가 있거든요. 일반적으로 행정법이라고 하는 것은 개선 명령까지 같이 내릴 수가 있거든요. 근데 이 법은 처벌 외에는 개선명령, 시정명령에 권한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법은 처벌에 주안점이 두어져 있는 법이라고 하는 겁니다.”

산업재해 발생 예방에 초점을 맞춰야

윤 정부가 출범하자 경제계는 중대재해법의 개정을 촉구하는 활동에 나섰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개정’에 대한 경영계 건의서를 법무부, 고용노동부 등 관련 부처에 제출했습니다.

노동계는 윤 정부에서 예고한 중대재해법 개정 움직임에 대해 강하게 반대하고 있습니다.

산업재해 발생을 줄이기 위한 방법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정 교수는 중대재해법처럼 경영자에게 직접 형사책임을 묻는 방식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러면서 “중대재해법은 폐기되거나 전면적으로 개정해야 한다”며,  “법의 실효성을 높이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습니다.

[정진우 |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 :

“취약한 노동자 또는 하청 노동자를 산업재해로부터 보호하자라고 하는 것은 그냥 내세운 명분에 불과했지 실질적으로는 그분들을 보호하고자 하는 진정성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뭔가 하고 있다’라는 정치적 제스처 차원에서 만들어진 입법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법을 폐지하고 종전에 있는 안전 관계법을 보완하는 그런 수순을 밟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고 만약 그렇게 하기가 어렵다고 하면 차선책으로 이 법을 기존의 법들과 중복이나 충돌이 발생하지 않게끔 실효성 있게 전면적으로 개정하는 거죠.”

“‘현재의 법을 완화시키겠다’, ‘어떤 규제를 없애겠다’라는 식의 접근만 하면 또 한 번의 혼란만 초래되지 전혀 (산재) 감소의 효과를 거두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거죠.”

“법을 재정하거나 개정하는 것의 목적은 실효성에 두어져야 합니다. 단지 처벌 강화, 엄벌 이런 식으로 접근하면 결코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방 기준, 안전보건 기준을 정교하고 세련되게 그리고 실효성 있게 정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고요.” 

“진정성을 가지고 제대로 연구와 조사를 거쳐서 정말 신중하게 만들어진 법인지 또는 제도인지를 신중하게 판단을 해주십사 그리고 또 그런 눈을 꼭 가져달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재해예방의 선진국이냐 아니냐를 판가름하는 기준은 처벌 수준의 높낮이가 아니라 예방 기준, 안전보건 기준이 얼마나 정교하고 실효성 있게 만들어져 있느냐 그 차이입니다. “

“처벌로만 보면 북한이라든가 중국이라든지 아랍 국가가 이미 재해예방에 선진국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나라들을 재해예방 선진국이라고 전혀 안 하지 않습니까?”

“중국이나 북한 같은 경우는 예를 들면 건물이 붕괴됐다고 하면 사형까지 시킵니다. 그런 나라들은 기본적으로 법정형의 처벌 수준이 굉장히 높습니다. 개인에게만 모든 책임을 다 떠넘기고 악마화 시키는 것 그게 바로 후진국 권위주의 정부의 대표적인 특징입니다. “

“예방 기준을 정교하고 실효성 있게 만드는 것은 어렵기도 하고 전문성이 필요하고 또 시간도 걸리니까 가장 손쉬운 법을 택하는 경향이 아주 큽니다.”

“구조 문제, 인프라, 시스템을 개선하려고 하는 데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나라가 바로 민주주의 또는 사회민주주의 또는 사회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는 나라라고 하는 거고요.”

“그거야말로 기득권에서 비켜나 있는 노동자를 보호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NTD뉴스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