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임실군이 ‘치즈의 고장’이 될 수 있었던 이유

정경환 기자
2019년 09월 14일 오후 10:16 업데이트: 2022년 12월 20일 오후 6:20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발효 유제품 중 하나인 치즈는 서양인의 식탁을 차지하는 주요한 주식 중 하나이다.

전 세게 치즈 생산량 60%가 유럽에서 생산돼 세계로 퍼져나갈 정도로 치즈는 유럽 전통 음식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도 ‘치즈’ 하면 떠오르는 유일한 지역이 있는데, 그곳은 바로 전라북도 임실이다. 임실이 이렇게 치즈로 유명해진 데에는 한 명의 외국인 신부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정환 신부(가운데)와 임실치즈 제조를 시작한 마을 주민들 | 임실치즈협동조합

그는 바로 디디에 세스테벤스(벨기에), 한국 이름 지정환 신부였다.

1964년 작은 산골 마을 임실군에 그가 자리 잡으면서 지역은 서서히 변화되기 시작했다.

처음에 그는 풀밭이 많은 마을의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산양을 키워 젖을 짜 팔자고 설득했다.

지정환 신부의 젊은 시절 모습들 | 지정환 신부 회고록

주민들도 그의 의견에 동의했고 하나둘 산양을 키우며 젖을 생산했다. 그러나 남아서 버려지는 산양유가 늘어나며 지정환 신부는 고민하게 된다.

결국 그는 남은 우유를 가지고 유럽의 가정식 치즈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어려서부터 치즈에 관심이 없던 그였지만 치즈를 생산하기 위해 여러 실험을 하거나 심지어 유럽에 치즈 견학까지 다녀오게 된다.

치즈를 제조하는 지정환 신부(왼쪽)과 마을 주민 | 임실치즈협동조합

결국 농민들과 함께 치즈 생산에 성공하게 된 그는 임실의 작은 창고를 가지고 대한민국 최초의 치즈 공장이라는 타이틀을 따내게 된다.

당시 국내에서 생산되는 치즈는 지정환 신부의 임실치즈가 유일했으며 국내 농민들의 수제 치즈라는 점은 제품의 매력도를 높였다.

국내의 유명 호텔 주방도, 우리나라 최초의 피자가게에서도 임실의 모짜렐라 치즈를 주문해 쓸 정도였다.

자신의 초상화가 그려진 벽에 선 지정환 신부 | 연합뉴스

이렇게 임실에는 ‘치즈’가 대표 농산물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아직도 임실은 우리나라 치즈의 본고장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지정환 신부의 삶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다발성 신경경화증’이라는 불치병으로 신체의 대부분의 신경이 마비되기 시작하면서 휠체어 신세를 져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그는 자신과 같은 중증장애인의 재활을 돕는 ‘무지개가족’이라는 공동체를 설립해 많은 이들을 후원하였다.

임실치즈역사문화공강 준공식에 지정환 신부(가운데) | 연합뉴스

다양한 분야에서 기여를 이룬 지정환 신부는 2016년 정부로부터 한국 국적을 수여 받았다.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의 나라에서 어떻게 평생 베풀면서 사실 수 있었나요? 라는 물음에 “전 단지 그들과 함께한 것 뿐입니다. 함께 배우고 사랑하면서 무언가 이뤄지는 것이지요”라고 말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안겼다.

이렇게 타국에서 자선 활동 등을 하며 한평생을 헌신한 지정환 신부는 지난 4월 13일 항년 88세의 나이로  별세해 진정한 나눔을 몸소 실천한 인물로 역사에 기록됐다.

지정환 신부의 선종 미사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