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서열 7위까지 올랐다가 하루아침에 망해버린 우리나라 대기업

김연진
2021년 01월 7일 오후 12:53 업데이트: 2022년 12월 13일 오후 12:16

한때 재계 서열 7위까지 오르며 계열사만 21개를 거느렸던 우리나라 굴지의 대기업이 있다.

‘국제그룹’이다. 과거 나이키, 아디다스와 함께 뜨거운 인기를 누렸던 스포츠 의류 브랜드 ‘프로스펙스’가 국제그룹 소속이었다.

당시 프로스펙스는 우리나라 청소년들 사이에서 큰 관심을 받았고, 심지어 미국에서도 ‘6대 스포츠화’로 선정됐다.

그렇게 창창하던 기업이 하루아침에 몰락해버렸다. 단 한 사람의 말 한마디에서 비롯된 사건이다.

국제그룹의 역사는 양정모 전 회장이 고무신을 제작, 판매하면서 시작됐다. 품질 좋은 ‘왕자표 고무신’이 불티나게 팔리면서 사업 규모가 점차 커졌다.

프로스펙스 지면 광고

이후 국제그룹은 운동화에 눈을 돌리며 성장을 이어갔다. 지난 1962년에는 국내 최초로 미국에 운동화를 수출하기도 했다.

이후 종합무역상사로 지정된 국제그룹은 호텔업, 건설업까지 진출하면서 몸집을 불렸다. 1981년에는 우리가 잘 아는 브랜드 ‘프로스펙스’를 출시했다. 86년 아시안게임, 88년 서울올림픽 등으로 스포츠 관련 용품의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예측에서였다.

양정모 전 회장의 예측은 정확히 맞았다. 또한 계열사들도 승승장구하며 연 매출액이 2조원을 돌파했다. 당시 재계 7위까지 성장했다.

그런데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국제그룹의 주거래 은행이었던 제일은행은 “국제그룹의 부실한 재무구조 때문에 금융지원이 어렵다. 부실기업으로 판명돼 그룹 전체를 정리한다”고 발표했다.

프로스펙스

“자고 일어나니 기업이 해체되어 있었다”. 양 전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승승장구하던 대기업이 하루아침에 해체된 배경에는, 전두환 정권이 있었다는 게 재계의 평가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로 인해 숨진 희생자 유족을 지원한다는 명목하에 대기업들에게 정치 자금을 요구했다.

실제로 당시 삼성그룹은 45억원, 현대그룹은 51억원을 헌납했다. 하지만 국제그룹은 단 5억원만 냈다. 이로 인해 국제그룹이 정권의 미움을 샀다는 것이다.

연합뉴스

이후 더 결정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전두환 정권은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압도적인 승리가 절실하게 필요했다. 권력 장악을 위해서는 변수로 꼽히는 부산 지역의 표를 얻어야만 했다.

마침 부산 지역 기반의 국제그룹 측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양 전 회장은 “막내아들의 49제와 겹쳐 유세 현장에 함께 할 수 없다”며 거절했다.

이후 전두환 대통령은 ‘국제그룹의 해체’를 지시했고, 이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하루아침에 대기업이 공중 분해되는 순간이었다.

당시 KBS뉴스 보도 화면

5공화국이 몰락한 후, 1993년 헌법재판소는 “전두환 정부가 국제그룹 해체를 지시한 행위는 기업활동 자유를 침해한 것으로, 위헌 판결”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 판결이 국제그룹을 되돌려주진 않았다.

현재 프로스펙스는 LS네트웍스의 산하 브랜드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