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제7공화국이 필요하다”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

87년 체제는 맞지 않은 옷 같아...

최창근
2022년 07월 20일 오전 10:42 업데이트: 2022년 07월 20일 오전 11:08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은 학생·노동 운동가 출신 ‘사회 디자이너’이다. 서울대 금속공학과 졸업 후 서울 구로독산지역 노동조합연대모임 간사, 서울지역노동조합협의회 정책위원, ‘단결의 길’ 편집장, 대우자동차 부평기술연구소 차장, 인천시장 경제사회특별보좌관, 고용노동부 장관 정책자문위원, 국민대통합 위원 등을 역임했다. ‘제7공화국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그를 만나 대한민국 헌법과 개헌 방향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1948년 대한민국 건국 혹은 정부 수립의 의의는 무엇인가요?

“대한민국 정부 수립은 선진 문명을 담을 수 있는 틀을 만든 것입니다. 1948년 남·북한 단독 정부 수립 후 이런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북한은 어린이가 어린이 옷을 입고 있고 남한은 어린이가 어른 옷을 입고 있다.’고요. 당시 국민 의식 수준 등은 어린이였지만 근대적인 헌정 체제를 갖춘 것입니다.” 김대호 소장은 대한민국 건국 주도 세력들의 안목이 높았다고 평가했다. “독립운동을 하고 대한민국을 건국한 지도자들은 해외에서 풍찬노숙(風餐露宿)하면서도 근대 문명을 받아들인 당대 엘리트들입니다. 이른바 ‘87년 체제’라 불리는 제6공화국 헌법을 만든 이들의 안목이나 가치관과 비교해도 제헌 헌법을 만든 이들의 안목이 더 높았다 봅니다. 그들은 구미(歐美) 각국, 러시아, 중국, 만주, 일본 등을 누볐죠. 외국 경험을 바탕으로 선진적인 헌정 질서를 만들었고요.”

이승만 초대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가혹합니다.

“이승만 대통령 평가 문제는 중요합니다. 국회 전문 매체 중 ‘여의도통신’이 있습니다. 매체에서 2007년 당시 299명 국회의원 전원을 대상으로 ‘가장 존경하는 인물’ 설문 조사를 했습니다. 백범 김구가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습니다. 반면 이승만 대통령은 단 한 명의 의원으로부터도 ‘존경받는 인물’로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김구 다음이 이순신(31명), 정약용(16명), 세종대왕(10명), 아버지(8명), 링컨(7명), 간디(6명), 안창호, 전태일, 장준하, 안중근, 프랭클린 루스벨트(이상 4명), 문익환, 박정희, 신채호, 김대중, 정조대왕, 만델라, 대처(이상 3명) 등었습니다. 역대 대통령 중에서 이승만, 윤보선,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은 단 1표도 얻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 결과를 저항 인사 혹은 반독재 민주인사 편중이라고 봅니다. 이들에 대해서는 당시 제17대 국회의원 압도적 다수가 추앙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끊임없이 진보적 가치를 받아들이고 진보의 상징 인물들을 부각시키는 행태를 보이는 것이 87년 체제의 특징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헌법은 정신문화와 사상·이념의 산물 혹은 자식 같은 존재라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비춰 볼 때 현행 헌법은 국가 권력의 억압에 짓눌려 있는 상태에서 이에 맞서 싸운 사람을 높게 평가하는 것이죠. 1987년 6월 항쟁의 시대정신은 국가 권력에 눌려 있던 약자의 자유와 권리 신장이었습니다. 이런 것이 고스란히 헌법에도 녹아들고요. 문제는 전부가 약자 행세를 한다는 것입니다. 여성, 장애인, 중소기업 노동자뿐만 아니라 공무원조차도 노동자이자 약자 범주에 엮으려 합니다. 아울러 국가의 보모(保姆) 역할을 강조하고요.”

이승만 대통령을 재평가한다면요?

“이승만이 재평가 받는 결정적인 이유는 남북한 체제 경쟁입니다. 한국이 체제 경쟁에서 승리한 것은 자명하죠. 더하여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독립한 국가들이 많은데 대한민국처럼 산업화·민주화 측면에서 총체적으로 성공한 사례가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제시한 자유민주주의 제도와 시장경제 제도가 자리하기 때문입니다. 당시 주류 경제 체제는 자유 시장이 아닌 국가 주도 계획 경제였습니다. 시장 경제 체제를 높게 평가하지 않았죠. 이승만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보다 훨씬 더 자유시장경제를 중시했습니다. 한미동맹을 체결해서 안보의 틀도 만들고요.” 이렇게 평가한 김대호 소장은 이승만 대통령이 기독교 신자였다는 점도 중요하다고 했다.

기독교 정신도 관련 있나요?

“이승만 대통령은 기독교 국가를 건설하려 했습니다. 국가와 국민을 움직이는 소프트웨어로 기독교 정신을 도입하려 한 것이죠. 기독교 정신으로 국가가 작동해야 근대화·선진화된다 판단했던 것입니다. 사실 이전에 한국은 정신문화에 대한 관심이 덜했습니다. 반면 이른바 후발 국가들은 사상이념이나 정신문화를 바꾸는 것을 중시했습니다. 프러시아(독일), 소련, 일본 등이죠. 이승만 대통령의 경우 ‘조선’에서 태어났지만 조선의 전제 군주정에 반발했습니다. 대신 미국, 유럽, 일본의 사상문화와 제도를 받아들인 것이죠. 그는 국가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기독교 정신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또한 탁월한 혜안이라 할 수 있습니다. 1920~40년대 전 세계는 사회주의 물결이 넘쳤습니다. 1920년대 한국 엘리트 다수는 사회주의자였습니다. ‘모던보이·모던 걸=맑스보이·맑스걸’이던 시기니까요. 이승만 대통령은 일찍부터 ‘사회주의는 아니다.’라고 확신했습니다. 놀라운 통찰력을 가졌던 것이죠. 이승만은 반공자유민주주의였습니다. 물론 실제 통치에서 민주주의적이지 못한 것은 당연히 비판해야 합니다. 다만 공과를 균형있게 봐야 하는데 이제까지는 과만 봤던 것이죠.”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1987년 현행 제6공화국 헌법까지 총 6차례 전면 개헌, 3차례 부분 개헌 등 9차례 개헌을 했습니다. 짧은 기간 내 개헌이 잦았던 셈인데 어떻게 평가하나요?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 주도 개헌은 기본적으로 장기 집권을 의도로 했습니다. 대통령 3연임 개헌을 하고 나아가 박정희 대통령은 유신을 선포해서 영구 집권을 꾀하기도 했죠. 그러다 제5공화국은 간선제하 7년 단임제를 채택했고 현행 5년 단임제 제6공화국 헌법이 1988년부터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습니다.” 김대호 소장은 개헌이 잦은 것이 반드시 문제만은 아니라고 했다. “1988년 이후에도 끊임없이 개헌론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현행 헌법이 몸에 맞지 않는 옷 같은 존재라는 것이죠. 1990년 3당 합당도 의원내각제 개헌을 전제로 성사된 것입니다. 이후 5년 단임제 대통령제에 대한 문제점 지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이라면 바꾸어야 하는 것이죠.”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 | 이유정/에포크타임스.

대한민국은 민주(자유)공화국인데, 민주주의 가치만 지나치게 부각되고 자유주의나 공화주의 가치에 대해서는 소홀한 경향이 있습니다. 원인과 해법은 무엇이라 보나요?

“사실 한국은 조선시대 유교체제에 있었습니다. 유교 체제는 군주는 군자가 되고 과거 시험에 합격한 관료는 유학적 소양이 높아야 합니다. 이들이 예와 덕으로 통치한 것이죠. 반면 서구식 헌정 질서는 국가 권력을 쪼개서 상호 견제 시키는 데 주안점을 둡니다. 이것이 민주공화국의 기본정신입니다. 조선시대가 인치라면 서구는 법치인 것이죠.

제6공화국 헌정 체제가 30년 넘게 지속 되고 있습니다. 역대 헌정 체제 중 가장 긴 체제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다만 비판의 목소리도 높습니다. 제6공화국 헌정체제 30년을 평가한다면요?

“제6공화국 헌정체제가 35년 이어지고 있습니다. 87년 체제의 핵심 유전자는 민주화이죠. 유전자는 복제를 하면서 커져 나가는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결국 민주화는 반독재입니다. 대통령의 전횡을 방지하는 것을 중시했죠. 5년 단임제로 이를 구현하고요. 국민 아래 대통령 권력을 두기 위하여 직선제를 복원 시켰습니다. 요약하자면 반독재·장기 집권 방지·평화적 정권 교체입니다. 문제는 선출직 황제·소황제를 양산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나요?

“임기 5년 대통령이나 4년짜리 국회의원 혹은 광역·기초 자치단체장들의 전횡이 심합니다. 그리고 노동권과 경영권의 불균형 문제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노동권이 강화되어 경영권이 위축돼 있죠. 서구에서는 노동자는, 노동권 사용자는 재산권을 중시합니다. 이른바 ‘무기의 대등성’도 중요 포인트이고요. 노동자가 파업권을 행사하면 사용자는 폐쇄권을 행사하고 파업 중인 노동자가 직장을 점거하는 것은 불법 행위인데 한국에서는 용인되고 있죠. 한국은 노동권만 일방적으로 강화했습니다. 87년 체제의 가장 큰 문제는 민주화라는 세포가 증식하면서 견제와 균형 원리로 작동해야 할 사회 각 분야 기능을 마비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암세포가 증식하여 정상 세포를 죽이는 것처럼요. 본질은 조정자 역할을 수행해야 할 정치권이 그 역할을 못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양당 독과점 체제로 운영되는 국회는 국민 복리를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독과점적 권력을 남용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문제는 법원·검찰·경찰 등 국가권력 기관 문제입니다. 헌정 구조 개편을 대통령과 행정부, 국회 중심으로 단행하다 보니 권력 기관 개혁 문제는 간과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시장과 국민의 자유를 침해하는 가혹한 형벌 조항이 다수 존재하고 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이지 못한 법원·검찰·경찰이 국민 위에 군림하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인사권을 통해서 이들 기관을 콘트롤할 수 있죠.”

일본에서 민주주의라 번역한 ‘Democracy’는 ‘국민 주권’의 의미도 내포합니다만, ‘다수의 지배’를 뜻합니다. 다수의 지배가 중우정치나 포퓰리즘으로 갈 가능성이 존재하는데 이 점은 어떻게 보나요?

“데모크라시는 다수의 지배도 의미하지만 민주정을 의미합니다. 민주주의는 고대 그리스에서 시행되다 2000년 넘게 사라졌다 부활한 체제이죠. 오랫동안 조롱의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이성, 지성, 덕성을 갖추어야 하는데 현실에서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시민의 지성과 덕성, 견제와 균형 시스템이 중요한데 늘 중우정 혹은 폭민정으로 흘러갈 위험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제7공화국 개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무엇인가요?

“현행 헌법의 특징은 ‘성군 같은 대통령을 뽑아서 제대로 통치하게 하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 점이 민주공화국 원리에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여 ‘나쁜 통치자 등장을 막는 것’이 민주공화정 원리입니다. 현행 헌법은 대통령 1인에게 지나치게 많는 국가 권력을 몰아주고 있고요. 더하여 정무직·직업관료, 공공기관 임직원에게도 권한이 집중돼 있습니다.” 김대호 소장은 이러한 체제하에서는 상호 견제와 균형이 힘들다고 지적했다. 이는 제7공화국 개헌 방향과 이어진다고도 했다. “제7공화국 개헌 방향의 핵심은 독과점 권력 해체입니다. 양당 체제를 깨고 다당체제로 가야 합니다. 민주주의 제도가 군주정보다 못할 수도 있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문제점을 해결해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권력을 분립하고 민주적 통제를 강화하며 권력 행사에 있어서 공정성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그는 법의 개념을 바꾸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개헌 방향을 더 설명한다면요?

“제6공화국 헌법은 고장난 자동차입니다. 그 원인은 합성의 오류가 다방면에서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탕에는 낡은 역사 인식, 도덕주의로 한국을 갈라파고스화한 것이 자리합니다. 1987년 이후 대중의 국가·권력에 대한 영향력이 점증하면서,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와 제도는 그 원산지와 달리 귤화위지(橘化爲枳) 현상이 점점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 바탕에는 갈라파고스의 동식물처럼 고립된 채 독특하게 진화한 대중의 습속, 즉 정신문화가 있고요. ‘자유’는 반공과 규제 완화로, ‘민주’는 반독재와, 광장에서의 함성 지르기와 추종하기로, ‘평등’은 격차 해소와 반(反)신자유주의로, ‘권리’는 다다익선으로, ‘정의’는 친일청산, 적폐청산, 과거사 신원(伸寃)으로, ‘시장’은 약육강식의 정글로 등치가 되었습니다. 법은 보편 이성에 반하고, 현실과 동떨어져도 국회만 통과하면 되고, 공공은 전체를 생각하고 민간은 제 욕심만 밝히는 존재로 간주되었습니다. 동양적, 조선적 유산의 핵심인 전제적 권력에 대한 경계심은 없었고요. 제 7공화국 플랫폼은 바로 그 낡고 고루한 역사 인식과 인간의 본성을 파괴하는 도덕주의로 한국 사회를 고립된 섬으로 몰아넣은 채 자유와 법치, 시장경제와 자유무역, 열린 공간으로서의 해양세력에 맞서 민족이란 허구의 대의를 내세워 다시 한번 쇄국을 강행하려는 무리들과 결별해야 하는 것입니다.”

동서양 헌법 차이는 어떠한가요?

“헌법도 국가와 국민의 계약입니다. 문제는 중국이나 한국에서는 전통적으로 계약 개념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천명(天命)을 받은 군주가 율법을 선포하는 개념이었죠. 동양에서 법은 지켜야 할 의무로 받아들였습니다. 현재 한국 헌법도 마찬가지입니다. 헌법이 계약문서라는 느낌보다는 국가의 국민에 대한 의무를 강조한 ‘보모국가 선언’에 가깝다 봅니다. 서구식 계약서 느낌이 안 듭니다.”

동서양 법 개념 차이를 이야기하는 건가요?

“동양에서 법은 사실 ‘형(形)’을 의미합니다. 반면 서양에서는 신(神)이 만든 보편적 질서에 가까운 의미이죠. 인간의 이성에 기반한 계약이 법입니다. 합의 혹은 계약의 의미가 강하다는 의미죠. 이런 면에서 죄에 대한 형벌의 의미가 강한 동양과 기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건국절 논쟁은 어찌 보나요?

“건국절이든 제헌절이든 둘 중 하나는 기념해야 합니다. 비유하자면 근대 문명 국가로 들어가는 ‘집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1948년 민주공화국 헌법 시행으로 한국 땅에서도 근대문명이 자라날 수 있는 토대가 생겼습니다. 민주공화국이라는 나무를 심은 것이죠. 제헌절이나 건국절은 기념 식수일이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