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드라마 ‘슈룹’도 중국풍 논란

최창근
2022년 11월 9일 오후 6:22 업데이트: 2022년 11월 9일 오후 6:23

“물귀원주(物歸原主)”
“아직 본궁(本宮)의 말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tvN이 방영 중인 주말 드라마 ‘슈룹’에 등장하는 대사들이다.

‘물건이 원래 주인에게로 돌아가다’는 뜻의 ‘물귀원주’는 한국인들에게는 낯선 표현이다. 중국식 사자성어이다. 더하여 방영 시 설명 자막에도 간체자로 ‘物归原主’라고 표기되었다. 이는 ‘중국풍’ 논란을 낳았다. 간체자 표기에 시청자들의 지적과 항의도 이어졌고 제작사는 급히 정체자로 수정하기도 했다.

주인공인 조선시대 왕비 임화령(김혜수 분)의 대사 중 스스로를 가리켜 ‘본궁’이라 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주로 중국 명(明)·청(淸)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에서 황후나 후궁, 공주들이 스스로를 지칭할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조선시대의 경우 ‘신첩’ ‘소첩’ 단어를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밖에도 ‘중국풍’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극 중 배경인 궁궐 중 왕의 처소에는 ‘태화전(太和殿)’이라는 편액이 붙어있다. 이는 경복궁·경희궁·경운궁(덕수궁)·창덕궁·창경궁 등 조선시대 5대 궁궐에는 존재하지 않는 전각(殿閣)으로서 태화전은 중국 베이징 자금성(紫禁城)에 있다.

슈룹이 결정적인 ‘중국풍’ 논란에 휩싸인 것은 전반적인 극 전개 구조이다. 조선 국왕 이호(최원형 분)과 왕비 임화령을 중심으로 슬하 5남 중 장남 왕세자가 의문사하고 이후 나머지 적통 왕자인 4명의 대군(大君)들과 후궁 소생인 군(君)들이 차기 왕세자 자리를 두고 무한 경쟁을 벌인다는 설정이다. 이것도 조선식이 아닌 중국 청(淸)나라 배경 역사극과 유사하다,

조선은 성리학 국가였다. 적·장자 구분이 엄격했다. 더욱이 ‘슈룹’ 극 중에는 세자의 아들도 존재하는데 세자가 사망하였다고 하여 차기 국왕 자리를 두고 적·서 구분 없이 왕자들이 무한 경쟁을 펼치는 것은 불가능했다.

왕자들이 경쟁을 통해 차기 왕위를 결정하는 것은 청(淸)대의 ‘저위밀건법(儲位密建法)’ 혹은 ‘태자밀건법(太子密建法)’과 유사하다.

청대에는 미리 차기 황제를 공개하지 않고 황제의 유조(遺詔)를 적어 자금성 내 황제의 집무실인 건청궁 내 ‘정대광명(正大光明)’ 편액 뒤쪽에 놓아 두고 또 다른 글을 썼는데 이때 내무부(內務府)에 보관하다가 유조에 적힌 후계자의 이름과 황제가 은밀히 내무부에 보관한 후계자의 이름이 일치하면 그 황자를 후계자로 정하였다. 즉 미리 차기 황제를 공개하지 않음으로써 황자 들 간 선의의 경쟁을 유도하고 이를 통해 제왕의 자질을 함양하게 했던 것이다.

이러한 청 나라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에서는 황후와 후궁들이 차기 황위를 두고 치열하게 경쟁하는데 ‘조선’을 배경으로 한 슈룹과 닮은 꼴이다.

이러한 슈룹을 두고서 역사학계의 지적이 이어졌다. 국사학자 전우용은 “조선 왕실에서 세자 자리를 두고 왕자들이 무한 경쟁하는 것은 있을 수가 없었다. 조선은 철저한 적서(嫡庶) 차별 사회였고 주자 성리학을 바탕으로 한 사회였다. 중국도 원래는 주자 성리학에 따른 사회였지만 유목 민족인 청조가 시작된 후로 8명의 황자가 황제위를 두고 다투는 등 ‘슈룹’ 설정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고 한 언론에 이야기했다.

한국 브랜드 홍보전문가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중국 관련 역사 왜곡이나 문화 왜곡이 최근 심화되고 있다. 그런 빌미가 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아무리 허구적인 드라마라도 조심해야 될 상황이라고 본다. 최근 OTT 서비스로 K-드라마들이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고 있어 외국인들에게 역사적 오해를 불러 일으키면 안 되기 때문에 제작진도 신경을 써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슈룹의 중국풍 논란에 대해서 콘텐츠 업계에서는 중국 시장 진출을 염두에 둔 포석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중국 국무원 국가광파전시총국은 2022년 들어 한국 드라마의 자국 내 방영을 허용하고 있다.

특히 CJENM이 제작한 드라마의 중국 진출이 이어지고 있다. 국가광파전시총국은 올해 상반기 ‘슬기로운 감빵생활’ ‘또 오해영’ ‘인현왕후의 남자’, ‘슬기로운 의사생활’ 등 CJENM 제작 드라마 방영을 연이어 허가했다.

중국 당국은 2019년부터 역사 왜곡을 이유로 사극에 강한 규제를 걸었으나 올해 1월 한국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에 방영 허가를 내주는 등 국내 사극의 중국 진출 가능성은 남아있다.

이를 종합할 때 중국 시청자에게 어필하기 위해 중국풍을 가미했다는 해석이다.

다만 콘텐츠업계에서는 퓨전사극이라는 이유로 고증을 충실히 하지 않았다는 점을 이번 중국풍 논란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적한다.

지난해 지상파 방송 SBS가 방영한 사극 ‘조선구마사’에서 중국을 연상케 하는 소품, 복장 등의 역사 왜곡으로 방송 2회 만에 종영을 맞은 바 있다. 이후 SBS는 안효섭, 김유정 주연의 ‘홍천기’를 판타지 장르로 해 가상의 왕국인 ‘단왕조’로 삼아 논란을 비껴갔다.

케이블 방송 tvN이 방영한 ‘환혼’은 영혼을 바꾸는 환혼술을 둘러싼 판타지 사극으로 ‘역사에도 지도에도 존재하지 않는 대호국’을 배경으로 정했다. 그만큼 역사 왜곡이나 고증 논란을 비껴가겠다는 의도였다.

퓨전 사극에서 시대적 배경은 작품의 일부 장치일 뿐 역사적 프레임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있다. 즉 퓨전 사극의 장점은 상상력이며 허용되는 표현 범위 내에서 창작자가 마음껏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초석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