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메일 좀 보자” 듀럼 특검 요구에 힐러리 캠프 ‘화들짝’…무더기 답변 제출

하석원
2022년 04월 23일 오전 11:32 업데이트: 2022년 04월 23일 오후 1:34

6년 전 끝난 미국 2016년 대선에 대한 특검이 아직 진행 중이다. 트럼프-러시아 공모설이 ‘증거 없음’으로 끝난 가운데, 현재 특검의 초점은 힐러리 클린턴 캠프가 공모설 조작에 얼마나 개입했는지로 옮겨졌다.

지난 19일(현지시각) 힐러리 클린턴의 2016년 대선 캠프 관계자들이 쓴 답변서 20여 통이 한꺼번에 관할법원인 워싱턴DC 연방지방법원에 제출됐다(관련 트위터 링크).

선대위원장, 선대위 본부장, 민주당 전국위원회 등 캠프 주요 관계자들 다수가 각각 작성한 이 답변서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자신들과 마이클 서스만 변호사 사이에 오고간 이메일이 공개돼선 안 된다는 것이다.

서스만 변호사는 현재 힐러리 캠프의 ‘트럼프-러시아 공모설’의 핵심 증인이자 용의자다. 2016년 힐러리 캠프에서 법률 업무를 담당했던 서스만 변호사는 현재 미 법무부 존 듀럼 특검에 의해 위증 혐의로 기소된 상태다.

서스만 변호사는 힐러리 캠프 관계자이면서도 허위 진술로 이를 감추고 미 연방수사국(FBI)에 트럼프 관련 정보를 제공해, FBI가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 여부를 조사하게 만든 혐의를 받고 있다. FBI의 조사는 특검으로 이어졌으나 결국 ‘러시아와의 공모는 확인되지 않았다’는 결론으로 끝났다.

힐러리 캠프 관계자들과 서스만 변호사가 주고받은 이메일은 현재 ‘변호사와 의뢰인 사이에 오간 정보는 비밀로 한다’는 변호사 비밀유지 특권(attorney client privilege)에 따라 보호되고 있다.

그러나 듀럼 특검은 해당 이메일에 대한 공개를 강력하게 요청하고 있다. 캠프 관계자들이 한꺼번에 법원에 답변서를 제출한 것도 이 때문이다.

비밀유지 특권에 따라 현재 이메일의 내용은 전혀 공개되지 않고 있다. 다만, 지금까지 밝혀진 주변 정보를 종합하면 2016년 대선 당시 힐러리 캠프 인사들은 ‘트럼프-러시아 공모설’을 퍼뜨리는 네거티브 전략을 채택했고 서스만 변호사와 실시간으로 연락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제출된 답변서에서 힐러리 캠프 관계자들은 서스만 변호사와의 관계가 정상적인 변호사-의뢰인 관계였으며, 따라서 양자 간 오간 이메일은 비밀유지 특권에 의해 보호돼야 한다는 점을 밝히는 데 주력했다.

답변서 중 가장 먼저 제출된 것은 미국 통신기업 노이스타(Neustar) 전 수석부사장 로드니 조프의 답변서였다. 조프는 힐러리 당선 시 정부 최고위직 임명을 약속받고 힐러리 캠프 정보통신(IT)기술담당 책임자로 근무했다.

조프는 답변서에서 “서스만과는 변호사-의뢰인 관계였으므로 비밀유지 특권이 인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실제로 2015년부터 서스만 변호사와 수임관계에 있었다.

하지만, 조프는 앞서 다른 발언에서 자신의 신분을 노출하지 않고 트럼프에 관한 정보를 FBI에 제보하기 위해 서스만 변호사를 고용했다고 밝혔었다.

이는 서스만의 주된 혐의점이기도 하다. 서스만은 2016년 대선 직전, FBI 법무자문이었던 제임스 베이커를 만나 ‘트럼프 문건’을 전달했다. 조프는 이번 답변서에서 서스만의 배후가 자신이라고 자백한 셈이다.

‘트럼프 문건’은 이 문건 작성자인 영국 대외정보기관 MI6 전 요원 크리스토퍼 스틸의 이름을 따서 ‘스틸 문건’으로 불린다. 스틸은 정보수집업체 ‘퓨전 GPS’의 의뢰를 받아 해당 문건을 작성했다. 문건은 트럼프에 대한 뒷조사를 통해 수집한 부정적인 내용이 주로 담겼다.

퓨전 GPS 역시 이번에 답변서를 제출했다. 퓨전 GPS는 답변서에서 “서스만 변호사와 그의 법무법인을 도와 법률적인 문제를 해결했다”고 주장했다.

이는 퓨전 GPS가 앞서 했던 발언과 앞뒤가 맞지 않는다. 회사 설립자인 두 전직 언론인 글렌 심슨, 피터 프리치는 트럼프에 관한 부정적인 정보를 수집해 이를 언론에 퍼뜨리는 게 2016년 대선 때 퓨전 GPS가 맡은 일이었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또한 이들은 2019년에 쓴 책 ‘더러운 비밀들'(Dirty Little Secrets)에서도 이를 명확히 밝혀놨다. 퓨전 GPS 측 변호사들이 답변서 제출 전 의뢰인의 지난 행적을 제대로 확인해보지 않았음이 자명하다.

서스만 변호사가 일했던 로펌 퍼킨스 코이가 제출한 답변서 내용은 더 간단했다. 퍼킨스 코이는 퇴직한 변호사가 모든 관련 자료를 가지고 갔다고 주장했다.

힐러리 캠프 매니저였던 로비 무크는 다른 이들과는 다소 다른 주장을 펼쳤다. 그는 서스만 변호사와의 연락이 정당한 법률 자문이라고 주장하는 대신 캠프 내 다른 인사들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이로 인해 평론가들은 무크가 힐러리 캠프의 ‘약한 고리’가 될 수 있으며, 듀럼 특검도 이를 놓치지 않고 공략할 것이라고 관측하고 있다.

변호사 비밀유지 특권의 핵심은 보호대상이 된 정보가 법적 필요에 의한 법률 자문의 결과로 나온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무크의 답변서에는 그가 서스만 변호사와 주고받은 이메일이 변호사-의뢰인 사이의 법률 자문 행위였다는 주장이 없었다.

듀럼 특검 조사 과정에서 퓨전 GPS가 진행한 언론홍보 작업도 드러나고 있다.

‘트럼프 문건’ 작성자인 스틸은 퓨전 GPS 지시로 2016년 대선 선거일(11월 8일)을 한 달 반가량 남겨둔 같은 해 9월 퓨전 GPS의 지시로 언론 브리핑을 했다고 증언했다.

이 브리핑에는 뉴욕타임스, CNN, 워싱턴포스트, 뉴요커, 야후 뉴스 등이 참석했으며, 스틸은 대선 직전인 10월 다시 한번 퓨전 GPS 지시를 받아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에 전화를 걸었다.

이들 매체 중 상당수가 스틸이 제공한 정보를 기반으로 ‘트럼프-러시아 공모설’을 기사화했다. 대선을 코앞에 둔 시점이서 트럼프 측에서는 대응하기 어려운 악재로 작용했다.

또한 퓨전 GPS와 회사 임원이 직접 언론사 기자들과 접촉한 사실도 공개됐다.

프리치는 2016년 10월 5일 워싱턴포스트 탐사보도 기자 톰 햄버거, 야후 뉴스 기자 마이클 이시코프에게 트럼프와 러시아 은행 간 유착 의혹 자료를 보냈고, NBC의 탐사보도 책임 편집자 매튜 모스크에게는 “이봐, 이거 엄청나”라는 제목의 메일에 자료를 첨부해 보냈다.

프리치는 2주 뒤 로이터 통신의 마크 호센볼 기자에게도 “엄청나게 중요하다”며 같은 내용을 제보하는 메일을 보냈다.

한편, 듀럼 특검은 현재 힐러리 캠프의 IT 책임자 조프를 중심으로 연루자들을 밝혀내는 데 조사력을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월 듀럼 특검이 법원에 제출한 문건에 따르면, 힐러리 캠프는 트럼프-러시아 공모설을 부추기기 위해 트럼프타워 등 전산망 사찰을 청부한 의혹이 있다. 이러한 전산망 사찰에 핵심 역할을 한 인물이 힐러리 캠프 IT책임자 조프로 여겨진다.

만약 서스만 변호사가 조프나 그 밖의 캠프 관계자들을 만나 전산망 사찰을 논의한 것이 사실로 밝혀지게 된다면, 서스만 변호사와의 접촉이 정당한 법률 자문 행위였으므로 이메일에 대한 비밀유지 특권이 인정돼야 한다는 캠프 관계자들의 주장이 무너지게 된다.

해당 이메일 공개를 요구하고 있는 듀럼 특검이 조프의 행적 규명에 힘을 쏟는 이유다.

* 이 기사는 제프 칼슨, 한스 만케 기자가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