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례없는 달러 강세로 물가 불안 지속…‘통화스와프’ 두고 견해차

이윤정
2022년 09월 8일 오후 6:09 업데이트: 2022년 09월 8일 오후 6:09

환율, 1380원 돌파…13년 5개월 만에 처음
외환위기 막으려면 한미·한일 통화스와프 시급 vs
외환위기 아냐…통화스와프 별 도움 안 돼

최근 원·달러 환율이 1384원까지 치솟으면서 정부가 외환 시장 안정화를 위해 구두 개입에 거듭 나서고 있지만 환율 오름세는 꺾이지 않고 있다.

9월 7일, 원·달러 환율이 전날보다 12.5원 오른 달러당 1384.2원에 장을 마쳤다. 달러당 1337.6원으로 마감한 지난 8월 31일 이후 잇따라 연고점을 갱신하더니 일주일 만에 50원 가까이 오른 것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의 영향으로 원유·가스 등 에너지와 국제 원자재 가격 급등세가 이어지면서 환율 1400원 돌파도 시간문제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 6월, 환율이 1300원을 넘어선 지 두 달 만이다. 설상가상으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통화 긴축 속도가 빨라지면서 한미 금리가 다시 역전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에 정부는 환율 안정을 목표로 잇따라 시장 개입을 시사하며 구두 경고를 내놓고 있지만, 원화 가치는 지속해서 하락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 7일 원·달러 환율이 1380원을 돌파하자 이승헌 부총재 주재로 ‘긴급 시장상황 점검회의’를 열고 “최근 원화 약세 속도가 우리 경제 펀더멘털(기초 경제여건)에 비해 빠른 측면이 있다”고 진단하며 “향후 외환시장 동향을 예의주시하는 한편 시장 안정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서울 양천구 한국방송회관에서 열린 한국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최근 환율 수준은 나 홀로 달러 강세인 상황”이라며 “당국이 예의주시하면서 필요할 경우 적절한 조치, 시장 안정 조치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추 부총리는 “최근 유가와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인한 수입액이 급증하는 영향으로 무역수지와 상품수지가 좋지 않다”며 이같이 말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9월 7일 서울 양천구 한국방송회관에서 열린 한국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 기획재정부 제공

물가 줄줄이 인상 예고

환율 상승으로 수입 제품 가격이 오르면서 물가 상승이 심화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8월 외식 물가 상승률은 8.8%를 기록했다. 이는 1992년 10월(8.8%) 이후 약 30년 만의 최고치다.

추석 이후에도 물가 상승은 이어질 전망이다. 라면을 비롯해 식품 가격 인상이 이미 예고됐고, 오는 10월에는 전기·가스요금 등 공공요금도 인상될 예정이다. 전기요금 기준연료비는 지난 4월에 이어 ㎾h당 4.9원 인상될 예정이며 가스 요금도 MJ(메가줄)당 1.9원에서 2.3원으로 오른다.

한국은행은 ‘고인플레이션 지속가능성 점검’ 보고서를 통해 5~6%대의 높은 물가 오름세가 향후 6개월 이상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국은행은 “주요 물가 리스크를 점검해 본 결과, 원자재 가격 반등 가능성과 수요 측 물가 압력 지속 등으로 높은 물가 오름세가 예상보다 오래 지속될 가능성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한국은행 | 연합뉴스

강달러, 당분간 이어질 듯

대한상공회의소 산하 SGI(Sustainable Growth Initiative·지속성장이니셔티브)는 지난 4일 ‘최근 환율 상승에 대한 평가’ 보고서에서 “세계적인 경기침체 우려와 미국의 통화정책 정상화로 달러화가 강세를 이어가고 있다”며 “이러한 현상이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평가했다.

보고서는 환율이 상승하는 주요 요인을 단기와 장기로 나눠 분석했다. 최근의 환율 상승을 이끄는 단기 요인으로 △코로나19 이후 통화정책 정상화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국제수지 악화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 등을, 장기 요인으로는 △고령화 등 인구구조 변화 △해외투자 증가를 꼽았다.

이어 환율이 상당 기간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정책적으로 고(高)환율의 부정적 영향을 완화하고 외환시장의 안정성을 강화하는 한편, 수입 원유에 부과하는 관세를 인하해 가계와 기업의 부담을 완화할 것을 검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대한상의 측은 미국 등 주요국과의 통화스와프를 통해 외화 자금 공급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보고서에서 “통화스와프를 통해 시장의 과도한 쏠림현상을 예방하고 향후 환율 상승에 대한 기대가 굳어지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기대해볼 수 있다”며 “지난 2020년에도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 발표로 인해 달러화 조달에 대한 불안감이 완화되면서 환율이 하락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9월 7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달러당 1384.2원에 거래를 마쳤다. | 연합뉴스

통화스와프 두고 의견 차…시급 vs 불필요

환율 오름세가 이어지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다시 한번 통화스와프 필요성이 거론되고 있다. 통화스와프는 국가가 계약을 맺고 비상시 미리 약속한 환율에 따라 각자의 통화를 빌려주는 일종의 맞거래.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정부가 서둘러 대비하지 않으면 내년에 원·달러 환율이 1500원까지 상승할 수 있다”며 “외환위기 재발을 막으려면 2008년처럼 한·미 통화스와프, 한·일 통화스와프를 다시 체결해 방어막을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헌용 남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도 한 일간지 칼럼에서 “환율 방어는 한미 간 금리 차이의 조정이 근간이 돼야 하고, 여기에 한미 통화스와프가 기본적으로 포함돼야 한다”며 “정부는 한미 통화스와프를 변수가 아닌 상수로 보고 이를 체결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반론도 존재한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8월 25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미국과 상설 통화스와프를 하고 있는 유로존 국가들 통화도 약세를 보이고 있어 전 세계적 강달러 상황에서 통화스와프를 체결해도 환율을 안정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금리 결정이 환율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앞서 한덕수 국무총리는 7월 26일 한·미 통화스와프 재개와 관련해 “필요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한 총리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경제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김경협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통화스와프를 국내 시장의 외환 안정을 위한 메커니즘으로 가져오는 것은 그렇게 필요하지도, 절실하지도 않다”며 “한·미 간 통화 스와프를 가동할 수 있다는 합의 정도로 충분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 총리는 “환율 위기가 아니다”라고 진단하며 그 이유에 대해 “전체 국가에서 달러가 강세이기 때문에 그에 따라 환율이 같이 내려가고 있다”면서 “일본 엔화도 30% 절하됐고 거의 모든 나라의 환율이 달러보다 싸진 상황이다. 외환 위기라는 것은 동의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