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가치 지속 하락…외환 위기 문제없나?

이윤정
2022년 01월 20일 오후 4:42 업데이트: 2022년 01월 20일 오후 4:42

원/달러 환율 1200원대…원화 가치 더 떨어질 수도 있어
한은 “원자재 가격 상승·중국 의존도 등 대외 요인 영향”
반도체 경기 둔화 우려 속 외국인 매도 증가도 요인
한미 통화 스와프 600억 달러 연장 불발…외환 위기 대비해야

최근 원화 가치가 하락세를 지속하고 있다. 지난해 달러 대비 원화가 유난히 약세를 보인 원인을 두고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 및 중국 경제 둔화 등 대외적 요인의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 나왔다. 아울러 미국과의 통화 스와프(교환) 종료에 따라 원화 가치는 더 떨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한국은행이 1월 18일 발표한 ‘BOK이슈노트: 최근 원화 약세 요인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원/달러 환율 상승률은 8.2%다. 이는 달러 인덱스(세계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 6.3%, 주요 신흥국의 대미 환율 상승률 2.7%를 훨씬 웃도는 수치다.

한국은행은 “우리 경제는 국제 원자재 수입, 중국 경제, 반도체 등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며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통화 정책 기조 정상화 전망 등에 따른 달러 강세 국면에서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 중국 경제 불안, 반도체 경기 둔화 우려 등 대외 리스크가 원화 약세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원화 약세 원인으로 △국제 원자재 가격 △중국 경제 의존도 △외국인 포트폴리오 투자 △현/선물환 연계를 통한 환율기대 강화 등을 지목했다.

2021년 원화 약세 요인으로 우선 ‘국제 원자재 가격 급등’을 꼽았다. 해외 원자재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경제 특성상 2020년 하반기부터 두드러진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교역 조건, 경상수지가 악화했다. 이에 따라 우리 경제에 미칠 부정적 영향에 대한 우려가 반영돼 원화 가치 하락을 유발했다는 분석이다.

통상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 시기에는 달러화가 약세를 보이는 경향이 강했다. 하지만 글로벌 공급 병목 현상과 맞물려 인플레이션(물가상승) 기대가 높아졌고 이에 미국 중앙은행 격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정책 기조가 통화 긴축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달러화가 강세를 보였다는 설명이다.

‘대중국 경제 의존도’도 원화 약세에 영향을 미쳤다. 한국은행은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국가일수록 중국 경기가 둔화하면 달러 강세기에 통화 절하율이 상대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우리나라는 대중 교역 의존도가 2020년 기준 24.6%로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상황이라 중국 경기 둔화의 영향을 더 크게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중국 부동산개발 기업 헝다(恒大)그룹 관련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등 중국 경제에 대한 우려가 심화했다. 이는 중국과 교역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국가들이 금융시장에서 투자자금을 유출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봤다. 실제 중국 부동산 시장 불안에 대한 우려를 반영해 지난해 말 대부분의 기관이 2021년, 2022년 중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0.1~1.3%p 하향 조정했다.

보고서는 ‘포트폴리오(투자) 조정’도 원화 약세를 일으킨 요인으로 봤다. 통상 선진국 투자자들은 해외 투자 시 국가별 투자 비중을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포트폴리오 리밸런싱(재조정) 행태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 우리나라는 2020년 주가 상승률이 54.2%로 중국(19.2%) 및 신흥국(41.3%)을 크게 상회했다. 이에 글로벌 투자자들이 우리나라 투자 비중을 축소하면서 투자자금이 유출된 것도 원화 가치 하락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하반기 불거진 글로벌 반도체 경기 둔화에 대한 우려도 원화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부 해외 투자·분석기관들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메모리 반도체 공급 과잉, D램 가격 하락 등을 예상하면서 국내 반도체 주식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의 순매도가 증가했다.

이 밖에도 원화 가치 하락을 부추긴 요인으로 환율 상승 기대에 따른 선물환 헤지(hedge·위험회피 또는 분산), 투기 수요 증가 등을 들었다. 지난해 중반부터 미국 테이퍼링(tapering·자산 매입 축소) 조기 실시, 반도체 경기 둔화 우려, 국제원자재가격 상승 등의 요인으로 환율 상승 기대가 형성되면서 선물환 매입이 증가했다는 게 한국은행의 설명이다.

보고서는 “원화 환율이 여러 가지 요인의 영향을 받는 만큼 미국의 인플레이션, 국제 원자재 가격, 중국 경제, 투자자금 이동, 반도체 경기 사이클에 따른 국내 기업 실적 변화 등 관련 대외 리스크 동향을 상시 점검하고 글로벌 자금 흐름 및 외환시장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앞으로 원/달러 환율이 더 상승할 수 있다는 분석도 존재한다. 한미 통화 스와프가 지난해 말 종료됐기 때문이다. 1월 20일 현재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은 1189원이지만 1300원까지 상승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12월 31일, 한국은행이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와 체결했던 한시적 통화 스와프 계약이 종료됐다. 통화 스와프는 두 국가가 계약을 맺고 비상시 각자의 통화를 빌려주는 일종의 ‘맞거래’다. 필요할 때 자국 통화를 상대방 중앙은행에 맡기고 외화를 빌려올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마이너스 통장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300억 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를 체결한 바 있다. 2020년 3월에는 600억 달러(약 71조 원) 한도의 통화스와프 계약을 체결한 뒤 세 차례 연장에 합의했다. 코로나19로 인한 달러 유동성 부족을 대비하기 위해서다.

한국은행이 한미 통화스와프 계약을 연장하지 않은 채 종료한 것은 국내 금융·경제 상황이 위기에서 벗어났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은행은 최근 금융·외환시장 상황 등을 고려하면 통화스와프 계약 종료가 국내 외환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당장 국내 금융·외환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지만, 미국 테이퍼링 본격화에 대비한 통화 스와프 확대 등으로 외환위기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한 매체 칼럼을 통해 “환율이 오르는 것은 한국 외환 위기의 가장 좋은 지표”라고 전제한 뒤 “미국, 유럽을 포함한 전 세계에 오미크론 변이가 확산하는 가운데 무역의존도 65%인 한국은 외국인 투자자금 유출과 미국의 달러 환수로 제2의 IMF 외환위기 우려가 증가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외환보유고를 충분히 비축해 방어막을 쌓아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