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강국 프랑스, 러시아發 에너지 위기 처한 유럽서 두각

케이티 스펜스
2022년 08월 1일 오후 3:43 업데이트: 2022년 08월 1일 오후 3:43

러시아가 유럽의 경제제재에 대한 보복조치로 에너지 공급을 제한하면서 유럽이 에너지 위기에 빠진 가운데, 원전 강국 프랑스가 원자력 발전에 더 힘을 싣고 있다.

세계원자력협회(WNA)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신규 원전 6기 건설 계획에 이어 8기 추가 건설을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 국영 가스업체 가즈프롬은 지난달 27일 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노르드스트림-1 가스관을 통한 가스공급량을 3300만㎥로 대폭 감축했다. 평소 공급량(1억 6000만㎥)의 20%에 불과한 규모다.

이날 유럽에서는 에너지 공급난에 대한 우려가 치솟으면서 천연가스 도매가 기준물인 네덜란드 TTF 천연가스 익월물 가격이 전 거래일보다 2.65% 뛰어오르며 6일 전에 비해 32% 상승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글로벌 산하 유럽·중동·아프리카 담당 가스 애널리스트인 제임스 헉스텝은 파이낸셜타임스(FT)에 “러시아의 가스 공급 축소는 모두가 예상했던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이처럼 급격히 줄일 것이라고는 시장이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발트해 해저를 통해 러시아와 독일을 직접 잇는 가스관 노르드 스트림-1. |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2월 24일 러시아는 2014년부터 지속해온 우크라이나와의 분쟁을 마무리 짓기 위해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를 전쟁이 아닌 ‘특수 군사작전’으로 규정했다.

미국 등 주요 7개국(G7) 국가와 유럽연합(EU)은 공동으로 러시아에 강력한 제재를 가하기 시작했다. 미국 상무부는 러시아 은행 7곳을 국제금융정보통신망(SWIFT·스위프트)에서 배제했다.

이어 미국과 서방 국가들은 푸틴 대통령의 자금줄을 끊기 위해 수십 개의 러시아 방산업체와 러시아 고위층, 그리고 푸틴 대통령의 가족들을 제재 목록에 올렸다.

하지만 이러한 제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저지하기에 충분하지 못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3월 8일 러시아산 석유 수입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전까지 미국은 러시아에서 매일 약 70만 배럴의 원유를 수입했다.

독일과 폴란드도 파이프라인을 통한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줄여 최종적으로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금지하겠다고 약속했고, EU는 6월 3일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일부 금지하며 제재에 동참했다.

독일 레덴에 위치한 서유럽 최대 천연가스 저장고인 아스토라(Astora) 저장소. 2022.3.16 | Fabian Bimmer/Reuter=연합뉴스

EU는 러시아 원유 수입 제재는 내년 2월까지 단계적으로 강화할 예정이지만, 러시아산 원유 의존도가 높은 슬로바키아, 헝가리, 체코가 반발했고 이 3개국은 결국 제재 참여가 면제됐다.

러시아는 다른 판로를 찾아 나섰고 중국과 인도가 호응했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 폭락한 루블화 가치를 회복하기 위해 천연가스 구매대금을 루블화로 지불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판로를 찾은 러시아는 유럽으로 공급하던 천연가스를 줄이기 시작했다.

덴마크, 핀란드, 불가리아, 폴란드 등의 국가는 모두 루블화 지급 조치에 응하지 않았다. 러시아는 이들 국가에 대한 천연가스 공급을 중단했다.

러시아는 EU 27개 전 회원국에 천연가스를 가장 많이 공급하는 국가다. 러시아의 가스 공급 제한은 유럽에 에너지 위기를 촉발했다.

러시아의 반격, 흔들리는 유럽 경제

국제통화기금(IMF)은 7월 보고서에서 “가스관을 통한 러시아의 유럽 천연가스 공급이 1년 전의 40% 수준으로 급감하면서 지난 6월 천연가스 가격 급상승의 한 원인이 됐다”고 밝혔다.

러시아 경제는 유럽의 제재에 생각보다 잘 버티고 있다. IMF는 보고서에서 “러시아 경제는 원유와 비에너지 제품의 수출이 예상보다 잘 유지되면서 지난 2분기 경제 위축이 예상만큼 심하지 않았다”고 추정했다.

러시아 내수 경기 역시 제재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은 국내 금융과 노동시장에 힘입어 나쁘지 않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 유럽 경제는 더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보고서는 유럽 경제에 관해 “에너지 가격 상승과 더불어 지속적인 공급망 붕괴, 비용 상승으로 인한 소비 의욕 저하, 제조업 모멘텀 저하로 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은 예상보다도 더 부정적”이라고 진단했다.

자료사진. 독일은 2030년까지 전력에너지 수요의 65%를 풍력과 태양광 발전으로 해결하려 하고 있다. | 셔터스톡

IMF는 러시아의 에너지 공급 차단이 EU 경제를 이끄는 독일 경제에 미칠 파장을 더 우려하고 있다.

IMF는 러시아가 에너지 공급을 완전히 차단할 것이라는 가정하에 독일 국내총생산(GDP)이 올해와 내년 각각 1.5%, 2.7% 줄어들고 같은 기간 물가상승률은 2%를 웃돌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독일 정부가 추진한 탄소가스 배출 감축 계획과 맞물려 더 큰 우려를 낳고 있다. 2017년 개정한 <재생에너지법(EEG)>에 따르면 독일은 2025년까지 전체 전력의 40~45%, 2030년부터는 최대 65%를 재생에너지로 생산해야 한다.

그 결과 2017년 독일의 전체 전력 생산량에서 원전과 석탄화력발전은 각각 11.7%와 36.6%로 낮아졌지만 재생에너지 비율은 33.3%로 증가했다.

하지만 재생에너지로는 줄어든 원전·석탄화력 발전량을 전부 상쇄할 수 없었고 부족분만큼 천연가스 발전으로 채워야 했기에 독일은 2017년 전체 전력의 13.2%를 천연가스 발전에 의존했다. 이 비율은 2019년 25%로 증가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학의 현대독일연구소 비상임연구원 사라 로만 박사는 “불행히도 독일은 친환경 에너지 발전의 선두를 달리려는 열정으로 기본적인 산수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로만 박사는 “독일은 단계적으로 폐지하기로 한 원자력과 석탄 발전을 대체할 수 있는 재생 에너지를 충분히 개발해내지 못했다. 내년에 계획대로 모든 원전이 가동 중단되면 대형 석탄발전소 10개분인 4.5기가와트(GW)의 전력이 부족해질 것이다”라고 예상했다.

그녀는 또한 “독일 중위소득 수준 가정의 에너지 비용은 전체 세금 및 공과금의 50%에 달한다”며 “이는 EU의 나머지 회원국 평균보다 43% 높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는 전부 재생 에너지로의 전환을 위한 비용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재생 에너지 전환을 앞당기기 위해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도를 높였던 독일은 지난달 폐쇄한 석탄화력발전소를 재가동하기 위한 관련법을 서둘러 통과시켰다.

독일은 올겨울 난방 대란을 우려해 국민들에게 에너지 절감을 강조하고 있다. 로베르트 하베크 부총리는 가스 배급제 실시 가능성을 시사했으며, 관련 부처는 난방온도 낮추기를 권고하고 있다.

프랑스 남서부의 골페흐(Golfech) 원전이 가동 중인 가운데 원자로 냉각탑에서 수증기가 배출되고 있다. 2021.11.27 | Eric Cabanis/AFP/Getty Images=연합뉴스

에너지 자립도 높은 프랑스의 여유

러시아의 에너지 도발에 가장 영향을 덜 받는 프랑스는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입장이다. 세계원자력협회에 따르면, 프랑스는 전력 생산의 70%를 원전으로 발전하면서 지난 10년간 매년 70테라와트시(TWh) 이상의 전력을 수출하는 유럽 최대의 전력 수출국이 됐다.

IMF 보고서에서는 프랑스의 에너지 상황에 대해 “1차 오일쇼크 직후인 1974년 ‘전면 원자력에너지 채택’ 정책을 도입해 현재까지 상당한 수준의 에너지 자립을 이뤘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실제로도 유럽 평균 전기세보다 비용도 밑돌고 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또한 “프랑스는 현재 전력의 약 80% 이상을 이산화탄소를 전혀 배출하지 않는 원자력이나 수력으로 발전하고 있어 프랑스의 국민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매우 낮다”고 평가했다.

한편,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프랑스의 에너지 자립을 더 확고히 하고 에너지 위기에 처한 유럽을 돕기 위해 지난 2월 프랑스의 원자력 발전 용량을 늘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