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한폐렴 피해 중국 입국한 중국인들, SNS에 구조신호 “갇혔다”

한동훈
2020년 03월 18일 오전 11:07 업데이트: 2020년 03월 18일 오전 11:38

“말레이시아에서 자정에 출발해 (오전) 6시에 베이징에 도착했다. 그리고 7시간 비행기에 그대로 갇혔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지난 16일 중국 베이징시가 신종코로나 감염증(우한폐렴) 역유입을 막기 위해 모든 입국자를 대상으로 14일간 강제로 격리조치에 들어갔다.

베이징시는 16일 0시(현지시간)를 기준, 모든 입국자를 당국이 지정하는 시설에서 14일간 머무르며 건강상태를 점검하도록 했다. 그에 따른 비용은 입국자가 전액 부담한다.

앞서 베이징시는 베이징 거주자(주택소유자 혹은 임대계약자)는 자택에서 자가격리하도록 허용해왔다. 이번에 격리방침을 변경·강화한 것이다.

이를 모른 채 입국한 사람들은 기대했던 집 대신 격리시설에 갇혀 답답하고 두려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아무런 설명을 듣지 못해 억울함은 더욱 컸다.

말레이시아에서 중국 베이징으로 입국했다는 중국인이 SNS에 쓴 글 | 화면 캡처

지난 16일 말레이시아에서 베이징을 통해 새벽에 입국했다는 중국인 A씨는 “13시에 비행기에서 내려…18시에 (베이징) 다싱구의 격리시설에 도착했다. 그제야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었다. 그 사이 물도 식사도 못했다”는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

A씨는 “베이징에 집이 있으니 자가격리하겠다고 여러 번 말했다”면서 “(그러나) 경찰은 서명하지 않거나 지시에 따르지 않으면 형을 살 수도 있다고 위협했다”고 했다.

결국 글쓴이는 “그날밤 백여통이 넘도록 전화를 하고 수십명에게 부탁해 고발하고 언론사에 일하는 친구를 찾아 구조를 요청한 끝에 집에 돌아갈 수 있었다”고 했다.

중국에서는 14일간 강제격리에 따른 비용 수십만~수백만 원을 격리자에게 자가부담하도록 하고 있다. 격리시설로 이용되는 한 숙박시설에서는 1인당 1일 500위안(약 8만8천원)의 비용을 부담했다는 트위터 글도 있었다. 3인 가족 기준 370만원 정도의 비용이다.

상하이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보고됐다.

유럽에서 상하이로 입국한 중국인 B씨는 “병원에 15시간 갇힌 채 물도 못 마시고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고 있다”며 “굶어죽을 지경”이라는 SNS에 글을 남겼다.

프랑스에서 유학하던 B씨는 지난 14일 새벽 상하이 국제공항에 입국해 검역당국의 역학조사를 받고 바로 상하이 푸둥병원으로 옮겨졌다.

병원에서 혈액검사와 CT촬영를 받은 B씨는 다른 환자들과 함께 병원 1층 발열진료소에 격리됐다. 병원 측은 검사결과 통보는 물론 아무런 후속조치를 해주지 않았고 음식물도 제공하지 않았다.

다른 환자들과 그대로 방치된 B씨는 15시간 만에야 사태의 심각성을 눈치채고 SNS를 통해 구조메시지를 보냈지만 추후 소식이 전해지지 않고 있다.

유럽에서 상하이 공항으로 입국했다가 병원에 다른 발열환자들과 갇혔다는 중국인이 구조를 요청하며 SNS에 올린 글 | 화면 캡처

해외 중국인들의 중국 귀국행렬이 이어지는 가운데, 베이징 입국자들 사이에서 강압적인 격리조치에 따른 피해를 호소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우한 폐렴이 급속 확산하고 있는 유럽 등지에서는 중국행 항공권이 품귀현상까지 일어나고 있다. 심각한 감염확산을 피해 ‘안전한’ 중국으로 되돌아가려는 중국인들이 몰려들고 있어서다.

그러나 이러한 중국인들의 귀국붐은 공산당 관영매체들이 부추긴 부분도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들 매체가 중국 내 우한폐렴이 확실히 종식되지 않은 상태에서 마치 다 끝난 것처럼 보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9일 신화통신은 ‘우한의 대형 임시병원이 마지막 환자를 퇴원시키고 운영을 종료했다’고 전했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자매지 환구시보는 “유럽·북미 일부 국가가 좀 더 심각하게 내응에 나서야 한다”고 핀잔을 줬다.

공산당 관영매체는 지난 1월 중순까지 ‘사람 간 전염은 없다’는 중국 보건당국 발표를 그대로 전재해 우한폐렴 확산을 일조한 전과가 있다. 보건당국에서는 이미 1월 초 사람 간 전염을 확인했음이 이후 밝혀졌다.

이미 한번 거짓선전의 피해를 본 중국인들은 또다시 관영매체 보도를 믿고 안전한 ‘대피처’를 찾아 중국으로 입국하고 있지만, 강제 격리와 경비 자비부담, 심지어 다른 감염자에 대한 노출까지 또다른 피해를 입고 있다.

게다가 이런 비인도적인 강제조치는 베이징에 집이나 사업체를 둔 한국인에게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어, 국민구조 차원에서 한국 정부의 조속한 대응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