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난민 50만명 탈출…“유럽 최대 인도주의 사태”

하석원
2022년 03월 2일 오전 11:54 업데이트: 2022년 03월 2일 오전 11:54

러시아 침공이 엿새째 접어든 가운데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폴란드, 헝가리, 몰도바, 슬로바키아, 루마니아 등 국경을 접하고 있는 동유럽 국가들로 몰리고 있다.

계엄령에 따라 18~60세 남성들의 출국이 제한된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피난민 대부분은 여성과 어린이들이다. 유엔은 지난 24일 침공 이후 50만 명 이상이 우크라이나를 떠나 폴란드 등 주변국으로 피신했다고 추산했다.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에 따르면, 국가별 우크라이나 난민은 폴란드 28만1천명, 헝가리 8만4천명, 몰도바 3만6천명, 루마니아 3만2천명, 슬로바키아 3만명이다.

상황이 긴박해지자 유엔과 동유럽 국가들은 앞다퉈 난민 지원책을 내놓고 있다. 유엔 사무총장 안토니우 구테흐스는 지난주 우크라이나 난민에 2천만 달러를 긴급 지원하기로 했다.

유엔난민고등판무관 필리포 그란디는 우크라이나 주변국에 국경 개방을 요청했으며, 이들 국가로부터 난민이 강제 추방되는 상황에도 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 난민 이동 현황 |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

폴란드 정부는 우크라이나 난민에게 지하철 등 대중교통, 기초 의료, 피난처를 무료 이용할 수 있도록 했으며, 지난 27일에는 난민 지원을 체계화하기 위한 공식 웹사이트를 개설했다.

헝가리에서는 지역사회와 시민들이 난민 사태에  주도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부다페스트 시민단체들은 식품·의약품·의류·위생용품·방한용품 등을 기부받아 우크라이나와 국경지대로 보내며 난민 지원에 힘쓰고 있다. 27일 헝가리 국경에는 20km에 달하는 난민 행렬이 목격됐다.

폴란드와 헝가리를 비롯해 크로아티아, 몰도바,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국경지대에는 적십자 센터 주도로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위한 임시 대피소가 마련됐다. 국경 양측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음식, 물, 침구, 의류, 휴대전화 유심카드, 위생용품 등을 나눠주고 있다.

국제적십자사·적신월사연맹(IFRC)의 비르기트 비쇼프 에베센 유럽지역국장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향후 유럽에서 가장 큰 인도주의적 비상사태의 하나가 될 것”이라며 “분쟁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이 언제쯤이나 안전하게 귀국할지 알 수 없다”고 우려했다.

전쟁을 피해 우크라이나 서부로 피신한 과학자 나탈리아 시다니치는 1일 에포크타임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최악의 악몽이 엿새째 계속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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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폴란드 코르초바 근처의 임시 대피소에 도착한 우크라이나 난민들. 2022.2.28 | Sean Gallup/Getty Images

아내와 12살 딸을 데리고 지난 24일 오전 수도 키예프를 탈출했다는 시다니치는 “전쟁 발발 소식을 들었을 때 계속 남아서 집과 재산을 보호할 방법을 찾아야 하는지 아니면 살기 위해 다 내버려 두고 달아나야 하는지 결단을 내려야 했다”고 말했다.

결국 집을 떠나 현재 우크라이나 서부의 한 호텔에 머물고 있다는 시다니치는 키예프 시민들이 전쟁이라는 현실을 제대로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 탱크가 새벽에 들이닥쳤지만, 점심 때까지도 키예프는 평상시와 같았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아내 막심은 “다들 며칠 내에 함락되리라 생각했지만, 우크라이나는 버티고 있다.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동부에서 떨어진 이곳 서부에서도 다들 무장하고 있다. 밤에는 사람들이 조를 짜서 순찰을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시다니치는 “적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지는 않다”면서도 “하지만, 이번 침공은 우크라이나를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수준으로 단결시켰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침공 현황. 지난 25일 기준. | 로이터/연합

시다니치 가족은 해외로 빠져나가지는 않을 계획이다. 우크라이나 서부에 계속 머물면서 우크라이나군의 승리와 휴전 협상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시다니치는 러시아군이 서부까지 진격하면 민병대에 자원해 가족을 지키겠다며 “이 나라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하루하루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의 가족이 머무는 서부에는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서부에 머물며 사태를 지켜보려는 이들도 있지만, 외국으로 빠져나가려는 사람들도 많다. 시다니치는 “아이들이 하루를 지하실이나 벙커에서 보내도록 할 수는 없다”고 말하며 국경을 넘는 가족들을 봤다고 했다.

시다니치는 “안타깝게도 동부에서 오는 사람들을 볼 수 없다. 지금 서부로 오는 사람들은 다른 지역 출신들”이라며 “동부에서 이곳으로 오는 다리와 도로가 막혔다고 들었다. 내가 빠져나올 때도 교통체증이 극심했었다”고 말했다.

아내 막심은 “이곳도 생필품이 이미 품절 상태다”라며 “샴푸나 치약을 살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하르키우에 머무는 친구네 가족 상황은 더 심하다고 들었다”며 1살짜리 아픈 아기가 있는 8인 가족이 난방, 물, 전기가 없는 지하실에서 지낸다고 전했다.

“전화를 걸 때마다 심장이 뛰어요. 그때마다 응답이 없을까 봐, 침묵의 소리만 듣게 될까 봐 두려워요.”

* 이 기사는 오텀 스프레더만 기자가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