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앓던 침팬지가 사람 친구 만나자 ‘수화’로 처음 전한 말

이서현
2019년 10월 24일 오후 12:25 업데이트: 2022년 12월 20일 오후 6:02

1973년 11월, 미국 오클라호마 영장류연구소에서 아기 침팬지가 태어났다.

‘인간처럼 길러진다면 동물도 언어를 배울 수 있을까?’

컬럼비아 대학 허버트 박사는 언어 실험을 위해 갓 태어난 침팬지를 데려왔다.

영화 ‘프로젝트 님’

“언어는 인간의 유일한 능력”이라 말한 언어학자 놈 촘스키를 비틀어 님 침스키라는 이름도 붙여주었다.

허버트 박사는 7명의 아이를 키우고 있던 한 가정에 님을 맡겼다.

영화 ‘프로젝트 님’

님은 인간 엄마의 모유를 먹고 사람들과 어울리며 정말 사람처럼 성장했다. 인간의 말 대신 수화도 배웠다.

학습능력이 뛰어난 님은 개, 고양이 같은 단어와 미안해, 고마워 등 수백 가지 단어를 수화로 표현할 수 있게 됐다.

영화 ‘프로젝트 님’

‘수화를 하는 꼬마 침팬지’의 탄생은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TV 출연 등으로 님이 화제가 되자 연구팀은 더 욕심을 냈다.

자유롭던 가정교육을 문제 삼으며 님을 인간 엄마에게서 떼어놨다.

박사의 연구팀이 님의 새로운 가족이 됐지만, 님에게 더 이상의 인간교육은 무리였다.

침팬지의 야성을 드러내며 님이 연구원을 공격하기에 이르자 허버트 박사는 결국 4년 만에 연구 중단을 발표했다.

오갈 데 없어진 님은 자신이 태어난 오클라호마 영장류연구소로 돌아갔다.

태어나 다른 침팬지와 살았던 적도, 우리 안에 갇힌 적도 없던 님에게 사육장은 공포 그 자체였다.

어느새 님은 인간도 침팬지도 아닌 존재가 되어있었다. 마음의 상처를 입은 님은 먹는 것도 거부하며 우울한 모습만 보였다.

영화 ‘프로젝트 님’

님을 가장 잘 이해하며 보살펴주던 이가 연구소에 있던 사육사 밥이었다. 그는 수화를 배워 님과 소통하며 친구가 돼 주었다.

하지만 연구소가 경영난을 겪으면서 님은 한 제약 임상실험장으로 보내졌다.

다른 침팬지의 비명과 고통스러운 실험을 견디며 하루하루 죽어가는 님.

밥은 치열한 법정 싸움을 시작했고 독지가의 후원으로 거액을 주고 님을 다시 구해올 수 있었다.

이후 한 동물보호소에서 지내게 된 님은 극심한 우울증 증세와 폭력성을 보였다.

인간과 소통하고 싶어 수화를 보내는 님을 보호소 직원들은 이해하지 못했고 님은 더욱더 외로운 시간을 보냈다.

영화 ‘프로젝트 님’

어느 날, 밥이 님을 만나러 동물보호소를 찾았다. 그가 님에게 다가가자 보호소 직원들은 그를 말렸다.

그런데 철창 밖에 선 밥을 알아본 님은 그를 보자마자 수화로 말을 건넸다.

“놀자.”

인간과 침팬지 사이가 아니라 유일하게 자신을 이해해준 친구에게 전하는 말이었다.

이후 밥은 님과 시간을 보내려고 종종 보호소를 찾았고 님은 2000년 숨을 거둘 때까지 보호소에서 지냈다.

스물 일곱 해를 산 님의 이야기는 2011년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프로젝트 님’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