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보유고 비어간다…“한·미 간 상설 통화스와프 체결해야”

이윤정
2022년 07월 5일 오후 7:15 업데이트: 2022년 07월 5일 오후 8:29

한달 새 94억 증발…금융 위기 후 최대 감소세
환율 급등에 원화 방어 조치 영향
美 금리인상으로 외국인 자본 이탈 우려
무역적자로 외화 확보 어려워져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이 4개월 연속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외환보유액의 경제 안전망 역할을 강조하며 국제기구에서 권고하는 적정 수준까지는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한미 간 ‘통화스와프’가 대안으로 제시되기도 했다.

7월 5일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6월 말 기준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4382억8000만 달러다. 한 달 전(4477억1000만 달러)보다 94억3000만 달러 감소한 수치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던 2008년 이후 가장 큰 감소세다.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지난해 10월 4692억1000만 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찍은 후 8개월 만에 310억 달러가 증발했다. 지난 3월 이후 4개월 연속 감소한 액수만 총 289억 달러에 달한다.

현재 국내 외환보유액 규모는 국제기구에서 권고한 적정 수준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국제통화기금(IMF)와 국제결제은행(BIS)은 우리나라 적정 외환보유액을 각각 6810억 달러, 9300억 달러로 권고한 상태다.

외환보유액의 가파른 감소세는 최근 원·달러 환율 급등에 따른 외환시장 안정 조치 때문으로 분석됐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외환 당국은 올 1분기에 외환시장에서 83억 1100만 달러를 순매도했다. 우리 돈으로 10조 원 넘는 달러를 판 것이다.

외국인 자본 이탈 막아야

한국은행은 적정 수준의 외환보유액을 유지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자이언트스텝(기준금리 0.75%p 인상)으로 미국의 기준금리가 한국보다 높아지면 외국인 투자자 자금 유출 현상으로 외환보유액은 빠르게 감소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외환보유액은 최종 대외 지급 준비자산인 만큼 외환보유액을 늘려 복원력을 제고하고 금리를 올려 외국인 자본 이탈을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지난 1997년 외환보유액이 바닥나면서 외환위기가 발생한 경험에 비추어 외화를 추가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가장 급한 건 외화자금 유출”이라며 “현재 우리나라의 외환보유고 또한 국내총생산(GDP) 대비 28%로 세계에서 가장 낮은 만큼, 외환보유고 현금 비중을 30%까지 늘리고 경상이익이 날 때마다 외환보유고를 쌓아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제통화기금(IMF) | 연합뉴스

환율 상승, 무역적자

설상가상으로 원·달러 환율이 13년 만에 1300원대까지 오르면서 국가신인도에도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다시 하락세로 돌아섰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미국 금리 인상, 고유가 등 대외 악재가 여전히 존재하는 한 원·달러 환율의 추가 상승 압력은 큰 상황이다.

수출을 통한 무역수지 흑자를 발판으로 외환보유액을 쌓을 수 있었던 과거와는 달라진 최근 상황에도 주목해야 한다. 올해 상반기 무역수지가 역대 최대 적자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수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5.6% 증가한 3503억 달러, 수입은 26.2% 증가한 3606억 달러로 무역수지는 103억 달러(약 13조 원) 적자를 기록했다. 하반기 수출 상황도 낙관하기 어렵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은 지난 6월 21일 올해 무역수지가 147억 달러 적자를 기록하며 14년 만에 적자로 돌아설 것으로 전망했다.

한미 통화스와프 다시 체결해야

외환보유액을 늘리고 안정성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달러 부족으로 인한 경제위기에 대비할 수 있는 대안으로 미국과 통화스와프를 다시 체결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통화 스와프는 두 국가가 계약을 맺고 비상시 미리 약속한 환율에 따라 각자의 통화를 빌려주는 일종의 ‘맞거래’다. 필요할 때 자국 통화를 상대방 중앙은행에 맡기고 외화가 부족할 때 꺼내 쓸 수 있는 일종의 마이너스 통장인 셈이다.

우리나라는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8년 10월 30일, 미국발 금융위기 때 한국은행이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와 300억 달러 통화 스와프를 체결했다. 당시 한국은행은 통화스와프를 기초로 외화대출을 시행해 기업에 달러를 공급할 수 있었고 금융위기를 진정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됐다.

2020년 3월에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와 다시 600억 달러(약 71조 원) 한도의 통화스와프 계약을 체결한 뒤 세 차례 연장에 합의했다. 코로나19로 인한 달러 유동성 부족을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미국과의 한시적 통화 스와프 계약은 지난해 12월 31일 종료됐다.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원회 의장은 지난 5월 9일 국회 원내대책회의에서 “외환·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을 제거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를 위해 한미 간 통화스와프 체결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은행 국제부총재보 출신의 강태수 한국과학기술원(KAIST) 경영대학 초빙교수는 한 일간지 칼럼에서 “5월 21일 한·미 정상 간 공동성명에 포함된 ‘외환시장 관련 협의’가 립서비스로 끝나선 안 된다”며 “한·미 간 상설 통화스와프 체결 혹은 이에 버금가는 가시적 협력체계를 서둘러 구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미국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청사 | 연합뉴스

통화스와프 실효성 우려 시각도 존재

일각에서는 통화스와프의 실현 가능성이나 효과 등을 따져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4월 19일 인사청문회에서 “미국과 상설 스와프를 맺은 국가는 세계의 금융허브”라며 “한국이 국제금융시장 허브가 안 될 경우 한국이 원한다고 스와프가 체결되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현재 원화 가치를 움직이는 건 경상수지와 미국의 긴축기조”라며 “미국과 통화스와프를 체결하더라도 전 세계적인 강달러 기조 속에 원화 가치 하락 추세를 막을 수 없는 만큼 통화스와프의 실효성은 떨어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편,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이 오는 19~20일 한국을 방문한다. 한미 정상이 외환시장 안정을 위한 긴밀한 협력을 약속한 가운데 통화스와프 체결을 위한 논의가 이뤄질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