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 싱하이밍 주한 中대사 초치…“도발적 언행 엄중 경고”

이윤정
2023년 06월 9일 오후 9:08 업데이트: 2023년 06월 9일 오후 9:42

조태용 안보실장 “한중관계도 상호존중이 기본”
장호진 차관 “외교 사절 본분에 맞게 처신하라”

외교부가 윤석열 정부의 외교정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를 초치해 엄중 경고했다.

장호진 외교부 1차관은 6월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로 싱 대사를 불러 외교 관례에 어긋나는 비상식적이고 도발적인 언행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고 외교부는 밝혔다.

장 차관은 “싱 대사가 다수의 언론매체 앞에서 사실과 다른 내용과 묵과할 수 없는 표현으로 우리 정부 정책을 비판한 것은 비엔나협약과 외교 관례에 어긋난다”고 지적하고, 이는 우리 국내 정치에 개입하는 내정 간섭에 해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앞서 싱 대사는 전날(8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서울 성북구 중국대사관저로 초청해 “미국이 전력으로 중국을 압박하는 상황 속에서 일각에선 미국이 승리하고 중국이 패배할 것이라는 베팅을 하고 있다”며 “이는 잘못된 판단이고 역사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한중관계가 악화한 책임은 중국에 있지 않다”면서 그 원인을 한국 탓으로 돌리는 발언을 하는 등 한국 정부의 대외 정책 기조를 겨냥해 날선 발언을 쏟아냈다.

이에 우리 정부는 싱 대사의 공격적 발언이 한중 우호 정신에 역행하고 양국 간 오해와 불신을 조장하는 무책임한 언사라고 단호히 지적하며 강경 대응에 나선 것이다.

아울러 외교사절의 본분에 벗어나지 않도록 처신해야 한다고 경고하며 모든 결과는 본인의 책임이 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조태용 국가안보실장도 “대한민국의 신장된 국력에 걸맞게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당당한 외교를 통해 건강한 한중관계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조 실장은 이날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국가안보전략연구원·국립외교원·통일연구원·한국국방연구원 등 4개 국책연구기관 주관으로 열린 공동학술회의 기조연설에서 “국가 간 관계는 상호존중이 기본이 돼야 한다. 중국과의 관계도 다를 바가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윤석열 정부는 국익을 중심에 두고 원칙과 상호주의를 바탕으로 국제사회와 협력하는 글로벌 중추 국가를 지향한다”며 중국에 휘둘리지 않는 대등한 관계를 강조했다.

박진 외교부 장관 역시 싱 대사의 발언에 대해 “도를 넘었다”고 비판했다. 박 장관은 이날 서울의 한 호텔에서 열린 외교부 경제안보외교센터 개소 1주년 기념 포럼에 참석한 자리에서 “외교 관례라는 게 있고 대사의 역할은 우호를 증진하는 것이지 오해를 확산하면 안 된다”며 이같이 말했다.

싱 대사 초치는 윤 정부 들어서 두 번째다. 앞서 지난 4월에도 윤석열 대통령의 대만 발언을 문제 삼은 것과 관련해 초치됐다.

싱하이밍 대사는 한국 부임 당시부터 여과 없는 거친 언행으로 물의를 빚어 왔다.

2020년 1월, 싱 대사는 신임장 제정 절차를 마치지 않은 상태에서 공개 기자회견을 열어 외교 결례 논란이 불거졌다.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19 사태로 당시 한국 정부가 중국 후베이성을 방문하거나 체류한 모든 외국인을 대상으로 입국 전면 금지 조치를 내리자 싱 대사는 서울 명동 주한중국대사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와 관련해 유감을 표한 발언으로 논란이 일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통령 후보 시절이던 2021년 7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이 사드 배치 철회를 주장하려면 자국 국경 인근에 배치한 장거리 레이더를 먼저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싱하이밍은 다음 날 같은 매체 기고문을 통해 이를 공개 반박해 내정 간섭 논란을 일으켰다. 하지만 당시 싱 대사를 초치해 항의하는 등의 정부 대응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