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관인가? 브로커인가? 첨단 기술 습득 최전선에 선 中 과기외교관

이진백
2021년 12월 14일 오후 5:21 업데이트: 2021년 12월 14일 오후 9:19

보고서 외교관, 해외 주요 기술 탈취에 지대한 역할
인공지능·반도체·양자기술·바이오경제 등 5대 중요 유망 기술 발표
안보유망기술센터 중국 과기외교관, 브로커 역할 수행
한국, 국외 유출 63건 중 중국 ‘40최다

미중 간 기술 패권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코로나19가 야기한 불안전 공급망 문제로 많은 나라들이 경제적 위협에 직면했다. 각국은 반도체, 배터리, 인공지능 등 첨단 기술 분야에서 해당 원천 기술 보유 국가로부터 기술 확보에 힘을 쏟고 있다. 이 속에서 미국은 중국으로부터 자국의 첨단 기술을 지키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 정보·방첩 기구를 총괄하는 국가정보국장실(ODNI) 산하 국가방첩안보센터(NCSC)는 지난 10월 21일, 해외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해야 하는 ‘미국의 5대 중요 유망 기술’을 선정·발표했다. 중요 유망 기술은 ▲인공지능 ▲반도체 ▲양자 기술 ▲바이오경제 ▲자율시스템 등 5가지다.

미국은 첨단 기술 분야의 ‘전략적 경쟁자’로 중국과 러시아를 꼽았다. 국가방첩안보센터 발표 자료에 의하면 중국 공산당은 2030년까지 다양한 신흥 기술 분야를 선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자료는 “베이징(중국 공산당 정부)은 인공지능, 바이오 기술, 첨단 컴퓨터 기술 등 국방 및 경제 분야에서 핵심으로 부상할 것으로 예상되는 기술 분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평가했다.

러시아의 경우 국가 안보 부문 주요 과제가 첨단 과학 기술의 발전이라 인식하고, 인공지능(AI) 분야에 집중하고 있다. 미국 첨단 과학 기술 분야 수준 도달을 목표로 국내 연구개발(R&D)을 강화하고 있다. 그 연장선상에서 국제 연구 협력 확대, 해외 인재 고용 등의 방법을 사용하여 기술을 취득한다고 분석했다.

미국은 현재 반도체 위탁 생산에서는 대만 TSMC, 반도체 공급 면에서는 중국 생산 업체들에 의존하고 있는 상태이다. 국가방첩안보센터는 다수 산업 분야에서 반도체가 핵심 부품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반도체 공급망이 취약해질 경우 모든 경제 부문에 위협을 가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적성국’이 반도체 공급망을 조작·위조하거나 손상된 반도체를 공급해 미국 관련 기업이나 국방 부문에서 사용된다면 막대한 손실을 입을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미국의 인공지능 기술 최대 위협국으로는 중국을 지목했다. 향후 10년 이내에 중국이 해당 분야에서 미국을 추월할 수도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국가방첩안보센터 발표 자료에는 중국은 ‘전략적 기술 목표’ 달성을 위해 합법·불법 수단을 번갈아 사용해 미국과 다른 나라들로부터 기술과 노하우를 습득한다고 경고했다. 중국이 해외 기술을 취득하는 대표적인 방법으로는 ▲첩보 활동 ▲인재 채용 프로그램 활용▲학술 협력 ▲유령 회사 설립 ▲비전통적 정보 수집(내부자 포섭) ▲기업 인수 합병(M&A) ▲과학 기술 연구개발(R&D) 투자 ▲연구 파트너십 체결 ▲법률·규제 활용 등이 있다고 제시했다.

미국 국가방첩안보센터(NCSC)RK 10월 21일 발표한 자료 중 ‘중국 해외 기술 취득 방법’ 내용이다.ㅣ국가방첩안보센터 제공

중국 공산당 정부의 해외 주재 외교관들이 광범위한 해외 기술 획득을 위해 ‘브로커(broker)’ 역할을 한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미국 조지타운대 산하 정책연구소인 안보유망기술센터(CSET)는 지난 5월 25일, ‘중국의 해외 기술 획득 리스트’ 보고서를 발표했다. 해당 보고서는 중국 재외공관 주재 ‘과학·기술 외교관(科技外交官, Science and Technology Diplomats)’들이 해외 기술 획득을 위하여 어떠한 구체적인 활동을 하는지를 분석한 것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52개국 주재 중국대사관·총영사관에 배치된 과기외교관은 주재국 기술 모니터링, 중국 기업의 현지 투자 기회 파악 활동을 수행하는 등 중국 과학기술부(科學技術部) 국제협력사(國際合作司) 해외 사무소 역할을 한다.

보고서는 2015년부터 2020년까지 중국 과학기술부가 발표한 ‘국제 기술 협력 기회’ 자료를 토대로 과기외교관과 연관된 총 642건의 과학 기술 관련 프로젝트를 분석했다. 그 결과, 중국 과기외교관들은 해외 기술 획득을 위해 중국 공산당이 내세운 새로운 제조업 육성전략인 ‘중국제조 2025’가 제시한 전략 목표 분야에서 주로 활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제조 2025’는 2015년 5월 8일, 리커창(李克强) 국무원 총리가 ‘정부 업무 보고’에서 제시한 프로젝트로 중국은 2025년까지 ▲전기자동차 등 신에너지 분야 자동차 ▲차세대 IT 기술 ▲반도체 등 신소재 ▲항공우주장비 ▲바이오 의약 및 첨단 의료기기 ▲로봇 기술 ▲통신 장비 ▲첨단 화학제품 ▲해양엔지니어링 및 선박 기술 ▲농업기계 장비 등 10개의 하이테크 제조업 분야 대표 기업을 육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보고서에 의하면 중국 과기외교관의 활동 영역은 바이오제약 및 의료기기(25.2%), 정보기술(17.0%), 신소재(11.5%), 신에너지 및 자동차(10.1%), 농업(8.1%), 기계 및 로봇(6.5%) 등에 집중되어 있다. 국가별로는 러시아 112건, 미국 77건, 영국 62건, 일본 57건 등이었고, 이 밖에 이스라엘, 캐나다, 핀란드, 한국 등이 주 활동 무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과기외교관과 관련된 기술 프로젝트 642건에서 대상 기관이 확인된 529건 중에는 기업이 264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대학은 165건으로 뒤를 이었다. 나머지는 정부 연구기관, 개인, 비영리 단체 순이다. 결과적으로 중국 과기외교관들은 기업이나 대학의 신기술 현황을 파악해 중국 기업들이 투자나 제휴를 할 수 있도록 연결하는 역할을 해오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 이들을 ‘브로커’라 지칭한 근본 이유이다.

미국 조지타운대 산하 정책연구소인 안보유망기술센터(CSET)가 5월 25일 발표한 ‘중국의 해외 기술 획득 리스트’ 보고서 중 국가별 중국 과기외교관의 과학 기술 프로젝트 수를 나타낸 표이다.ㅣ 안보유망기술센터(CSET) 제공

안보유망기술센터는 중국 과기외교관들이 현시점까지 해외 주요 국가들의 기술 탈취에 성공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보고서는 “이들이 취득한 기술 중 일부는 미국과 동맹국의 안보와 경제적인 경쟁력을 위협할 수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경고했다.

한편 우리나라도 중국으로의 기술 유출 문제에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6월 국가정보원은 2016년 1월부터 2021년 4월까지 총 106건의 산업기술 해외 유출 사례가 적발되었다고 밝혔다. 특히 반도체, 조선, 전기전자 등 35건은 국가 핵심기술에 해당된다. 9월 19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이장섭 의원실이 산업통상자원부와 경찰청 제출 자료를 분석한 결과,  총 527건의 기술 유출 사례 중 국외 유출은 63건으로 조사됐다. 국가별로는 중국이 40건(63.5%)으로 가장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