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값비싼 약이 선호될까…의료보험에 얽매인 美 의사들

2022년 01월 3일 오후 1:40 업데이트: 2022년 06월 3일 오후 3:52

진단에 따른 처방·의료행위 ‘의료시스템’에 제약돼
미국 의사들, 제약사·보험사가 선호하는 약만 처방

미국 전역에서 코로나19에 감염돼 입원한 환자와 가족들이 이버멕틴 치료를 요구했지만, 병원 측이 거부해 법원 명령을 통해 투여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이버멕틴은 흔히 동물용 구충제로 알려져 있지만, 1985년부터 인간을 상대로 안전하게 사용돼 왔으며 조기 복용 시 바이러스 감염 질환 치료에 가능성을 보여왔다.

이버멕틴을 사람의 질병 치료에 투여하는 것은 미 식품의약국(FDA)의 인가를 받지 않은 사용법이다. FDA는 코로나19 치료 목적의 이버멕틴 사용을 하지 말 것을 권장한다. 또한 이버멕틴을 쓴다고 항상 효과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일부 환자와 가족들은 절박한 상황에서 이버멕틴 치료를 희망하고 있다. 미국에서 코로나19에 이버멕틴을 처방하는 것은 관련법을 위반하지 않는 합법적인 행위다.

그럼에도 미국의 대다수 병원들이 ‘안전하고 저렴한’ 이버멕틴 투여를 꺼리는 이유를 이해하려면 먼저 보건당국과 보험사, 제약사가 얽힌 미국의 의료시스템을 살펴봐야 한다.

이번 인터뷰에 응한 의사는 자기 발언의 핵심이 이버멕틴이 아니라 미국의 의료시스템임을 분명히 했다.

코로나19로 드러난 미국의 의료시스템

미국의 의료시스템이 제공하는 ‘케어’는 병원이나 의료시설이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부와 제약사, 보험사의 복잡한 이권에 따라 제한된다.

이들 단체는 환자의 상태를 직접 살펴보거나 차트를 들여다보지 않으면서도 환자의 치료에 대한 발언권을 가지고 있다. 이들이 정한 행정절차를 벗어난 의사들은 사실상 의사로서의 커리어를 포기해야 할 정도로 이들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미국 인디애나주에서 활동하는 가정의학과 의사 댄 스톡(Dan Stock)은 이버멕틴 등 주류 의학계에서 권장하지 않는 코로나19 치료법을 알리는 의학 자유단체인 ‘미국 최전선 의사들'(America’s Frontline Doctors) 회원이다.

그에 따르면, 오늘날 미국 의료 환경은 대부분 ‘재정 문제’로 결정된다.

스톡은 에포크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자기 치료비를 자기가 내는 사람이 거의 없다”며 “사람들은 연방정부에 낸 세금이나 보험사에 낸 보험료를 통해 의학적 보살핌에 따른 비용을 지불한다”고 설명했다.

보험사나 정부가 제3자로서 의료 서비스를 구매하는 식으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이어 “문제는 정부가 의료 서비스를 구매하고서도 비용을 내지 않는다는 데 있다”며 “병원과 의사들은 메디케어·메디케이드(저소득층·고령자 공공의료보험) 환자가 들어올 때마다 적자를 본다”고 지적했다.

이 적자는 민간의료보험 가입자들에게 떠넘겨진다.

미국병원협회(American Hospital Association)는 2017년 의료비 보고서에서 병원이 부담하는 연간 손실액이 578억달러(68조8500억원)이며, 이 손실분을 민간의료보험 가입 환자 등이 메우고 있다고 밝혔다.

스톡에 따르면 민간의보 보험료가 급증하자 직원들을 위해 보험료를 내던 고용주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고, 가입자들 역시 가입을 포기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공공의보 적자를 민간의보로 메우기 어려워지자 ‘환자보호 및 부담적정보험법’이라는 이름의 의료보험 개혁안이 나와 2014년 1월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이 개혁안은 흔히 ‘오바마케어’로 불리는 미국판 국민건강보험이다.

오바마케어는 전 국민 의료보험 가입을 의무화하고 무료보험 적용 대상을 확대하는 것이 골자다. 거부 시 벌금을 내야 하며, 가입 회피기간에 따라 벌금이 늘어난다.

스톡은 “그러나 이 법에는 문제가 있다. 민간 보험사가 자체 결정하던 의료손실비율(MLR)을 판매시장에 맞춰 80~85%로 고정한 것이다. 보험사들은 이제 청구수익의 15~20%를 행정비용에 지출할 수 있게 됐다. 이 규정으로 인해 보험사들은 환자가 아파야 수익을 계속 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보험사가 고혈압 환자 100명을 위해 혈압약을 구매할 경우, 보험사는 환자들의 복용량을 추산해 제약사와 거래한다. 하지만, 일부러 저렴한 가격에 구매하려 노력할 필요가 없다. 비용의 20%를 자기몫으로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스톡은 “보험사들은 오히려 가격이 비쌀수록 좋아한다. 제약사 역시 이를 반기며 비싼 가격에 계약을 체결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보험사와 제약사 모두 환자들이 건강해지는 것을 반기지 않는다고 스톡은 주장했다. 의료 시스템에 따라, 구매비용이 선지급됐기 때문이다.

스톡은 “제약사 입장에서는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선지급된 비용을 모두 자기 것으로 하려고 한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보험사가 이미 구매한 비싼 약을 환자들이 모두 복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야 다음번 계약 때도 높은 예상금액을 기준으로 계약이 이뤄진다”고 덧붙였다.

보험사, 정부의 통합 의료시스템 통해 수요 예측

보험사라고 의약품을 무작정 비싸게 많이 구매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적정한 수준으로 수요를 예측해야 한다. 미국 정부가 의료시스템을 통합하면서 가능해진 일이다.

미국 의료진은 약 20년 전 개발된 전자의무기록(EMR)을 통해 환자들의 나트륨 수치, 혈당량, 신장 기능 등의 데이터로 질병 추이를 추적하고 예상하는 데 도움을 받고 있다.

그러나 병원과 의사들이 제각각 보유하고 있는 이 데이터를 공유하는 것은 미국 의료정보보호법(HIPAA)에 따라 금지돼 있다.

스톡은 “이 데이터를 하나로 규합할 필요성에 따라 책임진료기구(ACO)가 설립됐다”고 주장했다.

ACO는 오바마 케어와 함께 창설된 진료의사와 병원 등 1, 2, 3차 의료제공자와 장기요양, 홈케어 서비스가 연계된 연합체다. 공공의료보험 기관인 메디케어·메디케이드 서비스센터(CMS)가 운영하는 메디케어 ACO와 메디케이드 ACO, 주정부 ACO 등이 있다.

가입이 의무화된 것은 아니며 각 의료기관들이 자발적으로 가입하지만, 사실상 의무 가입에 가깝다. 오바마 정부는 ACO에 가입하지 않은 병원·의사들은 공공의료보험 환급금 3%를 삭감하는 방식으로 가입을 유도했다.

스톡은 “ACO에 가입하면 2% 성과급도 받을 수 있다”며 “미국 의료진이 활동할 여지는 사실 그리 넓지 않다. 병원들의 마진은 대부분 1~2% 선”이라고 말했다.

이제 미국의 많은 병원과 의사들은 ACO 아래에서 하나의 거대한 의료집단에 소속한 형태로 근무한다.

오바마 케어 ‘책임진료기구’의 빛과 그림자

ACO가 주는 성과급을 받기 위해서는 2가지 조건이 있다. 하나는 ACO의 전자의무기록 시스템 사용 의무화다. 환자 진료 데이터를 정부와 보험사에 보고해야 한다.

이 시스템은 환자의 구체적인 사항까지는 확인하지 않지만, 병원 내 심혈관계 환자 중 스타틴 복용자 비율, 코로나19 입원 환자 중 인공호흡기 치료 비율 등을 알 수 있도록 설계됐다.

그런데 시스템에 정보를 입력하려면 이미 설정돼 있는 진단과 진료 코드에 따라야 한다. 진단은 세계보건기구(WHO)의 국제질병분류(ICD) 코드, 진료는 미국의 표준의료행위(CPT) 코드를 입력해야 한다.

예를 들어 ACO 성과급을 받으려면 고혈압약인 로사르탄을 처방할 수 없다. 진단한 병명과 그에 따른 의료행위인 로사르탄 처방을 시스템에서 서로 연결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스톡은 “이 시스템에서는 병명에 코로나19 코드를 입력하면, 그에 따른 의료행위 이버멕틴 코드가 나오지 않는다. 만약 이버멕틴 코드를 강제로 입력하면 병원은 ACO로부터 금전적인 불이익을 당하게 될 것이며 의사는 그 책임을 지게 된다”고 말했다.

즉, 의사의 처방은 시스템에서 각 질병마다 미리 설정해놓은 처방 범위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성과급을 받기 위한 또 하나의 조건은 ‘의료서비스의 질적 성과 충족’이다.

공공의료보험 기관인 메디케어·메디케이드 서비스센터(CMS)는 ACO 시스템 인가와 관련해 “의료 서비스의 양(volume)이 아니라 질(quality)에 따라 성과급을 지급한다”고 설명한다.

그 기준인 ‘질적 성과’는 △환자와 서비스제공자 경험 △서비스 조정과 환자 안전 △예방보건 △위험집단환자 비율 등 4개 영역에서 30여 가지 항목이다. 달성하기 쉽지 않다는 평가다.

이 기준들을 마련하는 국가품질포럼, 의료기관 인증 공동위원회, 국가품질보증위원회, 보건의료연구품질청, 전미의료협회 등 단체들의 일부는 전직 보험사, 제약사 또는 CMS 임원들이 이끌고 있다.

스톡은 “정부는 보험사와 제약사들의 조언에 따라 어떤 약이 좋은 약인지 결정한다. 의사들은 병을 진단하고 어떤 치료를 했는지 ACO 시스템에 마련된 규정에 따라 코드를 입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ACO는 당신이 얼마나 많은 수익을 내고 있는지 꿰뚫고 있다. 만약 수익성이 없다면 참가 계약이 해지될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에서 학자금 대출은 오랫동안 국가적 논란으로 돼 왔다. 비싼 학비로 인해 많은 학생들이 빚을 진 상태로 사회 초년생으로 출발하고 있다. 의대 졸업생들도 마찬가지다. 미국 의과대학 협회 자료에 따르면, 빚을 진 채 졸업하는 의대생들의 평균 부채금액은 20만 달러에 이른다.

재정적인 어려움에 처한 의사들은 ACO가 제공하는 혜택과 성과급 시스템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 이 기사는 베스 브라일랴 기자가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