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치산 中 부주석-대만계 美 장관, 일왕 즉위식서 대화 장면 화제

LIANG YI
2019년 10월 25일 오전 10:24 업데이트: 2020년 01월 2일 오전 11:36

중국 왕치산(王岐山) 국가부주석과 미국 일레인 차오(Elaine Lan Chao) 교통부 장관이 나루히토(德仁) 일왕 즉위식에서 조용히 얘기 나누는 영상이 인터넷에서 빠르게 전파되고 있다.

올해 5월 제126대로 즉위한 나루히토 일왕은 22일 가장 중요한 ‘소쿠이레 세이덴노기’(즉위식정전의례)를 거행하면서 전통 의식대로 일본 국내외에 즉위 사실을 정식 선포했다. 총 190여 국가에서 2천여 귀빈이 즉위식에 참석했다.

필립 벨기에 국왕, 칼 구스타브 16세 스웨덴 국왕과 왕세녀 빅토리아 공주, 영국 찰스 왕세자, 네덜란드 빌럼 알렉산더르 국왕 부부, 부탄 왕추크 국왕 부부 등 다른 나라의 왕실 귀빈들도 참석했다.

정치가로서는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 아웅산 수지 미얀마 국가자문,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 등도 참석했다.

미국의 일레인 차오 교통부 장관과 중국의 왕치산 국가부주석도 참석했다. 이날 즉위 대전에서 일본 언론과 AP 통신은 왕치산 부주석과 차오 장관이 조용히 얘기 나누는 모습을 몇 분간이나 촬영했다.

이 영상은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다. 식중 대다수 귀빈은 정해진 자리에 앉아있었지만, 차오 장관과 왕 부주석 둘만은 뒤쪽에 서서 대화를 나누었다. 촬영된 영상에서 왕 부주석은 카메라를 등지고 있으면서 수시로 차오 장관을 보고 말했다. 차오 장관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차오 장관은 대만 출생이라 중국어를 유창하게 하며, 중국계 미국인으로는 최초의 장관이 된 인물이다. 남편은 미국 상원 다수당 리더 미치 맥코넬(Mitch McConnell) 의원이다. 일레인 차오 장관은 레이건 대통령 시기에 단호한 반공(反共) 태도로 중화민국을 지지했으나, 얼마 전 ‘뉴욕타임스’는 그녀 일가가 베이징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며 정경유착 가능성을 보도한 바 있다.

두 사람의 만남이 미리 약속된 것인지 우연한 것인지 현재로서는 알려지지 않아, 두 사람의 구체적 대화 내용은 알 수가 없다. 다만 현재 美·中 양국이 무역전쟁을 치르고 있고 미국 상원이 곧 ‘홍콩 인권 민주주의 법안’ 표결을 앞두고 있는 등 미국 내 반공주의 정서가 커지고 있는 상황인 만큼 추측이 분분하다.

[좌] 일레인 차오 | 미 교통부 [우] 왕치산 중국 부주석 | 연합뉴스

중국 외교부는 21일 언론 인터뷰에서, 왕치산 국가부주석이 시진핑 주석의 특사 자격으로 나루히토 일왕 즉위식에 참석했다고 밝혔다. 왕 부주석은 일본 지도자들을 만났고 홋카이도를 방문했다. 10월 20일, 왕 부주석은 시진핑의 특사 신분으로 인도네시아 조코 위도도 대통령 취임식에도 참석했다.

중국 공산당 19차 당대회 전, 왕치산은 상무위원이자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로 유임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결국 모든 당직을 내려놓고 국가 부주석 직함만 얻었다.

왕치산의 부주석 취임 초기에는 마치 제8의 상무위원처럼 미중 무역회담의 교섭자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였다. 2018년 미중 무역분쟁의 초기에 왕치산이 직접 워싱턴을 찾아 담판을 벌인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성사되진 않았다.

올해 7월 1일, 왕치산은 외빈을 만난 자리에서 “지금은 주석을 도와 의례적 외교만 하고 있다”고 이례적 발언을 해 눈길을 끌었다. 이런 발언의 정치적 함축이 무엇인지 국제사회에는 많은 추측이 있었다.

그러나 홍콩의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반대 운동이 격화되어가던 8월 29일~31일, 왕치산은 전격적으로 광둥성을 방문했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왕치산이 홍콩의 당시 사태 전개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보도했다.

왕치산이 남쪽을 방문한 진정한 목적은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을 만나 홍콩의 실정을 파악하고 람 장관에게 시 주석의 밀령을 전달하여 홍콩 사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준비를 하려는 것이었을 터이다.

왕치산의 남하를 전후하여 캐리 람 장관은 갑자기 적극적으로 나서서 대화의 장을 마련하고 송환법 개정을 철회하는 등 그동안 미뤄왔던 태도와는 커다란 차이를 보였다.

홍콩 시사평론가 판샤오타오(潘小濤)는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4차 전체회의(4중전회)에서 왕치산이 홍콩과 마카오 문제를 다룰 대권을 넘겨받을 가능성이 크지만, 그렇다고 해서 홍콩 문제가 단기간에 완전히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