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진실’은 증거가 필요치 않다, ‘햄릿’의 의심이 빚은 비극

류시화
2023년 01월 31일 오후 6:03 업데이트: 2024년 01월 19일 오후 5:31

덴마크 왕자와 그의 가족의 비극을 풀어낸 작품 ‘햄릿’은 1601년 영국의 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쓴 4대 비극 중 하나로 꼽히는 작품입니다.

‘햄릿’의 비극

햄릿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한 유령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 유령은 햄릿에게 자신이 아버지이자 왕이라고 밝히며 자신이 햄릿의 삼촌인 클로디어스에게 독살당했다고 말합니다. 이야기를 들은 햄릿은 자신의 어머니이자 미망인인 거트루드가 아버지가 죽은 지 두 달 만에 삼촌과 재혼한 것을 알고는 그것이 사실이라 여기게 됩니다.

이에 격분한 햄릿은 복수를 맹세합니다. 그는 거짓으로 미친 척 위장하며 복수를 준비합니다. 그러나 그는 유령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진실이 맞는지, 믿어도 되는지 끊임없이 의심합니다. 무엇이 진실인지, 복수를 실천해도 되는지 고민하며 결정을 미루던 그는 결국 여러 비극을 만들게 됩니다.

‘첫 번째 비극’ : 폴로니어스

첫 번째 희생자는 덴마크 왕실의 재상인 폴로니어스입니다.

햄릿은 선왕의 죽음을 묘사한 연극을 준비합니다. 이 연극을 본 클로디어스는 내용에 격한 반응을 보입니다. 이에 햄릿은 클로디어스가 선왕을 죽인 범인임을 확신했지만, 복수가 옳은 길인지, 자신의 확신이 맞는지 의심하고 머뭇거리다가 벽에 걸린 태피스트리 뒤에 숨은 이가 클로디어스라고 생각하고 뒤늦게야 복수를 행동으로 옮깁니다. 그러나 태피스트리 뒤에 숨어있던 이는 왕이 아닌 재상, 폴로니어스였습니다. 그렇게 햄릿의 비극에 휘말린 폴로니어스는 죽음을 맞이합니다.

‘두 번째 비극’ : 오필리아

두 번째 비극은 햄릿에 의해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폴로니어스의 딸, 오필리아입니다.

오필리아는 햄릿과 열렬한 사랑을 나눴습니다. 햄릿은 그녀에게 “태양이 움직이는 것은 의심할 수 있지만,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의심하지 말라”며 고백할 정도로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햄릿은 아버지의 유령을 만난 후 복수를 위해 그녀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척하며 그녀를 밀어냈습니다. 이에 충격받은 오필리아는 서서히 미쳐갑니다. 그러다 사랑하는 햄릿에 의해 아버지가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녀는 결국 강물에 빠져 익사하게 됩니다. 그렇게 오필리아는 햄릿의 두 번째 비극이 됩니다.

재앙의 가속화

두 번째 비극 후, 더 많은 재앙이 일어나게 됩니다. 오필리아의 오빠 레어티스는 외국에서 돌아와 클로디어스와 함께 햄릿을 독살할 음모를 꾸밉니다. 독이 묻은 칼을 가지고 벌어진 햄릿과 레어티스의 결투 끝에 결국 레어티스와 햄릿, 왕 클로디어스와 햄릿의 어머니 거트루드 모두가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무기력한 의심의 대가

과거 학자들 사이에는 증명되지 않는 것의 가치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사조가 퍼졌습니다. 기원후 2세기의 그리스 철학자 엠피리쿠스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경험할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이 실존적 지위나 가치를 가졌다고 증명할 순 없다”라고 말하며 증명되지 않는 모든 것을 의심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후 햄릿이 쓰인 1600년대 당시, 이 사조는 일반적인 것으로 여겨지며 특히 종교적 진리와 진실 자체가 모두 거짓이라 여겼습니다.

‘진실’은 증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당시 학자들은 ‘어떤 중요한 것도 논리적으로 증명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은 증명이 필요치 않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어떤 사물은 아름답고 어떤 것은 추하다는 것과, 어떤 것은 선하고 어떤 것은 악하다는 사실은 증명하지 않아도 우리가 당연히 알고 있고 느끼고 있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아름다움과 선함의 가치, 자유와 책임의 가치, 자연의 법칙을 준수할 가치, 그리고 수천 년에 걸쳐 전해지는 전통의 가치가 ‘진실’임을 ‘증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사실은 인간의 존재를 떠나 그 자체만으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그 아름다운 가치와 진실을 의심하는 것은 오만이며 거짓을 탐닉하는 것은 진실의 진정한 가치를 알고도 부정하는 행동입니다.

햄릿의 의심이 빚어낸 비극

우유부단하고 의심 많았던 덴마크 왕자, 햄릿. 그는 삼촌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사실을 알고도 이를 증명하기 위해 긴 시간을 허비하고 번뇌를 거듭하며 많은 생명을 잃게 했습니다. 그는 ‘진실’을 알고도 그것을 믿지 못했고 그로 인해 이 커다란 비극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햄릿이 진실에 대한 믿음과 확신을 가졌다면 부정을 저지른 삼촌 클로디어스를 더 빨리 처단했을 것이고 많은 생명이 죽는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