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토리 人] 최초 대서양 단독비행 성공한 ‘하늘의 왕’, 찰스 린드버그

김연진
2023년 05월 6일 오전 11:23 업데이트: 2024년 01월 19일 오후 5:27

1927년 5월 21일 밤, 프랑스 파리 상공에 항공기 실루엣이 어렴풋이 보였다.

미국 뉴욕에서 출발해 약 33시간 30분 만에 파리에 도착한 항공기였다.

이 항공기는 에펠탑 위를 선회한 뒤 르부르제 공항에 무사히 착륙했고, 그곳에 모인 수만 명의 군중은 일제히 환호하며 항공기를 향해 달려갔다.

항공기 조종사는 당시 26세의 청년 찰스 린드버그(Charles Augustus Lindbergh)였다. 그 순간부터 린드버그는 ‘최초의 대서양 횡단 무착륙 단독비행’에 성공한 사람으로 역사에 기록됐다.

린드버그가 성취한 이 성공으로 항공 산업의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며 상업용 항공기 개발이 활성화됐다.

찰스 린드버그(Charles Augustus Lindbergh) | Public Domain

새가 되고 싶었던 소년

1902년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난 린드버그는 어린 시절부터 하늘을 날고 싶었다.

그의 아버지는 공화당 연방 하원의원이었으며 어머니는 교사로 비교적 부유한 환경에서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꿈을 좇고 싶었던 린드버그는 ‘조종사’가 되기로 마음먹고 학교를 자퇴했다.

당시 조종사는 사고 위험이 매우 높고 처우도 열악했기에 누구도 선호하지 않는 기피 직업 중 하나로 꼽혔다. 물론 린드버그는 예외였다.

이후 네브래스카주 링컨 비행학교에서 조종술을 배우며 비행의 꿈을 펼치기 시작했다. 비행학교를 졸업한 뒤 로벗슨 항공기 회사에 취업해 본격적으로 조종사 임무를 수행하기 시작했다.

린드버그의 임무는 단순했다. 세인트루이스에서 시카고까지 항공 우편물을 나르는 일이었다. 단순한 업무임에도 린드버그는 항공기를 조종하는 매 순간 최선을 다했고, 그렇게 노력하던 그에게 천금 같은 기회가 찾아왔다.

찰스 린드버그와 그의 아내 앤 모로 린드버그(Anne Morrow Lindbergh) | Public Domain

상금 2만 5000달러

1919년, 미국의 부호 레이먼드 오티그는 “뉴욕에서 파리까지 무착륙 횡단 비행에 성공하는 사람에게 상금 2만 5000달러를 주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2만 5000달러는 현재 가치로 수십만 달러가 넘는 거액이다. 이 상금을 얻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도전했지만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사실 당대의 항공기술로 약 6000km에 달하는 거리를 한 번도 쉬지 않고 횡단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여기에 린드버그가 도전장을 내밀었다.

린드버그는 대서양을 횡단하기 위해 세인트루이스 사업가들의 지원을 받아 자체 항공기를 제작했고, 감사함을 담아 이 항공기를 ‘세인트루이스의 정신(Spirit of Saint Louis)’이라고 명명했다.

린드버그는 6000km의 대장정에 성공하려면 항공기 연료를 최대한 많이 채워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러기 위해선 짐을 최소화해야 했다.

무전기, 전등, 구조 신호용 조명탄, 심지어 낙하산도 싣지 않았다. 비행 방향을 측정할 수 있는 나침반과 무조건 성공하겠다는 불굴의 의지만 있을 뿐이었다.

항공기 세인트루이스의 정신(Spirit of Saint Louis) | Wikipedia

33시간의 비행

1927년 5월 20일 오전 7시 52분, 드디어 린드버그는 ‘세인트루이스의 정신’을 몰고 이륙했다.

그렇게 그는 비와 진눈깨비가 몰아치는 악천후를 뚫고 홀로 대서양 위를 비행했다. 졸음과 배고픔, 무엇보다도 죽음의 공포와 맞서 싸워야 했다.

린드버그는 무게를 줄이기 위해 무전기도 싣지 않아 외부와 교신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그저 린드버그가 무사히 파리에 도착하기만 숨죽여 기다렸다.

이륙 후 약 33시간 30분이 지난 21일 밤 10시 22분경, 린드버그가 파리 상공에 모습을 드러냈다. 인류 최초의 대서양 무착륙 단독 비행이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기념비적인 기록을 세운 린드버그는 ‘하늘의 왕’으로 불렸다.

당시 캘빈 쿨리지 미국 대통령은 린드버그에게 비행 십자훈장을 수여했고 워싱턴과 뉴욕 등 미국 전역에서 그를 환영하는 대규모 행사가 열렸다.

찰스 린드버그와 그의 아내 앤 모로 린드버그(Anne Morrow Lindbergh) | Public Domain

항공 산업의 선구자

린드버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아내 앤 모로 린드버그(Anne Morrow Lindbergh)에게 비행기 조종술을 가르치며 함께 장거리 비행에 나섰다.

1931년, 린드버그 부부는 미국에서 출발해 일본까지 날아가는 ‘태평양 횡단’에도 도전했다.

물론 대서양 횡단처럼 무착륙 비행에 도전한 것은 아니었다. 린드버그 부부는 뉴욕을 시작으로 캐나다, 알래스카를 거쳐 베링해협(Bering Strait)을 건넜고 이후 러시아, 일본으로 이어지는 하늘길을 개척했다.

이 하늘길은 태평양 북쪽을 둥글게 잇는 새로운 항로라고 하여 ‘The Great Circle Route’라고 불리게 됐다.

린드버그의 도전은 뉴욕에서 도쿄까지 이어지는 상업용 항공 노선을 개설하는 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