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토리 人] 루스벨트 대통령의 실질적인 ‘오른팔’, 마거릿 르핸드

김연진
2023년 04월 27일 오전 11:15 업데이트: 2024년 01월 19일 오후 5:27

미국 32대 대통령을 지낸 프랭클린 D. 루스벨트에 대해 이야기할 때, 어김없이 함께 언급되는 인물이 있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오른팔’이라고 불렸던 마거릿 르핸드(Marguerite LeHand, 1898~1944)가 그 주인공이다.

루스벨트 대통령이 재산의 절반을 마거릿에게 주도록 유언장까지 새로 썼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그만큼 두 사람의 사이는 각별했다.

마거릿은 건강 문제로 일선에서 물러날 때까지, 무려 21년간 개인 비서로 활약하며 루스벨트 대통령의 곁을 지켰다.

인연의 시작

고등학교에서 비서학을 전공한 마거릿은 1917년 미국 워싱턴 D.C.로 이주해 일자리를 구했다. 1917년은 미국이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해로, 마침 미 해군부(部)에서는 서기직을 구하고 있었다.

그렇게 우연한 계기로 해군부 서기직에 몸담게 된 마거릿에게 1920년 또 한 번의 기회가 찾아왔다.

당시 루스벨트는 제임스 M. 콕스와 함께 민주당 부통령 후보로 대선에 출마했다.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 | FDR Presidential Library & Museum

마거릿의 상사였던 찰스 매카시가 루스벨트 캠프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으면서 그녀도 자연스럽게 선거운동을 돕기 시작했다.

아쉽게도 루스벨트는 1920년 대선에서 패배했으나, 마거릿이라는 탁월한 감각을 지닌 보좌관을 얻게 됐다.

사람을 바라보는 안목

1928년, 루스벨트가 뉴욕 주지사로 선출되자 마거릿은 그의 ‘개인 비서’로 임명됐다.

마거릿은 개인 비서 역할을 수행하면서 사람을 바라보는 안목을 키웠다.

주지사로서 공식 일정을 소화하는 루스벨트를 대신해 방문객을 응대하고 일정을 잡으며 기회주의자를 가려내는 예리한 감각을 발휘했다.

또 루스벨트가 정치적 입지를 다지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인물들을 알아보고, 그들이 루스벨트와 긴밀한 관계를 맺도록 도왔다.

마거릿의 탁월한 능력은 1933년 루스벨트가 백악관에 입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루스벨트 행정부가 출범하자 마거릿은 여성 최초로 대통령 비서실장이 됐다.

루스벨트 대통령과 마거릿 르핸드 | FDR Presidential Library & Museum

대통령의 오른팔

그때부터 마거릿은 루스벨트의 실질적인 오른팔로 활약했다.

루스벨트에게 접근하려면 반드시 마거릿을 거쳐야 했기에 이른바 ‘문고리 권력’이자 ‘실세 중의 실세’로 통했다.

마거릿에게는 대통령 면회를 거부할 수 있는 행정적 권한이 있었고, 그녀가 루스벨트의 핵심 참모들과 회의를 주재하기도 했다.

그렇게 약 20년간 루스벨트의 곁을 지킨 마거릿은 1941년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격무에 시달리다 건강이 급격히 악화한 것이다. 당시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심장마비와 뇌졸중을 동시에 겪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마거릿은 병상에 누워 재활에 힘썼지만, 1944년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루스벨트는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며 “오랜 시간 헌신과 봉사의 정신을 보여준 마거릿의 영면에 개인적인 상실감이 매우 크다. 우리는 그녀에 대한 기억을 영원히 간직할 것”이라고 기록했다.

루스벨트가 대공황을 극복하고 2차 세계 대전을 승리로 이끄는 등 뛰어난 업적을 남길 수 있었던 배경에는 마거릿처럼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보좌관의 영향도 컸다.

전 백악관 법률고문이자 루스벨트의 최측근이었던 사무엘 로젠만은 “마거릿 르핸드는 루스벨트 시대에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