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약체” 리커창 중국 총리의 진격과 퇴진

김윤호
2022년 03월 16일 오후 3:54 업데이트: 2022년 03월 16일 오후 3:54

전인대 폐막 기자회견서 “임기 1년 남았다”
시진핑 권력 1인 독점체제 구축에 ‘제 갈 길’

중국 공산당(중공) 국무원 리커창(李克强) 총리가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폐막 기자회견에서 올해 중공이 제시한 경제성장률 목표치 5.5%와 관련해 “쉬운 일이 아니다”라면서 “올해는 내가 총리로 있는 마지막 해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2013년 전임 원자바오(溫家寶)에 이어 임명된 리커창은 올해까지 햇수로 10년째 총리를 맡고 있다. 중공 헌법에서 총리는 2회 중임이 가능하지만, 리커창은 이번 임기를 끝으로 사퇴 의사를 밝혔다.

1955년 7월생인 리커창은 중공 새 정권이 출범하는 내년 3월 기준으로 만67세다. 중공은 보통 만 68세 이상이면 퇴임하는 관례가 있다. 그대로 유임을 해도 관례에 어긋나지 않는다. 따라서 리커창이 퇴임을 희망할 경우 다른 자리로 옮겨가 공직을 유지할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리펑 전 총리는 퇴임 후 전인대 상무위원장을 맡았다.

그러나 시진핑과의 ‘대립’ 구도가 걸림돌이다. 재미 시사평론가 탕징위안(唐靖遠)은 “관례나 나이로 보아 리커창이 전인대로 넘어가는 데 무리는 없어 보인다. 그러나 리커창은 최근 공직에 연연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왔다. 반면 시진핑은 독단적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양상이다. 즉 계속 파트너로 일하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측근이나 친분이 있었던 인사들이 줄줄이 낙마하는 것도 리커창의 거취를 불투명하게 하는 요인이다.

같은 공청단 출신으로 가까이 지냈던 양징(楊晶) 전 국무원 비서장은 지난 2018년 해임됐고, 역시 1990년대 공청단에서 5년간 리커창의 동료였던 장다밍(姜大明) 전 국토자원부장(장관급)의 예우 등급이 처장급으로 격하됐다는 루머가 돌고 있다. 장다밍은 리커창이 직접 발탁해 장관에 앉힌 인물이다.

또한 10년간 리커창을 보필한 총리실의 스강(石剛) 주임은 지난해 퇴임 후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위원 자리를 하나 얻는 데 그쳤다.

고위층 측근은 그의 체면이나 위세를 고려해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건드리지 않는 것이 중공의 관례다. 바꿔 말하면 고위층과 친분이 있는 인사들이 처벌을 받는다는 것은 그 고위층의 파워가 떨어졌다는 풀이도 가능하다.

탕징위안은 “측근들의 퇴임이나 예우 격하, 별 볼 일 없는 한직으로의 이동 등은 리커창의 파워가 떨어지고 있으며 그가 정치권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징조”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시진핑은 자신의 연임뿐만 아니라, 연임 이후 안정된 권력을 위해 요직에 측근을 꽂아넣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리커창의 주변 인물들이 이런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그가 시진핑의 ‘이너서클’ 인물이 아니며, 오히려 인사 강탈을 당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이어 “중공 체제에서 부서 요직이나 고위직은 라인 최상위층과 긴밀하게 엮여 있다. 조직의 리더와 같이 흥하거나 같이 망하거나 둘 중 하나다”라고 덧붙였다.

현재 중공 지도부는 관례에 따라 총리 퇴임 전 국무원 주요 인사들을 ‘판갈기’ 하고 있다. 전 국가발전개혁위원회 탕정제(唐登杰) 부주임은 민정부 부장(장관)에 내정됐고, 국가통계국 서기 겸 국장에는 톈진시 장의(康义) 부시장이 임명될 예정이다.

후임 총리로는 한정(韩正), 쑨춘란(孙春兰), 후춘화(胡春华), 류허(刘鹤) 등 4명의 부총리가 물망에 올라 있다. 후임 총리에는 부총리를 승진 발탁하는 것이 중공의 관행이다. 한정이 가장 유력하다는 설이 돌지만, 시진핑은 류허를 원할 것으로 여겨진다.

탕징위안은 “문제는 한정이 장쩌민파인 상하이방의 주요 인물이라는 점이다. 장쩌민파는 한정을 총리직에 올리고 싶겠지만, 장쩌민파를 강하게 견제해 온 시진핑은 원치 않을 것이다. 부총리 4명 중 자신에게 충성할 인물을 꼽으라면 류허일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70세인 류허 부총리는 ‘만 68세 퇴임’ 관행에 걸리지만, 미국-중국 간 무역전쟁이 이어지는 가운데 중공 측 대표로 여전히 중앙정부의 신뢰를 받고 있다. 일단 류허를 총리로 임명하고 공석이 된 부총리직에 차기 총리 후계자를 앉힐 가능성도 거론된다.

중공 당국은 강력한 반부패를 추진해왔으나, 그에 대한 관료사회의 반발과 피로감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공 관료들이 변화를 거부하며 태만했던 과거로 퇴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분위기도 포착된다. 근무시간에 도박, 게임, 인터넷쇼핑, 음란물 시청, 마약, 불륜행위를 일삼다가 적발되는 사례도 다시 늘고 있다.

리커창은 최근 공식석상에서 수척해진 모습을 자주 보여왔다. 관영매체들은 리커창이 취임 후 “명령이 중난하이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관리들이 태만하다”며 자주 화를 내왔다고 보도했다. 리커창이 찻잔으로 탁자를 내리쳤다는 기사도 나왔다.

시진핑과 리커창이 다투고 있다는 소문도 자자하다. 리커창은 2020년 5월 양회 기자회견에서 “중국 빈곤층이 6억 명”이라고 말했는데, 이는 빈곤 퇴치를 정권 최대 성과로 내세우는 시진핑의 주장을 정면으로 뒤집는 발언이었다.

반면, 시진핑 측근들은 리커창의 체면을 세워주지 않으며 보복하는 모습을 보였다. 리커창은 2020년 5월 양회 ‘빈곤층 6억명’ 발언 후 ‘노점 경제’로 침체된 내수경제 활성화를 독려했다. 그러나 베이징시 공산당위원회 서기 차이치(蔡奇主)는 “수도 이미지 실추”를 이유로 노점상 단속을 강화했고, 상하이시 공산당위원회 리창(李强) 역시 “도시 미관을 해친다”며 노점상 활성화를 반대했다. 차이치와 리창 모두 시진핑의 측근이다.

같은 해 7월 말 중국 자체 위성항법시스템인 ‘베이더우(北斗) 위성항법 시스템’ 개통 기념식장에서 행사를 진행한 류허 부총리는 시진핑, 리커창 등을 소개할 때 실수에 가까운 사회로 구설에 올랐다.

류허는 시진핑을 소개하면서 “중국 공산당 총서기, 국가주석, 중앙군사위 주석 시지핑”이라고 말한 후 착석해 있던 시진핑이 일어나 참석객을 향해 인사할 충분한 시간을 줬다. 그러나 그다음 리커창을 소개할 때는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국무원 총리 리커창”이라고 말한 후 장내에서 박수가 터져나와 리커창이 일어나 뒤로 돌아 답례하는 순간, 바로 다음 순서인 한정을 소개했다. 리커창은 당혹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리커창이 시진핑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다른 길을 갈 뿐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호주의 중국문제 전문가인 위안훙빙(袁红冰) 전 베이징대 교수는 “리커창은 시진핑과 경쟁할 인물이 못 된다. 그저 총리직에 충실하려 할 뿐”이라고 관측했다.

탕징위안 역시 “충돌까진 아니고 불화 정도가 적절한 표현일 것 같다”며 “리커창이 반발하기보다는 시진핑이 1인 독재체제를 굳히기 위해, 파트너인 리커창과의 불화를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권력은 그것을 나누려하지 않고 독점하려는 본성이 있다. 리커창은 명목상 중공2인자이지만, 실제로는 파워가 없고 강력한 파벌도 없다”고 지적했다.

탕징위안은 “현재 공산당 중앙심화개혁위원회·중앙재경위원회 등 핵심 경제부처 책임자는 시진핑이 겸임하고 있다. 류허 부총리마저도 중앙재경위 사무처장을 맡고 있다. 리커창은 역대 최약체 총리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원자바오 역시 2인자였지만, 당시 1인자였던 후진타오는 지금의 시진핑 같은 강력한 1인자가 아니었다. 세력이 비슷했던 원자바오와 후진타오는 그래서 잘 협력할 수 있었다. 하지만 리커창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시진핑 앞에서 약자”라고 말했다.

탕징위안은 “시진핑이 연임하면 그 후에 임명되는 총리는 지금의 리커창보다 더 약한 총리가 될 것이다. 현재 중공의 통치 시스템이 1인 독재로 흐르고 있다. 리커창 개인이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고 전했다.

그는 “리커창은 민생 문제에서 시진핑의 ‘빈곤퇴치’ 선전에 휩쓸리지 않으며 ‘노점경제’를 내세워 진격했지만, 이제 쓸쓸한 퇴진을 남겨두고 있다. 경제성장률 목표치 5.5% 달성을 마지막 과업으로 삼은 것 같다”고 평했다.

* 이 기사는 닝하이중 기자가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