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문한답] 윤석열 정부의 ‘강제징용해법’ 의미와 외교 전략은?

에포크미디어코리아&한반도선진화재단 프리미엄 리포트

이윤정
2023년 04월 14일 오후 3:23 업데이트: 2024년 01월 10일 오전 11:11

윤석열 정부의 ‘강제징용해법’이 지니는 의미와 외교 전략은 무엇인가요?

답변_손기섭 한반도선진화재단 정책위원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후 서울대 대학원을 거쳐 일본 도쿄대에서 국제정치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서울대 국제대학원 책임연구원을 거쳐 부산외국어대 외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세계지역학회 부회장, 동아시아국제정치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고 한반도선진화재단 정책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일 갈등은 매우 복합적으로 보입니다.

“2012년 이후 한일관계는 복합적으로 악화하고 갈등이 반복적으로 지속됐습니다. 한일관계의 ‘65년 체제’가 종언을 고하면서, 양국 정치리더십의 세대교체가 관계 변화의 강력한 동인으로 작용했습니다. 2018년 이후는 위안부 문제, 강제징용 문제, 초계기·수출규제·지소미아(GSOMIA)·오염수 문제 등 한일 갈등 이슈가 매우 다각화되고 심화했습니다.”

“당시 문재인 정부가 중국과 북한에 경사된 외교 행태를 보임에 따라 한중일 균형 외교에 금이 가기 시작했으며, 북핵 위기 대응을 위한 한미일 협력도 균열을 보였습니다. 쿼드(QUAD) 참여에 대한 이견과 한미일 협력의 엇박자가 드러났고, 이 모든 문제와 갈등의 최고 중심에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 문제가 작용했습니다.”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 논의는 어떻게 진행돼왔나요?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회담에서 이와 관련한 많은 논의가 있었습니다. 재산청구권의 개념과 강제징용 배상 문제는 공식적으로 분리될 수 있으나, 한일 간 합의에 의해서 기본적으로 연동됐다고 판단됩니다. 한일 간에는 청구권협정으로 일괄처리하고 피해자 개인에 대해서는 한국 정부가 피해보상금을 지불하는 것으로 정리됐습니다.”

“박정희 정권 때인 1975년에서 1977년 기간 동안 약 75000건의 사안에 대해 한일 청구권협정의 무상 3억 불의 약 1%에 달하는 금액을 피해보상으로 지급했습니다. 노무현 정권 때도 2007년 전후 2차적으로 72631명에게 약 6330억 원에 달하는 보상금을 지불했습니다.”

2018년 이후 경색 일변도였던 한일관계의 중심에는 ‘강제징용’이란 난제가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미 끝난 문제를 대법원이 개인 배상 책임을 일본 가해 기업에 판결하는 바람에 다시 외교 쟁점화된 것입니다. 국제법적으로 국가 간에 조약이 맺어진 경우는 국내법적으로는 ‘사법적 자제의 원칙’이 작용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우를 범했던 것이죠. 강제징용 문제는 한국 정부가 국내적으로 처리하기로 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면을 감안하면 한일 간의 강제징용 문제는 한국 정부가 선제적으로 풀어나가는 것이 타당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정부가 발표한 강제징용 해법은 어떤 내용인가요?

“지난 3월 6일 정부가 발표한 강제징용 해법은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조성한 재원으로 2018년에 확정된 대법원 판결을 받은 피해자 15명에게 각각 2억~2억 5000만 원 정도를 지급하는 이른바 ‘제3자 변제’가 골자입니다. 이와 동시에 피해자 추모 및 교육·조사·연구 사업 등을 내실화하고 확대할 것이며, 재원과 관련해서는 민간의 자발적 기여 등을 통해 마련하고 목적 사업을 위해 가용 자원을 더욱 확충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정부가 이러한 결정을 하게 된 배경이 있을까요?

“대법원 판결을 더 이상 방치할 경우, 한국에 진출해 있는 두 일본 가해 기업인 일본제철과 미쓰비시중공업의 자산을 한국 법원이 현금화할 가능성이 큽니다. 현재로서도 총체적 복합골절로 빈사상태에 빠진 한일관계가 수습 불가능한 단계에 이를 위험이 높았습니다.”

“문재인 정권이 어떠한 해법도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않은 상태에서 오롯이 그 부담이 윤석열 정부에게로 이전된 것입니다. 그동안 한국의 국회와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해법이 검토됐지만 직접적 해결안이 마련되지는 못했습니다. 대표적으로 2020년 전후의 ‘문희상 안’(2+2안 : 한국정부와 한국 청구권자금 혜택기업 + 일본정부와 일본의 가해기업)이 제시됐지만, 국회도 순기능을 하지 못했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을 통해서 대법원 판결에 따르는 피해자 구제를 하고 현재 소송 중인 안건이 차후 대법원 판결 승소로 나는 경우 이를 구제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재원은 우선 포스코를 비롯한 한국의 청구권자금 수혜 16개 기업이 선제적으로 기부금을 내어 피해 배상금을 지불한다는 내용입니다. 일본제철과 미쓰비시중공업 두 일본 가해 기업 자산의 현금화를 막고 한일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가져간다는 의미로 파악됩니다.”

일본 정부와 가해 기업의 입장은 어떤가요?

“일본 정부는 한국 대법원의 판결은 한일청구권협정에 위배되기 때문에 그 판결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계속 견지해왔고, 관련 가해 기업도 이러한 일본 정부의 입장을 따르는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의 해법 발표 후 일본 정부는 기본적으로 한일청구권협정으로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는 해결됐다는 입장입니다. 기시다 일본 총리는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우리 정부의 해법을 한일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되돌리기 위한 것으로 평가하며 적극적 환영의 뜻을 표명했습니다. 일본 가해 기업의 경우 표면적으로는 대체로 신중하지만, 내심으로는 대환영의 뜻을 나타내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우리 정부는 일본 가해 기업의 자발적 참여를 기대하지만, 가해 기업의 직접적 배상 참여는 어려울 듯합니다.”

일본의 역사 인식에 관해서는 어떻게 보시나요?

“기시다 총리는 1998년 10월의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진심 어린 사죄’를 계승할 것을 피력했습니다. 다만 현 단계로서는 일본 총리의 직접적 ‘반성과 사죄’ 발언은 아직 미흡한 상황입니다.”

이번 강제징용 해법이 한국 외교와 한일관계에 어떤 의미가 있나요?

“길게는 2012년 이후 11년간, 짧게는 2018년 이후 약 4년 반에 걸친 한일관계의 복합골절을 치료하고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모색하는 윤석열 정부의 통 큰 ‘전략 외교’의 일환입니다.”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안보 환경과 미중 패권 경쟁 및 경제안보 환경이 위중합니다. 북한 김정은 정권의 핵미사일 도발이 도를 넘었습니다. 핵미사일 탑재가 가능한 단중거리 미사일의 성능이 개선됐고, 전략핵폭탄을 탑재해 미국 본토까지 타격할 수 있는 북한의 ICBM 내지 SLBM이 실제적 위협으로 다가왔습니다. 국제 정세 역시 러-우 전쟁 등 세계적 전쟁 위기, 에너지 위기, 경제 위기가 증폭된 상황인 데다 미중 간 전략적 패권 경쟁도 심각해졌습니다. 이러한 국제 정세와 한반도 상황에서 한미일의 전략적 협력은 필수적 당면과제입니다.”

“북핵 위협과 미중의 포괄적 경쟁의 틈바구니에 끼인 한국의 외교·안보는 보다 구체적으로 유연하고 실용적인 전략 외교를 모색해야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윤 정부가 한일관계에서 초미의 쟁점인 강제징용문제에 대한 해법을 마련해 총체적 복합갈등을 풀고 건강한 한미일 협력, 가치지향 외교, 미래 청년세대를 위한 전략적 실용 외교를 전개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구체적인 ‘전략적 실용 외교’ 방안은 무엇인가요?

“한일 간의 외교·안보 협력 면에서는 자유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포괄적 전략동맹으로서의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북핵 위협에 대한 핵확산 억지력 강화, 군사정보 협력, 가치동맹을 확산해 나가야 합니다.”

“우선 북핵 위협에 대한 ‘한미일 핵우산협의체’가 창설돼야 합니다. 한미일 간에 북핵 위협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보다 구체적으로 핵 확장 억지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토(NATO)의 ‘핵계획그룹(NPG)’이 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한미동맹이 포괄적 안보동맹으로 견고히 기능한다면 중장기적으로 쿼드(QUAD) 참여는 필수적이라고 판단됩니다. 쿼드에 참여하면 한일 간 외교·안보 협력도 보다 더 원활히 이뤄질 것입니다.”

일본과는 역사·영토 관련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역사를 대범하게 직시하면 한국은 외교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우위에 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호감을 줄 수 있는 공공외교의 기반이 됩니다. 역사 문제와 영토 문제는 일거에 해결하기 어렵고, 북핵 위기 해법, 미중 갈등의 완화 등 한일 협력이 절실히 필요한 지구적 과제가 산적해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의 식민 통치와 위안부·강제징용·역사교과서 문제 등은 이미 벌어진 일이고, 이런 ‘부(負)의 역사’는 장기적 관점에서 대범하게 바라보고 지혜롭게 외교적으로 관리해야 합니다. 일본 내에서 과거사 문제로 인한 ‘혐한(嫌韓)’과 ‘한국 피로증’이 가중되는 속에서 한편으로는 한국 대중문화와 음식문화, 전통문화에 대한 호기심과 인기가 꽃피고 있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미일 미래형 협력 방안은 어떤 게 있을까요?

“실용적 경제 안보를 제도화해야 합니다.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IPEF)에 대한 적극적 참여와 역할이 제고돼야 하는데 그러려면 한미일 협력이 전제돼야 하므로 미국 입장에서도 한일관계의 포괄적 개선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아울러 △한일 신경제포럼 발족 △한일 협력위원회와 경제협회의 구축 및 제도화 △한일 FTA 체결 등을 추진해야 합니다.”

“일본과의 경제협력이 잘 이뤄진다면 한일 젊은 청년 세대들의 경제영토가 공히 확장될 것이고 반도체, 인공지능(AI), 에너지산업 등 첨단산업에서 한일 간의 경제안보 협력도 점진적으로 확대될 것입니다. 양국은 상호협력과 경쟁을 병행하면서 비교우위를 창출하고 경제적 실용성을 높여야 합니다. 이러한 경제안보외교에는 젊은이들의 일자리, 활동 반경, 대중문화 향유 등이 적극 모색돼야 합니다.”

원문 보기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슈&포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