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없는 천사가 기부한 ‘성금 6천만원’을 37초 만에 슬쩍한 2인조 도둑

이현주
2020년 12월 25일 오전 11:51 업데이트: 2022년 12월 13일 오후 1:22

이맘때 연말이면 전주의 한 주민센터에는 현금 수천만 원을 가져다 놨으니 찾아가라는 전화가 걸려온다.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라며 20년째 누군가가 익명으로 거액을 기부해 온 것.

지난해 겨울에도 센터 측은 어김없이 돈을 두고 갔다는 전화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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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돈이 감쪽같이 사라지는 소동이 벌어졌다.

23일 YTN 뉴스는 37초 만에 6천 여만원의 성금을 갖고 달아난 도둑 사건을 보도했다.

1년 전인 2019년 12월 30일 전주 노송동 주민센터에 그토록 기다리던 전화가 걸려왔다.

20년째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거액의 기부를 이어 오고 있는 그의 연락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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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만원 다발과 묵직한 돼지 저금통이 든 상자를 조용히 놓고 떠나 ‘노송동 천사’로 불리는 그는 ‘돈 상자를 찾아 가라’는 짧은 말만 남긴 채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잠시 후 주민센터가 발칵 뒤집혔다.

전화를 받고 1분도 채 안된 그 사이 기부금 상자가 감쪽같이 없어진 것.

당황한 주민센터 직원들은 CCTV를 뒤져 돈 상자를 들고 도망간 이들의 차량을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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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들은 ‘천사 기부자’가 돈 상자를 놓고 간지 불과 37초 만에 모든 범행을 끝냈다.

이후 경찰은 인근 CCTV를 조사해 절도범 차량을 특정하고 일당 2명을 사건 발생 4시간 만에 충남과 대전에서 각각 붙잡았다.

다행히 기부금은 모두 찾았다.

경찰 조사 결과 충남 출신인 이들은 뉴스로 얼굴 없는 천사의 선행을 알게 된 뒤 사흘 잠복 끝에 천사가 성금을 두고 떠나자 곧바로 훔친 것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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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절도 혐의로 기소된 2인조는 항소심에서 각각 징역 1년 6개월과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이 사건으로 지역 사회 신뢰가 무너지고 아름다운 기부 문화가 위축됐다”고 했다.

사건 1년이 지난 지금 동네 주민들은 그저 고맙고 미안한 마음으로 기부 천사의 행보를 조심스레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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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잔뜩 얼어붙은 연말.

혹시 같은 일이 반복돼 따뜻한 그 마음이 두 번 다치지 않기를.

전주시 노송동 주민센터는 인근 지구대에 순찰을 강화해달라고 요청했다.

직원들 또한 남은 휴가를 반납하고 만일의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