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암흑의 삶 속에서 눈 부신 빛과 색을 구현한 화가, 베르메르

류시화
2023년 04월 11일 오전 10:33 업데이트: 2024년 01월 19일 오후 5:27

아름다운 작품으로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 화가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로 우리에게 친숙한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1632-1675)는 평생을 네덜란드 델프트에서 살았습니다.

그는 화려하진 않지만, 평화롭고 정교한 작품들을 그렸습니다. 창문 넘어 들어오는 자연 채광을 이용해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빛을 묘사했고, 명암 대비를 명확히 살려 사물과 인물을 돋보이게 했습니다. 그의 그러한 작품은 시간을 초월한 가치를 가지며 보는 이의 시선과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베르메르의 작품은 여왕의 마음도 사로잡았습니다. 영국 윈저 왕조의 제4대 국왕인 엘리자베스 2세도 그의 작품에 매료되어 <음악 수업>을 개인 소장품으로 수집해 자주 들여다보며 마음에 평화를 얻었다고 전해집니다.

화폭에는 천국 같은 평화가 펼쳐졌지만, 현실은 암울했다

그림을 보는 이들에게 평안과 안정을 주고, 깊은 감명을 준 베르메르. 그의 화폭에는 천국이 펼쳐졌지만, 붓을 든 그의 등 뒤에는 사실 암흑이 가득했습니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이후 부유한 집안의 여인과 결혼해 경제적으로 나은 삶을 사는 듯했으나, 그의 부모가 남긴 빚에 새로 꾸린 가정까지 생활고에 허덕이게 되었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그는 사랑하는 아내와의 사이에 자녀 15명을 두었습니다. 육아와 경제활동으로 바빴던 그는 많은 작품을 세상에 남기진 못했습니다. 현재까지 베르메르가 그린 작품이라고 명확히 세상에 알려진 것은 고작 35점뿐입니다.

그나마 그가 살아있던 당시에 그의 작품성을 알아본 이들에게 비싼 값에 그림을 팔아 생활비를 충당했지만, 그마저도 1672년 프랑스가 네덜란드를 침공한 후 닥친 경제위기에 미술 시장이 얼어붙어 생활고에 허덕이다가 베르메르는 결국 1675년, 43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후, 그의 작품은 수 세기 동안 간과되었습니다. 그러다 19세기 중반에야 예술평론가, 미술학자들의 눈에 띄어 빛을 보게 되었고 이후 예술계의 큰 찬사를 받았습니다.

그림에 대한 열정과 애정

베르메르는 작업 속도가 유난히 느리고 그림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세심하게 그림을 그리는 그의 열정은 작품 속 숨겨진 요소들에서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작품 <편지를 읽는 소녀>에는 열려있는 창을 통해 쏟아지는 빛 아래 편지를 읽고 있는 여인이 있습니다. 편지의 내용에 집중한 여인의 얼굴을 우리는 그림 속 창에 비친 모습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책상 위를 덮은 천의 질감과 길게 늘어뜨려져 있는 커튼의 구김과 실 하나하나까지 세심하게 묘사된 이 작품에는 한 가지 단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여인이 서 있는 뒤편 벽의 덧칠이 균일하지 않고 어색하다는 점인데요. 완벽주의자인 베르메르의 작품에 이런 결함이 있다는 것에 주목한 이들이 18세기 초에 누군가 그림에 덧칠했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복원을 시도해 결국 페인트 뒤에 숨겨져 있던 큐피드를 세상에 다시 돌려놓았습니다.

섬세한 작업으로 그림에 온 정성을 쏟은 베르메르는 생활고에 허덕이면서도 그림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의 작품에 주로 등장하는 파란색과 노란색은 당시 매우 비싼 재료로 알려진 납, 주석, 청금석을 원재료로 한 안료를 사용해 구현한 색상입니다.

또한 그는 빛을 표현하는 데에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았습니다. 빛을 받아 반짝이는 진주와 금속의 질감은 마치 그림을 보는 것이 아닌 실제 현장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이렇게 그려낸 아름답고 따뜻한 색감, 빛을 받아 반짝이는 보석과 금속들에서 예술에 대한 그의 애정과 정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베르메르 예술세계의 정수 : 회화의 예술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그가 유일하게 팔지 않은 작품이 있습니다. 그가 죽은 뒤 그의 아내도 이 작품만은 지켜내기 위해 노력했는데요. 바로 <회화의 예술>입니다.

빛이 따스하게 들어오는 작업실 천장에는 금빛 샹들리에가 반짝이고 있습니다. 그 아래 파란 옷을 입은 모델이 신비로운 표정으로 열심히 포즈를 취하고 있고, 그런 그녀를 보고 그림을 열심히 그리는 화가, 바로 베르메르 본인의 뒷모습입니다.

이 작품은 실물을 마주하게 되면 사진을 본 것처럼 현실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색채와 섬세한 표현법에 넋을 놓게 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회화의 예술>은 베르메르가 자신에게 그림을 의뢰하고자 찾아오는 이들에게 자신의 실력을 최대한 보여주기 위한 예시로 심혈을 기울여 그린 작품인데요. 그런 만큼 그림 속에는 구성, 빛, 색채, 섬세함 그 모든 것이 완벽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특히 모델의 뒤편 벽에 걸린 지도는 마치 실제 지도를 붙여놓은 것처럼 완벽한 비율로 섬세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베르메르 예술의 정수로 알려진 이 그림은 현재 오스트리아 빈 미술사 박물관에 전시되어 그곳을 찾는 이들에게 커다란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빛을 그린 베르메르, 후대에 빛을 발하고 영감을 전하다

과거 네덜란드 공화국의 황금 시대인 17세기는 서양 예술사에서 가장 위대한 예술적 성취기 중 하나였습니다. 비록 당시에는 큰 명성을 얻진 못했지만, 어두운 현실 속에서도 예술에 대한 애정을 순수한 열정으로 보여준 베르메르. 그의 작품은 후대에 예술이 주는 감동과 아름다움, 빛을 보여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