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전문가들, ‘방첩 강화를 위한 법제 정비 방안’ 토론회 개최

이윤정
2023년 04월 28일 오후 8:55 업데이트: 2023년 04월 29일 오전 9:29

4월 28일 오후 2시 30분,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19층 매화홀에서 ‘방첩 강화를 위한 법제 정비 방안’ 토론회가 열렸다.

국가대개조 네트워크가 주최하고 파로호포럼이 주관한 행사에는 김재현 오산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 원장, 장석광 국가정보연구회 사무총장, 권세진 디지털정책연구소 소장,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주제 발표를 했다. 토론자로는 이한중 양지회 회장이 나섰고, 전직 국가정보원 간부, 민간 전문가 등 안보 분야 전문가들이 참가했다.

행사를 주관한 파로호포럼은 한민호 전 문화체육관광부 국장이 대표를 맡고 있으며 각계 인사들이 참여하고 있다. 파로호는 6·25전쟁 중 조선인민군과 중국인민지원군 24000여 명을 사살하고 전사자 시체를 화천호에 수장(水葬)한 곳이다. 1955년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오랑캐를 무찌른 호수’라는 뜻의 ‘파로호(破虜湖)’로 명명한 것에서 유래한다.

한민호 파로호포럼 대표(전 문화체육관광부 국장) | 에포크타임스

‘형법상 간첩죄 규정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을 주제로 발표한 김재현 오산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현행법상 ‘간첩죄’의 문제점을 거론했다. 그는 형법 제98조 1항 “적국을 위해 간첩행위를 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2항 “군사상의 기밀을 적국에 누설한 자도 전항의 형과 같다” 등의 규정으로는 적국(敵國)이 아닌 국가, 외국인 단체 그리고 북한을 위한 간첩행위를 처벌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김재현 교수는 “현행법상 모호하게 규정된 ‘적국’ 개념을 구체적으로 ‘적국, 외국, 외국인 또는 외국인 단체와 반국가단체’로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찰 안보대책연구관 출신인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 원장은 간첩죄 관련 한국의 실정법(형법, 국가보안법)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대한민국 실정법 체계는 간첩 활동을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보장해 주는 역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각종 간첩 사건에 대한 법원의 연이은 ‘솜방망이 판결’은 국가안보의 대응력을 무력화하는 데 일조한다”고 강조했다.

유동열 원장은 현행 간첩죄 조항의 시대 착오성도 지적했다. 제정된 지 최소 32년에서 최대 70년이 경과한 조항이라는 취지다. 이어 이제 다방면에서 정교하게 전개되는 간첩 활동의 수단과 방법의 진화를 감안해야 할 때라고도 했다. 그는 “현행 형법 제98조 간첩죄는 형법 제정을 제정한 1953년 당시 그대로이다. 또한 군 형법 제13조에 규정된 간첩 조항은 1961년, 국가보안법 제4조 목적수행죄는 제정된 지 32년이나 됐다”고 지적했다.

유동열 원장이 제시한 대안은 다음과 같다. ▲국가보안법 제4조 1항 2호에 현행 ‘국가기밀’뿐만 아니라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하는 각종 정보’를 탐지, 수집, 전달, 중계한 경우에도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 신설 ▲국가보안법 제4조의 개정 연장선에서 형법 제98조 간첩죄 개정(이 조항은 적국을 위해 간첩 활동을 했을 때만 처벌토록 하고 있으나, 적국뿐만 아니라 우방국을 포함한 외국과 외국인단체 및 비국가행위자들의 간첩 활동도 처벌할 수 있게 개정되어야 함) ▲온라인 공간에서 자행되는 이른바 사이버 간첩 활동과 산업스파이 활동을 규제하는 법제 구축 등이다.

토론회는 국가대개조 네트워크가 주최하고 파로호포럼이 주관했다. | 에포크타임스

국가정보원 요원 출신의 장석광 국가정보연구회 사무총장은 ‘국정원법상 간첩 수사권 박탈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현행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권을 넘겨받게 될 경찰이 대공수사권을 독점적으로 행사하기 위한 역량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간첩 수사를 전담할 전문 인력과 장비, 예산 확보 ▲김정은 직할 체제 당·정·군의 모든 북한 대남공작조직을 대적할 수 있는 조직 구축 ▲대형 대공 사건 혹은 북한 급변사태 발생 시 국가 역량을 총동원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시스템 구축 ▲국가정보원, 군, 검찰 등 국내 여타 정보수사기관과의 원활한 정보·수사 협력을 위한 법적·제도적 시스템 구축 ▲외국 정보기관과의 정보협력, 해외 정보망 구축 등이다.

장석광 사무총장은 경찰이 대공수사권을 행사하기 위한 준비가 돼 있지 않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국가정보원법이 개정된 지난 2020년 12월 이후 2년여 동안 경찰은 대공수사권을 독점적으로 행사할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경찰의 대공 수사 역량을 오히려 더 위축시켰다는 비판까지 받았다.”

이어 개정 국가정보원법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개정 법에서 국가정보원은 ‘수사권’만 사라졌지 정보 수집이나 조사권을 보유하고 있다. 다만 수사권이 없는 국가정보원은 내사도 증거 수집도 할 수 없다. 수사권이 없는 국가정보원이 수집할 수 있는 자료는 사실 확인 자료에 불과하다. 제대로 된 간첩 정보 수집 활동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는 국가정보원법 개정안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1안 : 국가정보원법 부칙 제1조(시행일)를 개정하여, 2023년 12월 31일까지로 되어있는 수사권 폐지 유예기간을 ‘대공수사권의 독점적 행사를 위해 경찰에 요구되는 역량을 경찰이 구비할 때까지 연장한다’로 개정한다 ▲2안 : 대한민국의 안보에 가장 위협 세력인 북한에 특화된 국정원의 60여 년 역량을 보존하는 한편 인권 시비를 최소화한다는 차원에서 개정 전(2020. 12. 이전) 국가정보원 수사권 대상 범위를 북한 간첩에 대한 수사와 북한 간첩에 직접 연계된 내국인에 대한 수사로 축소해 수사권을 다시 부여한다.

토론회에서는 산업 스파이 문제에 대한 발표도 이뤄졌다. 권세진 디지털정책연구소 소장은 ‘산업안보법제 검토를 통한 규제 개선방안’ 주제 발표에서 현행 관련 법률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한국은 기술 유출 방지를 위해 2006년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2022년 ‘국가첨단전략산업의 경쟁력 강화 및 보호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제정해 시행하고 있으나 개선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권세진 소장은 구체적인 개선 방안으로 ▲국가핵심기술 취급 전문인력 지정·관리 ▲범죄 입증 완화 ▲해외 유출 처벌 강화 및 실효성 확보 등 3가지를 제시했다.

방첩 강화를 위한 법제 정비 방안 토론회 | 에포크타임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사이버 안보를 위한 관련 법령 정비 방안’을 제시했다. 그는 날로 중요성이 커지는 사이버 안보의 중요성에 대해서 강조했다. “사이버 안보가 지켜지지 못하면 국가 안보가 한순간에 무너진다.” 이어 “오늘날 대한민국에는 사이버 안보에 관한 일반법이 없다. 사이버 안보는 국가정보원법에 의해 국가정보원이 담당하고 있다. 다만 신속한 압수수색을 통해 정보 유출을 막고, 즉각적인 대응이 가장 필요한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국가정보원이 할 수 있는 영역은 극히 한정되어 있다”고 현행 관련 법령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또한 해당 사이버 안보와 관련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한 활동도 오로지 ‘행정조사’ 방법으로만 조사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승재현 박사는 사이버 안보를 지키기 위한 방안을 제시했다. ▲국가정보원에 해킹 조직에 대한 실질적인 수사권 부여 ▲부다페스트 사이버범죄 협약 가입과 이를 위한 국내 이행입법 마련 ▲사이버안보를 위한 컨트롤 타워 정립 ▲사이버 안보와 관련된 기본법 제정 등이다.

지정 토론자로는 국가정보원 대공수사국장을 지낸 이한중 양지회 회장이 나섰다. 그는 북한의 현실에 대해서 먼저 지적했다. “북한은 ‘대적(對敵) 투쟁’ 방침에 따라 군사‧비(非)군사적 위협을 일상화하면서 한국 정부 타도를 목적으로 하는 대남공작 기조를 일관되게 고수하고 있다.” 이어 남한 내 고정간첩의 실태에 대해서 언급했다. “최근 사건들을 통해 확인한 고정간첩 활동 실태는 대단히 심각하다. 이들은 수사 과정에서도 묵비권 행사로 일관하며 구인도 거부하는 등 적법한 형사 절차를 거부하고 구속제도의 실효성을 무력화하고 있다.” 그러면서 경상남도 고정간첩 사건, 민주노총 지하 침투 간첩 조직 등의 사례를 언급했다.

이한중 회장은 오랜 대공수사 경험을 살려 다음을 조언했다. “대공수사는 첩보 입수 단계부터 검찰 송치 후 재판에 이르기까지 장기간에 걸쳐 대북·해외·과학정보 부서 간 유기적 협업이 필수인 분야이다. 국가정보원이 이 일을 맡아야 하는 이유다. 반면, 경찰은 독자적인 대북·해외 정보망과 주요국 정보기관 정협 채널이 없으며, 대공수사 전문성과 경험·역량도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대공수사권을 넘겨받게 될 경찰의 문제점을 지적한 그는 다음을 우려했다. “개정 국가정보원법은 안보 관련 범죄정보수집 및 일부 조사권과 대응 조치 권한을 국가정보원에 부여하였으나 북한의 대남공작이 날로 지능화·고도화하는 현실 아래 행정조사권 수준의 권한만으로는 효율적인 대응이 어렵다. 대응조치의 내용·범위도 불명확해 대남공작 차단에 심각한 차질이 예상된다. 국가 안보 수사 체계 전체의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방첩 강화를 위한 법제 정비 방안 토론회 참가자들 | 파로호포럼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