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날카로운 이빨, 화웨이의 전생과 금생(상)

Mu Fengyu
2018년 12월 18일 오후 3:38 업데이트: 2019년 10월 27일 오전 9:55

멍완저우 CFO가 체포된 것을 계기로 화웨이의 역할이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여러 자료를 분석하면 화웨이는 사실 민간기업으로 위장한 중공 당국의 기관이다. 단지 중국 인터넷 방화벽에 참여해 중공 공안부의 전국적인 감시통제망을 책임지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며 인터넷 감시망을 해외로 수출하고 해외 정보를 대대적으로 절도하는 것은 물론이고 대외적으로 중공을 확장하는 인터넷 무기가 됐다.

1. 화웨이의 배경

화웨이 내부에선 줄곧 ‘좌페이우팡(左非右芳)’이란 말이 있다. 여기서 ‘페이’란 현 회장인 런정페이(任正非)를 말하고 ‘팡’이란 얼마 전 물러난 이사장 쑨야팡(孫亞芳)을 가리킨다.

중국 매체들에 따르면 중국 IT기업에서 이사장은 줄곧 가장 핵심적인 창립자가 겸임해왔다. 하지만 화웨이는 창립자 런정페이가 회장을 맡고 이사장에 쑨야팡을 내세웠다. 그녀는 또 화웨이에서 강력한 발언권을 가져 내부 인사들은 ‘화웨이의 여자황제’라 불렀으며 일부 인사권과 중요 사안은 모두 그녀가 결정했다.

미국 국방부는 2008년 의회보고서에서 이 두 사람의 출신 배경이 아주 특수하다고 지적했다.

런정페이는 중공군 공병부문에서 14년간 엔지니어로 일했고 단직(團職 부연대장급) 간부로 은퇴했다. 1987년 43세의 나이로 화웨이를 창립했다. 쓰촨성 부성장을 지낸 장인 멍둥보(孟東波)의 세력을 등에 업고 중공 서남군구에서 거대한 전자교환기 시장을 확보해 나중에 화웨이가 ‘전자통신제국’이 되는 기초를 다졌다.

사진은 화웨이 초대 이사장을 지낸 쑨야팡. | 인터넷 이미지/NTD 합성

보고서에 따르면 또 쑨야팡이 대학 졸업 후 중공 국가안전부 통신부문에서 다년간 근무했고 줄곧 화웨이와 깊은 관련을 맺어왔다. 국가안전부의 배치에 따라 쑨야팡은 1992년 화웨이에 입사했고 사실상 각국 정부와 군 사이의 업무를 책임졌다.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쑨야팡은 1985년부터 베이징 정보기술응용연구소 엔지니어로 일하다가 1989년 화웨이 업무에 참여했다. 그런데 베이징 정보기술응용연구소는 중공 총참모부 산하의 기구로 지목된다. 중공 총참모부 휘하에는 특무기관이 여럿 있다.

런정페이 삼부녀 | 인터넷 합성 사진

지난 12월 9일, 일본 산께이신문은 확실한 정보통을 인용해, 런정페이가 일찍이 중공군에 있을 때부터 정보수집 훈련을 받아왔으며 또 군 통신 엔지니어로 일했다고 폭로했다.

중국 매체 시나닷컴은 런정페이가 화웨이를 창립했을 때 자금이 부족하자 정부기관에 근무 중이던 쑨야팡이 ‘자신의 인맥’을 이용해 자금 문제를 해결해주었고 또 얼마 후 화웨이 창립자 팀에 합류했다고 한다.

2011년 10월, 미국 CIA는 공개 조사보고서에서 화웨이가 과거 3년간 중공 정부로부터 2억 2800만 달러를 지원받았으며, 중공을 위해 ‘KGB와 같은 정보서비스’를 제공했다고 밝혔다. CIA 자료에 따르면 화웨이는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남미, 그리고 중공 정부를 도와 감청 및 위치추적 장치를 구축하고 있다.

이외에도 화웨이는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을 위해 전화통신시스템을 설치한 적이 있고 이란 정부를 대신해 전신과 위치추적 기술을 설치했다. 국제적으로 화웨이는 또 뇌물을 주는 관리로도 이름이 나있다.

화웨이 전 직원의 폭로에 따르면 화웨이 내부는 마치 특무기구처럼 운영되며 무역 활동이나 인원 배치 등에 있어 모두 중공 정부의 명령에 따르며, 또한 중공 군부의 정예 사이버전쟁 부대에 서비스를 제공한다.

미 국방부와 CIA가 화웨이를 상세히 조사한 주요 이유는 화웨이가 5차례에 걸쳐 미국의 스리리프(3Leaf)와 모토롤라 무선 네트워크 사업부 등 대형 전자회사를 인수하려다 중공 군부 및 국가 안전부문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음이 발각됐기 때문이다. 화웨이의 창업 초기 계약이 전부 군부가 통제하는 홍콩 투자기업에서 나왔고, 중공 군부는 장기간 화웨이에 무상으로 핵심 기술을 제공했으며, 화웨이는 또 군부대와 여러 건의 장기 계약을 체결했다.

더욱 황당한 것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이 전자회사가 아직도 비상장기업이며 주주 구성원들이 누구인지 모두 베일에 쌓여 있으며 자금 및 업무 운용에 대해서도 외부에서는 전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바로 앞서 언급한 여러 가지 이유들 때문에 미국 상무부는 화웨이의 인수합병을 거부했다.

2012년 미국 연방의회는 보고서를 통해 화웨이가 간첩활동에 연루돼 미국의 국가 안전을 위협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런정페이에 관해 무려 52페이지에 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금년 12월 6일, 미국 공화당 연방상원의원인 크루즈는 트위터에 “화웨이는 전자회사란 얇은 면사포에 가려진 공산당 간첩기구다. 그것의 감시망은 전 세계를 커버하며 주요 고객은 이란, 시리아, 북한 및 쿠바와 같은 깡패정권들이다”라고 했다.

런정페이의 딸 멍완저우가 12월 6일 캐나다에서 체포된 후 미국 사법부는 그녀가 과거 11년간 여권을 적어도 7개(4개의 중국 보통여권과 3개의 홍콩여권) 소지했다고 고발했다. 이어진 홍콩 매체의 폭로에 따르면 그녀는 또 전에 홍콩에서 중국 일반여권 1개를 소지했다고 신고한 적이 있다.

외부에서 전하는 소식에 따르면 멍완저우는 또 캐나다 국적을 갖고 있다. 이렇듯 다양한 신분으로 다양한 여권을 소지한 것은 중공 정보원들의 특징으로 지목된다.

화웨이는 중공의 인터넷 봉쇄 및 전 국민 감시망의 핵심 기업

1990년대 말 새로 발달한 인터넷에서 정보가 자유롭게 유통되자 중공 통치에 위협을 초래했고 베이징은 인터넷을 통제할 필요가 생겼다. 뒤이어 1999년 장쩌민이 파룬궁 탄압을 시작하면서 어떻게 파룬궁 진상 정보를 봉쇄할 것인가가 장쩌민 정권의 최우선 과제가 됐다. 따라서 중공은 2000년대 초부터 신속하게 만리장성방화벽(Great Firewall=GFW)을 만들었고 얼마 뒤 공안부에서 금순공정(金盾工程)을 주관했다.

만리장성 방화벽과 금순공정은 모두 인터넷을 봉쇄하는 기능을 갖는다. 양자 간에 비록 명확한 경계는 없지만 그래도 구별은 있다. GFW의 주요 기능은 감시와 차단으로 국내외 정보 유통을 감시하는데, 주로 중공 인터넷 관리부문에서 주도한다.

반면 금순공정은 중공 공안부의 업무계통에 속하는데 전반 인터넷 소통과 빅데이터 건설을 포함한다. 그 기능은 정보를 여과하는 것 외에도 국민을 감시하고 여론을 분석하거나 심지어 탄압하고 사람을 잡아가는 것 등이다.

하지만 GFW든 금순공정에 배치된 과정이든 화웨이는 중공이 지배하는 주요 전자설비 제조회사로, 화웨이가 이 모든 핵심적인 설비와 서비스를 제공한다.

칭화대학을 졸업한 인터넷전문가 위차오(虞超)에 따르면 중공의 인터넷 감시 시스템의 주요 설계자는 팡빈싱(方濱興)이다. 당시 그는 이 과정의 주요 하드웨어 계약을 수광(曙光)과 훼웨이와 맺었고 해외 기업인 시스코와는 외국 장비에 대한 불신 때문에 아주 적게 체결했다.

위차오는 또 GFW 기술 개발에 필요한 첨단 인터넷 기술이 필요했는데 중공은 이 임무를 자기 패거리들, 즉 하얼빈공대, 중국전력, 총참모부, 국방과기대, 시안전자과기대 및 해방군정보공정대학 등 중공 군부기관과 학교에 배분했다고 밝혔다.

또 국내 감시 시스템인 금순공정을 만드는 과정에 화웨이는 설비 제공뿐 아니라 많은 핵심 기술 공정 개발에 참여했다.

금순공정은 애초 장쩌민의 아들 장몐헝의 주도하에 설립됐고 개발 목적은 장쩌민파가 정법계통을 장악하는 데 이용하려는 것이다. 화웨이는 중공 군부와 국가안전부 배경 때문에 장쩌민파와 긴밀한 관계에 있었다. 화웨이가 부상하던 시기에 군부는 장쩌민파 인사들에게 장악돼 있었고 국안계통 역시 장쩌민파 원로 쩡칭훙의 통제하에 있었다.

화웨이와 긴밀하게 연계된 혐의를 받고 있는 장몐헝 | Getty Images/ NTD 합성

화웨이가 신속하게 세계 2위의 전자회사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금순공정 개발과 함께 성장했기 때문이다.

일찍이 2000년 12월, 중국 매체들은 보도를 통해 중공 공안부의 중점 공정인 정부 인터넷공정이 정식으로 개통돼 운행되고 있다고 보도했는데, 이 공정에 사용된 핵심 장비가 바로 화웨이의 A8010 Refiner 서버였다. 보도에서는 이것은 화웨이 제품이 ‘공안 금순공정에 사용된 또 하나의 큰 프로잭트다’고 칭했다.

또 다른 중공 관영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2002년 9월 당시 금순공정 사무실 주임이었던 리룬썬(李潤森) 등이 화웨이 연구소를 참관하고 화웨이 측에 금순공정 건설과 관련 영역에 참여한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고 한다. 당시 화웨이 제품은 이미 전국 각지 금순공정 항목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었다.

2004년 이전에 화웨이가 금순공정에 설계해준 네트워크 설계안이 대륙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 있다.

화웨이가 금순공정에 제공한 네트워크 설계 | 인터넷 이미지

2014년 7월 중국 매체 보도에 따르면 화웨이는 이미 공안부문에서 소위 ‘IT화 안전도시 솔루션(IT化平安城市解決方案)’을 개발했으며 그 핵심 기술은 바로 날로 증가하는 치안계통 CCTV 데이터에 더 나은 저장 방안을 제공하는 것이다.

소위 ‘평안도시’란 중공 공안이 만들어낸 소위 ‘종합 치안부문’으로, 다시 말해 ‘치안 유지계통’이다. 이 계통은 금순공정의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핵심 내용은 바로 사회에 대한 전방위적 감시와 통제인데 빅데이터가 그 핵심 기술이다.

21세기 초 안전도시 공정은 베이징시 쉬안우구(宣武區), 항저우, 쑤저우, 지난 등의 도시에서 처음 건설되기 시작했다. 2004년 6월 공안부, 과기부는 베이징과 상하이 등 21개 도시에서 제1회 과학기술방범 강화 시범도시 건설 업무를 시작했다. 2005년 8월 공안부는 진일보로 ‘3111 시범공정’을 위해 22개 성을 선택해 성‧시‧현 3급에 방범과 감시 시스템 건설 시범 사업을 전개했고, 성마다 한 도시를 선정하고 조건이 허락하는 시와 현에서 각각 한 현과 한 구역을 선정해 시범적으로 방범과 감시 시스템 건설을 실시했다.

10여 년에 걸친 세밀한 과정을 거쳐 안전도시 공정은 현재 이미 기본적으로 중국 내 지급(地級) 이상의 도시구역, 현급(縣級) 도시와 향진(鄉鎮) 구역에서도 이미 전면적으로 중공의 감시망에 들어갔다.

2016년 9월, 화웨이는 ‘안전도시 특간’을 발표했다. 그 내용에는 ‘협력적인 공공 안전을 향해  발전’, ‘새로운 ICT, 새로운 변화’, ‘안전도시 개방 플렛폼 건설’ 등이 포함되며 중공 ‘안정 유지’ 계통을 위해 계속적으로 힘을 보태고 있다.

올해 인터넷에 2015년 화웨이 내부 비밀 자료가 전해져 나왔는데 내용은 ‘VCM(가상채널 메모리) 조작 안내’였다. 이 자료는 화웨이 공식 사이트에서 오직 화웨이 VCM 사용자에게만 다운로드를 제공한다. 그런데 화웨이 VCM 시스템의 유일한 사용자는 바로 중공 공안부문이다. 이 자료는 중공 사이버경찰 훈련에 사용된다고 한다.

자료 소개에는 화웨이 VCM이 카메라감시 내용에 대한 실시간 분석과 처리 및 경보로 금순공정 빅데이터의 일부다. 중공은 이것을 이용해 중국 국민을 엄밀하게 통제하며 감시 효율을 크게 끌어올렸다.

최근 중공이 여러 차례 예비역 권익 보호 및 P2P 금융 피해자 권익 보호 등 대형 권익 보호 사건을 정교하게 차단하거나 중요 권익 보호 인사를 타격(點殺)할 수 있었는데 여기에 화웨이가 만든 감시 시스템이 무시할 수 없는 공을 세웠다.

(계속)